착한, 여자의 사랑

by 헤븐

제 눈물을 응원한다고 해 주신 민님의 사려 깊고 온화한 편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어봤어요. 고맙습니다..

사실 저는 눈물이 정말 많은 편입니다. 결혼 후에는 급기야 더 생겨버리고 말아서 제 눈물은 어느새 주변인들을 많이 곤란하고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죠. 도대체 언제쯤 마르려나 싶어서 오죽하면 저도 모르게 제 눈물샘을 혐오할 정도이기도 했어요. 그러나 생각해보니 눈물은 제 삶의 '비밀병기' 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엉뚱하지만 덕분에 해 보았습니다.



민님이 말씀 주신대로 인생이라는 여정, 사랑의 실험을 해 나가는 그 좋고도 아픈 과정들을 무탈하게 통과하기 위해, 제게는 필수적인 것... 인생의 해시태그가 어느 순간부터 웃음보다 눈물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어 버리고 있는 것 같아서 뭔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눈물은 도무지 줄어들 틈 없이 터지고 마니, 도무지 스스로 저를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투성이라는 생각을 급기야 하고 맙니다. 바보 같죠...



'19호실에 가다'의 '수전'에 대해서 민님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도 덕분에 생겼어요. 수전과 매슈의 관계, 그들의 결혼생활과 수전의 19호실에 대한 '자기만의 방' 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마무리를 온화하게 적어 주신 편지를 읽으면서 동의한 부분이 상당수였고요. 사실 저는 그 단편을 접했을 때 작가께 속으로 되려 묻고 싶었던 게 많았어요. 드러나지 못한 수전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분명 있었을 것이라고. 게다가 수전이라는 캐릭터 자체에게도 묻고 싶었던 부분도 있었죠. 그건 마치 들리지 않은 어른의 대답을 바라는, 아이의 자세와 같아졌다고나 할까요.



아무리 경제적으로 유복하고 뭐 하나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키운다 한들 - 물론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키우는 것보다 훨씬 더 고마운 환경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겠지만 - 아이 넷을 키운다는 것은... 이렇듯 제게는 무수한 점들만 찍히게 돼요. 아이를 키우는 집의 삶을 떠올리자면요... 제가 가장 실수를 많이 하고 가장 박탈감을 느끼며 가장 고통과 좌절과 온갖 부정적 감정을 배워나가며 동시에 엄청난 순정의 사랑과 도대체 그 '사랑' 자체는 무엇인가를 내내 고심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삶의 도장이 다름 아닌 '양육' 에서부터 진정 비롯되기 시작했거든요...



Peter llsted, Mother and Child in an Interior, 1898. oil on canvas. 이 사랑을.. 뛰어넘지 못해요. 수전도 저도 그렇겠죠.



19호실에 가기 '전' 버전의 수전에게, 사실 제 감정을 투사해버리고 말았어요. 분명히 지치고 질렸을 것이라고. 삶의 쳇바퀴든 주변인이든 가족이든 화평하게 지켜야 하는 그 모든 배경이든 전부 다. 넌덜머리 나고 탈출구는 찾을 수 없이 영영 집이라는 행복한 미로에 갇혀 무언가 확실히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는 그 감정은 그리 달가운 게 아니었을 것이라고. 그렇다고 얄궂고 얄미운 매슈처럼 당차게 원초적 욕망에 가까운 일탈을 해 버리기에는 그녀는 아마 그보다 더 위에 존재하는 '사랑'의 가치를 아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사적인 욕망을 추구하기에 그녀가 지닌 공적인 영역. 일상 내 '가정생활'에서 그녀에게 요구하는 여타 과제와 역할적 의무 사이에서 생기고 마는 내면의 갈등, 타협되지 못하고 마는 감정. 매슈는 사적인 욕망이 그녀보다 강한 편이라, 말하자면 가정이라는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일탈을 저지르고 말지만 반대로 수전은 그 '선' 의 기준이 그보다 조금 더 엄격하고 철저하고 단단하게 높았달까요.



매슈의 일탈은 깨지기 쉬운 사랑, 아니 어쩌면 사랑이라 포장하기 쉬운 본능에 가깝죠. 깨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저지르고' 마는 무언가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제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내린 답은 사실 그것이었어요. 오랜 기간 자아를 누그러뜨린 채 아이 돌봄에 최선을 다해야 겨우 얻어낸 시간적 여유 이후에 그녀가 마주하고 싶었던 건 그 본능과 일탈을 넘어 서고 마는 고귀한 무엇, 그녀 자신의 생에 대한 '사랑' 은 아니었을까를... 그렇지만 한편 속된 반문을 수전에게 해보고도 싶었었던 게 사실이었네요. '수전, 당신에게는 당신을 좋아해 준 미친놈은 없었나요, 매슈에게 '반격'을 할 생각은 하지 못했나요, 아니면 당신은 정말 착한가요... 착하다고 '인정' 받고 싶었나요'라고도.



