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미쳐야 해요

by 헤븐

미친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세계... 게다가 가급적 확실하게 미쳐야 손에 잡히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낭만' 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문득 해 보았어요. 민님께서 알려주신 낭만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니 현실에 '매이지' 않는다고 정의되어 있다니, 맙소사. 국어사전은 자비롭지 못하네요. 우리의 삶 대부분은 현실적 생활로부터 동떨어질 수 없는, 현실에 매일 수밖에 없는 노릇인데 말이죠. 사회나 집단에 소속되어 그 사회가 만들어 낸 여러 기준과 제도를 배우고 자라며, 급기야 우리는 결혼이라는 제도권에 들어가 가정이라는 무리 집단을 새롭게 만들며 살아가기도 해요. 혼자의 시간이 둘의 시간이 되고, 그 둘의 시간은 넷의 시간으로 변해가는 것이죠. 연습할 겨를 없이, 멈춤도 없이, 그야말로 생방송이죠. 그렇다면 현재 제가 연출하는 이 프로그램은 출연진 교체가 거의 없어서 조금 우울하고(?) 방송사고도 잦아서 자주 울고 마는 서툰 감독의 라이브 스트리밍이겠습니다만... (흑)



낭만을 관리하는 방법을 물어보셔서 문득 흘러온 시간을 떠올려보게 되었어요. 안경이 잘 어울리며 유난히 흰 피부가 꽤 매력적이었고, 상냥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의 남자를 발견하고 결혼이라는 숲에 들어갈 결심을 하죠. 그 숲에서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워킹맘으로 여러 생활적 미션을 10년 채우고 나니 그제야 그녀는 깨닫게 되었죠. 아... 결혼은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잘 지내야 비로소 유지될 수 있는 인생수업의 천국이구나 라고. 결혼이란 누가 말했듯 판 돈 떨어졌다고, 할 마음이 사라졌다고, 쿨하게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그런 세계가 절대 아니며, 하물며 유자녀 기혼자들에게는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해서도 안 되는 강직하고 견고한 책임의 세계구나 라고. 그러니 '나름대로' 그 판을 즐겨야 한다 라고. 그 판을 즐길 수 있도록 내밀하게 축적되고 마는 것이 바로 '낭만' 이며 우리는 각자 조용히 그것들을 갈망하기도 하죠.



미취학 아들 두 명의 각종 블록 장난감과 색연필과 스케치북과 슬라임이 널브러진 방들을 정리하다가 자주 그것들에 발을 찍히곤 해요. 덧신을 신어도 느껴지는 찌릿한 아픔은 '매어있는' 현실의 비릿한 우울을 안겨주고 말죠. 집안의 생필품과 식재료를 챙기며 식구들의 건강과 영양, 거기에 재정관리에 '집'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각종 구성원의 삶을 나름 관리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삶의 어떤 명분과 정당성과 가치와 의미를 깊숙하게 생각하다 보니 돌연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기 일쑤기도 하고요. 아이들에게 야채를 골고루 제대로 먹이기 위해 소고기 야채 볶음밥 신공을 펼치며 프라이팬 위에서 열심히 손목을 휘두르면서 한쪽에 따라 놓은 유리잔 안의 맥주에 입을 갖다 대며 '마담 보바리' 나 '안나 카레니나'를 격렬히 그리워하기도 하죠. 생활 속 보이지 않는 권태와 우울과 연한 분노가 계속됨에 가끔 못 견딜 만큼 지치고 힘들 때는... 말입니다.



워터하우스 오필리아.JPG John William Waterhouse, Ophelia 1894




'돈과 시간관리에 철저한'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잘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모습이 반쯤은 틀린 답처럼, 누군가의 모습을 절대 설명해주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안타깝게 경멸할 수밖에 없었던 마담 보바리의 어떤 모습들을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강렬히 원했다면. 이렇게 이중적인 인간이라는 걸 들켜버리고 맙니다. 저는 제가 일상에서 가끔 바라고 마는 이중적인 감정의 낭만들이 좋으면서도 가끔 미워지곤 해요. 안전하고 싶지만 확실히 불안전하고 위험한 길티 플레저를 바라고 말죠... 순수하고 잘 웃고 착해 보여도 한편 퇴폐적이고 어둡고 우울한 늪지대 같은 속마음은 곧잘 감춰버리고요. 웃다가도 자주 울고 싶은 감정에서 휘청거리기도 하고. 평소의 모성적인 침착함과 온화함은 사라진 듯 에스트로겐이 과다 방출되는 시기면 옥시토신과 도파민에 무력하게 지배당한 채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경계에 머무르며 위에서 그를 쳐다보며 맹렬하게 공격하려는 고양이가 된 듯 슬며시 웃고 있는 저를 머릿속에서 떠올리기도 하고 말죠...



