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보바리
결혼하면 사랑일까요... 민님. 이번에도 친히 책을 권해 주셔서 정말 기뻐요. 고맙습니다. 아쉽게도 '결혼하면 사랑일까'는 절판이 되었네요. 그래서 읽고 싶은 강렬하고도 시급한 마음에(!) 도서관에서 바로 대출 예약을 했어요. 어서 읽어보고 싶습니다. 저도 궁금하거든요. 결혼하면 사랑인지를. 정말로 그러한지를. 책은 무엇을 따끔하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읽고 난 이후에 또 어떤 형태의 감정이 남을지를. 다소 불편한 진실을 알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또한 느껴보고 싶습니다. 무릇 불편이나 불안을 견딘 그 이후에 어떤 조용한 성숙함이 다가온다죠...
결혼 수업에서 종종 낙제하는 기분이시라는 말씀은 묘하게도 아프게 느껴지고 맙니다. 그렇다면 저 또한 고백하건대 이미 신혼 초기에 낙제점을 찍고 말았으며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실은 언제나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찍고 마는 것은 다름 아닌 결혼 이후의 육아... 부모 수업에서 철저한 낙제생이 되는 기분으로 사는걸요. 그래도 최근 들어 격주로 부모 수업을 듣는 노력을 펼쳐 보이면서 한편 결혼 그 이후에 새롭게 펼쳐지는 여러 신세계를 향해 그저 학생의 마음으로 겸손하게 응할 수밖에 없네요. 배움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지...
'결혼' 하면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학 작품 몇 개가 있어요. 그중에서 단언컨대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어요. 통속적 소재와 그 시대의 선정적 장면의 묘사로 대두되어 법정 소송까지 가야 했던 금서였다죠. 통속적인 소재라 한다면 '마담'의 결혼 이후의 사랑, 즉 '외도'를 소재로 삼은 이야기라 볼 수 있지만 조금 더 여러 시선에서 해석해보자면 저는 제도권 안에서 인간이 짊어진 책무, 바로 기능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욕망에 휩싸여 조절하지 못한 삶이 어떻게 한 인간과 그 인간을 둘러싼 세계를 처절하게 파멸시키고 마는지를 볼 수 있기도 했었네요.
조금은 솔직하고도 공격적으로 느낀 바를 말해보자면, 여전히 마담 보바리를 다시 읽어도 제 기준에서는 엠마가 형편없이 안타까운 인물로밖에는 생각될 수가 없어요. 게다가 작가인 플로베르가 여성 혐오자였나 싶은 생각도 들기까지 했고요. 도대체 이런 너저분하고 멍청이 같은 외도와 혼외정사를 저지르는 젠더를 하필 여자로 다루었다는 것에서 약간 화가 치민 것도 있었죠... 물론 안타깝게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가령 열정이나 낭만을 잃어버리기 쉬운 환경에 처했다는 것이 - 그녀가 속한 배경과 배우자의 성향들이 - 안타깝긴 했지만요. 게다가 그런 환경설정들로 인해 그녀가 젊고 아름다운 레옹과 잠시나마 정신적 교감을 나누게 된 것이나, 그 후에 타오르는 욕망에 휩싸여 로돌프라는 인물에게 빠지게 되는 것들이 약간은 명분이 될 수 있다 치지만...
엠마는 결혼을 하기 전에는 샤를에게 애정을 품고 있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그 사랑의 결과로 주어져야 할 행복이 느껴지지 않자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엠마는 책에서는 그토록 아름답게 생각되었던 '행복'이니 '정열'이니 '사랑의 도취' 니 하는 말들이 생활 속에서 정확히 어떤 의미로 이해되고 있는지 알려고 애를 썼다. p. 49
그들 사이에 친밀함이 더해 감에 따라 내면의 분리가 일어나면서 그녀는 남편에게서 멀어져 갔다. 샤를의 대화는 마치 길가의 보도처럼 재미없는 것이었으며, 누구나 하는 뻔한 생각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줄지어 지나가기만 할 뿐 감동도 웃음도 몽상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p. 57
엠마는 그녀가 처한 환경에서는 도드라지게 매력적인 여성으로 그려져요. 충분히 욕망을 갈구할 수 있을 만큼. 그렇지만 그것이 겉으로 보이는 매력으로밖에 비치지 않아서 저는 조금 안타까웠어요. 현재에 비유하자면 광고가 반 이상인 잡지를 그 당시의 '여성 신문'으로서 정기적으로 구독한다든지 신상 의상이나 각종 장신구와 같은 패션에 예민한 인물로 그려지며 사치스러운 생활과 감각적 쾌락과 마음의 기쁨'만'을 추구하는 인물로 드러나죠. 뭐 개인 취향이니 뭐라 할 수 없지만 저로서는 명징하게 일갈하며 그녀는 정말이지 외도할 자격이 없다고! 까지 생각하게 되고 만 것은 다름 아닌 그녀가 결혼 이후에 자신의 책무와 역할적 인간으로서의 '생활'에 전혀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 채 결혼의 '현실 생활'을 잘 유지하기 위한 어떤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었기 때문이었어요. 엠마의 의지라 함은 그저 욕망과 쾌락을 향한 의지만 있었을 뿐...
