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잘 시작하셨기를요. 민님과 편지를 주고받는 요즘. 덕분에 저 또한 사랑과 결혼, 그리고 남녀라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 이기적 유전자, 이런 키워드들이 계속적으로 꼬리를 물고 연결되니, 혼자 남겨진 시간이면 부쩍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되고 마네요. 단편적이고 얕은 사견이었지만 지난 번 답신을 위해 '결혼 이후의 사랑'과 '외도'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시간을 덕분에 가졌지만 역시나 여전히 금기시되는 영역이긴 한가 싶기도 했어요. 그래도 금서 수준은 아니었기를요. 수위조절을 상당수 많이 했다는 것을 잠시 말씀드려봅니다 - 더한 말도 할 수 있는 방탕함을 은근 감추고도 있다는. (씽긋) - 수세기가 지났어도 '채털리 부인의 연인' 이라든지 '마담 보바리' 나 '안나 카레니나'는 그렇게 환영받을 만한 여성상으로 비치지 않으니 말이죠. 그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 여성은 특히 더 - 사회로부터 은밀하게 정절과 헌신, 지고지순하게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한다고 그럴듯하게 주류로 대중으로 편입되기 쉽게 교육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저는 그런 것들에 조금은 반(反) 하고도 싶은, 환영받지 못하는 인간인가 싶기도 하고요...;
민님이 말씀해주신 톨스토이의 결혼생활은 조금 놀라웠어요. 그의 문학작품은 그렇다면 일정 부분 기만이었던가(!) 싶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톨스토이의 결혼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공감하게 되고 마네요. 인간은 - 특히 남성이라는 종은 - 진화생물학적으로 욕정의 안정적 해결과 번식 가치로 여성을 택하며 그 방법론으로서 '결혼'을 선택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은 것이죠. 요즘 '욕망의 진화'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 일루즈의 사회학적 시선에서의 결혼과 사랑에 대한 해체와는 다른 시선이기는 하지만, 진화 심리학적으로 인간의 짝짓기 행동의 패턴이라든지 남녀의 정말이지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랑과 성을 대하는 방식과 패턴이 놀라울 정도로 적혀 있어서...(하-가관입니다) 아직은 읽고 있는 도중이라 정리가 잘 되지 않지만 아무튼 남성과 여성은 철저히 명백히 엇갈릴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고 마네요.
결혼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무엇이길래 그것이 어떤 한 인간을 광기에 몰아넣기도 하며, 한편 그것이 사랑으로 시작되었어도 도중에 처참한 종말로 끝을 맺는 광경을 우리는 어째서 여전히도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되는 것일까요. 새삼스럽지만 기혼이 된 이후에 결혼에 대한 생각을 좀 더 깊게 하게 되는 것이 어리석고 엉뚱한 생각일 수 있으나... 저로서는 요즘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는 화두일 수밖에 없어요. 결혼이 한 인간의 생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느냐에 대해서 말입니다. 에바 일루즈가 말한 대로 '결혼생활은 장기적인 전략으로 투자를 해야 분명한 이득을 볼 수 있다 (사랑은 왜 끝나나, p.43) '라는 의견에 사실 완전히 동의하게 되고 말았던 저로서는 말입니다.
그녀가 우리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듯 선포해주었죠. '연기 연출' 이 필요할 수 있는 것이며 적합한 역할 수행을 해야만 지속 가능할 수 있는 연대. 그것이 바로 '결혼'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민님께서 말씀해 주신 빌헬름 라이히의 성적 욕망에 기반을 둔 커플 제도는 단연코 혁명적일 수밖에 없네요. (그래서 책 제목도 '성 혁명'인 걸까요-) 성 사회학이나 성 해방 관련 이론이나 지식에도 관심이 많아서 덕분에 6월의 책 목록에 살포시 올려 보게 됩니다. (감사해요. 언제나)
성공적인 결혼생활이란 도대체 무엇일까를 요즘 생각해보고 있어요. 조금 더 고백해보자면 스스로 자문하는 연장선에서 결혼생활이 '성공'적이라고 평가되는 것의 '주인공' 은 도대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고 마네요. 욕망의 진화에 의하면 성공적인 결혼생활은 이래야 한다고 해요.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목표를 위해 배우자와 지속적으로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고 말이죠. (욕망의 진화, p.84, 적합성) 읽고서 무릎을 탁 치고 말게 된 구절이었어요. 유자녀 기혼녀가 된 지금의 저에게는 결혼이라는 것은 일종의 '동맹관계'라고 생각하게 되고 말기 때문인데요. 무자녀에서 유자녀 기혼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라면 아니나 다를까요! 아이의 돌봄, 육아가 시작되는 순간... 남녀 사이의 노동분업과 그 안에서 각 어른 구성원들의 자원과 능력이 적절하게 가정 안에서 배분이 되어야 조화롭게 장기적인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것... ! (자꾸만 느낌표를 달게 됩니다. 흑) 어쩔 수 없이 경제적 수지타산(!)을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결혼 생활인 것인가 라는 생각까지 치닫게 되고 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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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지에서는 사실 결혼을 생각하게 되다가 결혼을 약속한 지 6시간 만에 헤어지게 된 커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한 편의 소설이 떠올랐어요. 영화로도 재구성된 작품이기도 하죠. 민님도 아실 거라 생각이 돼요. 바로 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인데요. 섹스에 대한 남녀의 심리와 생각의 차이가 정말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된 작품이죠. 이언 매큐언의 작품들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기도 하고요.