사랑은 결코 사적이기만 한 게 아니다. 또 공적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심리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며, 사적인 동시에 공적이고, 감정이자 곧 의례인 과정을 통해 현대인의 자아는 자신의 가치를 확인한다. 그러니까 분명한 점은 현대의 에로스 관계 혹은 낭만적 사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자아, 곧 자아의 감정과 내면이며, 무엇보다도 이런 감정과 내면이 타인에게 인정받는 (혹은 인정받지 못하는) 방식이다.


- Part 3. 인정받고 싶은 욕구 : 자아의 사랑과 상처, p. 237, 사랑은 왜 아픈가, 에바 일루즈 -




Peter llsted, in the bedroom, 1901



본능은 남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죠. 본능은, 욕구는, 욕망이라는 것은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 그러나 그것의 '선' 은 제각각인 것. 결국 자신만의 '선' 이 어느 위치인지에 따라 그것을 지키려는 자와 야멸차게 파괴하듯 욕망에 매달린 채 달려가는 자, 수전과 매슈의 '선' 은 애초에 기준점과 좌표가 다른 게 아니었을까 싶었네요. 물론 그들의 교차점이 있기는 해 보이기도 하고요. 바로 가족, 지켜야 할 바운더리. 깨뜨려선 안 되는 무엇... 아무리 가족의 두 얼굴이 있다 할지언정. 그런 의미에서 조금 더 해체하듯 수전에게는 결혼 이후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를 또 궁금해하고, 그러다 제멋대로 해석해보자니 이렇게 생각이 다다르더군요.



사랑이라는 가치나 그것이 발산하는 인정 욕구를 수전이라는 여성은 타자라는 외부의 대상에서가 아닌 '나'라는, 자기 내면에서 찾으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라고요. '19호실' 은 그런 면에서 그녀의 사랑과 삶을 지키는 보호막이자 한편 수전이라는 자신을 스스로 '인정' 하고 '이해' 하는 사랑의 공간이 되어준 게 아닐까 싶었고.... 민님이 말씀하신 '자기만의 방'처럼요. 한편 그래서 저는 스스로 어느 시절부터는 종종 불온한 상상을 하고 마는 저에게 되묻곤 합니다.



'사랑'의 형태와 모순, 그 온갖 것들에 대해서. 어떤 간절함에서 튀어나오는 욕망을, 혹은 종잡지 못한 어떤 트리거에 의해 흔들리고 끌리고 마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반대로 사랑은 애초에 약속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혼인신고라는 계약서로 서약한 기혼들의 사랑에 대해서. 부부의 사랑은, 그들의 잠자리는, 육아를 하는 시절에는 '일시정지' 상태가 되기 쉬운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중지된 채 또 다른 형태로 변하는 것인지. 기다림이라는 감정이 주는 '설렘'이나 '기대'를 여전히 바라는 미운 내면의 고통스러움과 좌절감과 묘한 현실의 조용한 분노가 또 교묘하게 미안해서 기어코 울어버리고 마는 여자가, 착할 수 있는지를. 기타 등등... 깊게 생각하지 않고 흘리고 마는 것들, 그러나 내내 발목을 잡는 생각들...



최다혜, 먼바다



요즘 틈틈이 에바 일루즈를 다시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은 왜 끝나나' 일생의 궁금함이라... 읽어도 답은 쉽게 나오지 않지만 말이죠. 편지가 마무리가 잘 되지 않아서 어떤 제목을 적을까 하다가, 지난번 민님의 편지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떠올리게 해 주시어서, 저는 반대로 식탁 위에 놓인 앨리스 먼로의 '착한 여자의 사랑'에 살포시 기대어 제목을 적어 보게 됩니다. 착한 여자의 사랑이라는 단어 중간에 어떤 부분에 쉼표를 넣으면 중의적 의미가 되기도 하죠.



'착한, 여자의 사랑' 혹은 '착한 여자의, 사랑'

어느 편을 고를까 하다가 저는 그리 착한 편은 아닌 것 같아서 전자를 고르며 편지를 어설프게 마무리 지어 봅니다. 착하다는 건, 착한 사랑이라는 건 애초에 있을 수 있을까를 내내 궁금해하며.



이 계절, 좀 더 착하게 사랑하고 싶은, 헤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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