그녀는 레옹을 사랑하지 못한 자신을 저주하면서 그의 입술을 갈망했다. 달려가 그를 다시 만나 그의 품 안으로 몸을 던지고는 '나예요. 나는 당신 거예요' 하고 말하고 싶은 욕망에 그녀는 사로 잡혔다. 그러나 엠마는 그러한 시도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지레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러므로 그녀의 욕망은 후회의 감정으로 인해 더욱 강하게 끓어올랐다. p. 159
자신의 딸아이 조차 아들이 아니어서 아쉬워하며 다른 보모나 하녀에게 맡겨놓는 형국이라니! 가정경제를 파탄시켜버리고 마는 머저리 같은 소비행태로 채무를 배우자에게 안겨주는 꼴이라니! 샤를 보바리도 사실 한몫하는 바보였죠. 아내가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도대체 그는 뭘 하고 있었는지. 다른 사람들을 고치는 의사로서 충실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에 독버섯처럼 퍼져나가는 어떤 욕망을 향한 병적인 악순환은 고치지 못하고 만 셈이니. 결혼하기 전에는 '낭만'이었지만 결혼 한 이후에는 '생활' 이 지속된다는 걸 엠마는 정말 몰랐을까요. 만약 알았어도 그녀에게는 '생활'을 그럼에도 잘 유지하려는 일련의 '노력' 은 작품 속에서 잘 느껴지지 않았었네요.
결혼 이후에 마주한 레옹이나 로돌프, 그 타자들을 향한 신선하고도 관능적인 내면의 욕망에만 충실한 채 배우자인 샤를 보바리를 향한 무너져 버린 사랑을 '탓' 하기만 한 엠마는 결국 삶의 대가를 '죽음'으로서 혹독히 치르게 되죠. 그런데 더 비참한 건 남겨진 게 고작 '빚'이었다는 것... 게다가 그녀의 정념과 욕망을 채워 주는 그 밀회의 대상자들은 그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칠 것 같이 굴었다가 말미에서는 철저히 그녀를 외면하고 말아 버리죠. 여자는 사랑을 했지만 남자는 그 사랑을 '이용' 한 걸로 밖엔 비치지 않아서 더 안타까웠고요. 그러하니 남녀의 사랑에 대한 접근법과 시선이 정말 다르다는 걸 많이 느끼고도 맙니다...
결혼은 물론 보편적으로 낭만으로 시작된다죠.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사랑 그 후의 일상'처럼. 다만 낭만적 결혼 그 후에 '생활' 이 남는다는 걸 조금 더 일찍 깨닫게 되는 커플이라면 서로 어떤 일련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이해받고 싶은 사람이자 감히 영생하지 못하는 인간이 한 사람에게 영원을 약속하면서까지 혼인계약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숙고해야 할 문제죠. 물론 더 큰 문제는 우리는 그 결혼이라는 걸 절대 숙고해서 하지 않는다는 것. '어쩌다 결혼'을 하게 되기도 하고 '겨우' 하기도 하고 '등 떠밀려' 하기도 하고 여러 형태의 결혼 서사들이 있겠죠... 두 사람만 아는 '이야기' 말입니다.
낭만은 희소하고 생활은 길죠. 그 희소하지만 격정적인 낭만이 더 빛을 발할 수 있는 건 다름 아니라 현실 생활이 건강하게 유지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건강한 생활이란 그럼 무엇일까요. 사실 저도 아직도 잘 모르겠고 개인 차이가 있겠지만, 저로서는 일단 가족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어떤 인생의 '목표'가 확실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두루뭉술 사는 게 아니라 어떤 확실한 '목표' 말이죠. 좀 비즈니스 적이어도 어쩔 도리가 없어요. 그것이 가정 경제가 되었든 가족계획이 되든 아니면 그 무엇이든. 결혼도 일종의 장기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죠.