여 주인공인 플로렌스와 남 주인공인 애드워드는 핵반대 집회에서 만나서 호감을 느끼며 서로에게 빠져들고 말죠. 흔히 남녀가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되는 수순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들에게도 각자의 상처가 고스란히 숨겨져 있죠. 에드워드의 어머니는 뇌손상으로 인해 그의 가정생활은 활기가 없어요. 그의 집에 방문한 플로렌스는 그런 그의 어머니를 잘 돌봐드리죠. 그리고 에드워드의 아버지는 그에게 권하죠. '결혼해라'라고 말입니다. 돌봄에 충실한 여성상은 역시 배우자상으로 그 시대 최고의 가치인 건가 싶은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하고요. 비록 문학이지만... 한편 플로렌스는 치명적인 슬픔이 있죠. 스킨십 없는 어머니와 성적으로 학대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녀는 정서적으로 사랑받지 못한 결핍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녀는 섹스에 대한 혐오를 가지게 되고 말죠.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표현해본 경험이 별로 없는 여성이, 하물며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여진 적도 없었던 유년시절을 겪은 그녀가. 첫날밤 에드워드의 애정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힘들었을 거예요. 사랑에 대한 열정이 있다 한들 두려웠겠죠. 플로렌스는 에드워드를 심적으로 사랑하지만 육체적으로는 그 사랑과는 별도로 두려울 수가 있는 것이죠. '에드워드와의 섹스는 그녀에게 기쁨을 더하는 요소가 될 수 없었다. 기쁨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일 뿐이었다.' 였으니 말이죠. 그렇게 두 사람의 첫날밤은 실패. 결국 체실 비치에서 날 선 대화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말아 결혼한 지 6시간 만에 헤어지고 마는 형국에 처하게 되고 말아요. '넌 세상에서 젤 고지식한 여자야, 라 했던 에드워드에게. '그래도 나를 사랑해?'라고 확인받고 싶었던 플로렌스에게. '그러니까 너를 사랑해' 라던 그 순정한 사랑은... 도대체 어디에 간 걸까요. 사랑의 기쁨을 위해 도대체 남녀는 어떤 대가를 치루어야 되는 걸까요. 결혼 전이든 결혼 후든...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다. 사랑과 인내가, 그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만 했어도, 두 사람 모두를 마지막까지 도왔을 것이다. - 체실 비치에서, p. 197 -
플로렌스와 에드워드가 만약 체실 비치에서 함께 돌아가 6시간 만에 헤어진 게 아니라 그렇게 서로 결혼을 유지했다면 과연 두 사람 사이의 결혼 생활은 어떠했을까를 상상해보곤 합니다. 플로렌스가 마음의 빗장을 열고 에드워드가 자신의 몸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걸 혐오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기쁘게 맞이할 수 있으려면, 또한 에드워드도 인생에서 '생기'를 느낄 수 있는 삶은 결국 '사랑' 일 수밖에 없다는 걸 더욱 깊이 알 수 있으려면. 결국 서로 간의 속도와 기다릴 줄 아는 '노력' 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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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짜리에 불과한 형식적인 결혼식이 사실 뭐가 중요할까 싶기도 해요. 중요한 건 '그 이후' 겠죠. 결혼 그 이후의 삶. 그 이후에도 장기적으로 두 사람이 건강하게 따로 또 같이 가족이라는 무리 집단을 그 누구도 상처 없이 유지할 수 있는 일종의 전략. 파트너십이 필요한 것이 어쩌면 결혼인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심적 육체적 사랑까지 계속적으로 더해질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말이죠. 그러나 그러기엔 남자와 여자는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진 인간이라는 걸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되고 나면 일정 부분 어떤 영역들은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고 마네요... 모든 삶의 우선순위가 아이로 시작되어 아이로 끝을 맺는 이 시절 저희 부부에게는. 아니 최소한 그이는 모르겠고 저로서는 아이와 그이의 영양과 건강을 챙기는 이 마음은 '사랑'이라고 주문을 걸고 말아요. 이것이야말로 행복한 가정이고 나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마취제에 내내 걸린 사람처럼. 그 마취에서 가끔 깨어나면 조용한 분노가 밀려와 결국 환멸을 느끼고 좌절하고 고통스럽고 그래서 매번 울보 아내 울보 엄마가 되어 버리고 말지만 말입니다.
애초에 결혼이라는 것이 서로 기쁨만을 공존하게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려 해요. 사랑은 열정이라지만 때로 그것이 두려운 열정으로도 충분히 변모할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외도' 도 그 영역 중 하나일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죠. 열정이 생겼는데 두렵지 않을 인간이 있을까요. 새로운 사랑이 탄생되고 만다면 말입니다. 결국 사랑을 하는 관계들 안에서는 피할 수 없이 슬픔과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관계 속의 갈등 또한 일상에서 뾰족하게 튀어나올 수도 있겠고요. 그리하여 사랑의 가려진 그늘조차도 서로 묵묵히 품어서 내일로 나아가려는 마음... 지키고 싶은 무엇. 사랑은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하고 맺어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민님. 사실은 말이죠. 역시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결혼이, 사랑이, 무엇인지...
제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그 무엇이, 저는 아직 모르는 게 있다는 것만 확실하게 알 뿐.
사람과 사랑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겠죠. 사랑에 빠지는 그 시간과 그 이후의 시간 전부 말입니다.
- 체실 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제나 비치를, 바다를 그리워하는 헤븐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