결혼은 '집단 무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자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면 가족 구성원은 - 특히 부부는 - 각자 맡은 역할과 책무를 지켜야 하겠죠. 최소한 대충 혹은 소홀히 이런 생각은 서로 하지 않는 게 바람직한 태도이자 예의일 수 있겠고요. (너무 프로테스탄티즘적일까요. 의외로 이런 면에서는 제가 보수적이기도요;) 물론 그 책무를 너무 열심히 지키다가 번 아웃되어 서로 따로 또 같이 흔들리는 상황이 오더라도.... 말이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의지'와 '노력'이라는 게 필요한 법이죠. 성공적으로 결혼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파국 없이 무사히 클로징(?) 시키기 위해 각자 맡은 정신적 기능적 롤플레잉을 잘 수행해내는 것... 하물며 외도를 하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좀 현명(?) 하게 피해자를 덜 만들 수 있는 기본은 바로 '생활'을 제대로 똑바로 철저히 견고하게 수행하고 나서야 그제야 타자를 사랑할 자격도 생기는 게 아닐까 싶고, 이렇게 또 급작스레 헛소리를 하고 맙니다만.
현실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투쟁. 그것은 바로 책임. 결혼을 하면 각자 '가정' 속의 '책임자'가 돼야 하는 어른 다운 각오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결혼 이후의 생활이 사실 더 어려운 법이겠죠... 정말이지 몇 시간짜리 결혼식이 뭐 그리 중요할까요. 연애할 때야 서로 뭐가 아쉬울까요. 결혼을 해서 그야말로 박 터지게 싸워 보기도 하고 그제야 내가 알았던 연인의 민낯을 처절하게 발견하고, 그 이후에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면서도 서로의 견해를 좁혀가며... 뜨거운 밀담이나 밀회는 현실 생활에서 보기 힘들겠지만, 그래서 오히려 생활적으로는 담백하고 건강하게 위트 있는 풍요로움을 가족 구성원 간의 좋은 기억으로 승화시켜 더 많이 만들려는 서로의 끈질긴 분투력과 '가정'을 지키기 위한 일련의 투쟁....
결혼을 한 부부라면 - 설령 외도를 한들 혹은 하지 않든 - 언제나 그 생활적 '투쟁력' 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결혼생활에서는. 인생에서 배우자가 '내 세상'이었는데 어느새 내 세상에서 이탈해서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보장 또한 확실히 할 수도 없는 법이겠죠. - 특히 남자라는 종은 번식의 욕구가 있다죠. 그들에게 낭만은 섹스로 연결되기 쉽다 하니까 말이죠. 하... 이기적 유전자입니다 - 끝까지 지키고 싶은 선명하고 굵은 끈 하나.... 사라지는 낭만을 그럼에도 이길 수 있는 생활 속 무언의 끈질긴 분투력. 조금은 삭막하고 그래서 서글퍼지고 입술을 꽉 깨무는 생활의 연속이어도. 그 분투력이 꼿꼿하게 남아 있다면 결혼생활을 견뎌내고 이겨내고 또 한편으로는 다시 좋아지게 되는 경우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진화의 외도라는 책에서는 '결혼은 번식을 위한 목적적 결합이고, 헤어짐은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한다.'라고 발칙하게 진화생물학적 메커니즘으로 정의해버리고 말아서 사실 일정 부분 공감을 해 버리고 말았지만. 최소한 그럼에도 우리가 '낭만'으로 사랑을 시작했다면, 그 후의 '생활'을 어떻게 잘 유지해야 하는가를 꾸준히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그렇지만 민님. 편지는 이렇게 두서없이 쓰고 말았으나 사실은 저로서도 매우 유감인 건... 그이와의 사라지는 중인 '낭만'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아니 되찾을 의지가 내 안에 있기는 한 것인지, 지금 화평하다고 느끼는 현재의 결혼생활이 확실히 나의 행복이라고 정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지, 무엇으로 인해 설거지를 하다가 서글퍼지고 마는 것인지. 저로서도 인생의 역설을 경험하고 마는 것은 다름 아닌 '결혼' 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운 과업이에요. 결혼을 결정하는 것보다 결혼을 잘 지켜내는 것이 더.
- 어려워도... 낭만과 현실, 모두 잘 지켜내고 싶은 욕심 많은 헤븐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