자신이 바라던 향락과 쾌락과 현실에 매어있지 않으려던 그 낭만을 끝까지 쫓아 가보는 마담 보바리의 치명적이고 위험하며 파괴적이지만 그 자체로 '자신'이었던 엠마의 삶이 사실은 무척이나 부러운 태도인 셈이죠... 저는 절대 현실과 생활을 버리지 못할 인간으로 굳어진 터라. 문득 '슬픔이여 안녕'을 18세에 쓰고 돌풍을 일으킨 '프랑수아즈 사강' 이 떠오르고도 마네요. 두 번의 결혼 그리고 이혼, 큰 교통사고로 인해 약물과 알코올에 의지하며 문학과 예술계 거장들과 내밀한 유대 관계를 쌓았던 작가... 그녀의 삶 자체가 어쩌면 따라가지 못할 작품, 그녀가 추구했던 삶의 낭만 그 자체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을 감히 하고 마네요. 감당할지 말지를 생각하기 이전에 그냥 움직이고 마는 그녀들의 삶에서 제가 감히 부럽게 느끼고 갈망하고 말았던 낭만은 과연 어떤 형태의 것이었을까요...



상대를 기쁘게 하는 것 말고 우리가 대체 무엇을 추구해야 한단 말인가? 상대를 사로잡고 싶어 하는 이런 욕망이 지나친 활력이나 지배욕에서 나오는지, 아니면 입 밖에 내서 말하지 않는, 자신감을 북돋을 은밀한 필요에서 나오는 것인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 슬픔이여 안녕, p.15 -




Frederick Leighton, The Fisherman and the Syren 이들의 낭만은 같았을까요...





'슬픔이여 안녕' 은 세실이라는 여주인공이 '학생' 이자 '딸'의 시선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아프게 경험하면서도 은밀히 자기만의 세계 안에서 어떤 '낭만'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녀를 둘러싼 어른들의 뒤틀어진 '낭만' 마저도 담고 있는 것도 같았고 말이죠. 주인공이 아버지와 한 달을 보내게 되는 프랑스 남부의 한 별장을 배경으로, 어머니를 여읜 세실과 그녀의 아버지는 별장으로 젊은 정부를 데리고 오죠. 그런데 죽은 엄마의 친구인 나이 많고 세련되고 우아한 여자인 안이 도착하면서 주인공과 아버지의 휴가는 소용돌이치고 말아요. 상대를 교체하는 것에 익숙하듯 안과 다시 사랑에 빠진 아버지, 결혼하고 싶어 하는 남자. 그리고 그 결혼 계획을 수포로 만들기 위한 계략을 꾸미는 딸 세실. 절망으로 내몰려 운전대를 틀어 자살하고 마는 안... 도대체 '사랑' 이란 무엇일까요. 감히 통제하지 못하고 마는 누군가의 테스토스테론과 바소프레신은 급기야 그들의 전전두피질의 이성적 명령을 듣지 못하게 도파민에 지배당하듯 에스트로겐과 옥시토신을 가진 그녀들에게 다가가려는 번식적 열정과 거느림의 세력다툼에 불과할 수 있는 것을! (아... 이기적 유전자가 불현듯 생각나고 말아서 이렇게 헤매고 맙니다)




밤늦게까지 우리는 사랑에 대해, 사랑의 복잡 미묘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가 보기에 사랑이 복잡하다는 것은 모두 뜬구름 같은 얘기였다. 그는 정절, 진지함, 약속 같은 개념을 철저히 거부했다. 그런 것들은 현실성도 없고 지킬 수도 없다고 내게 설명했다.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나는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경우에는 그런 연애관이 애정이나 헌신을 배제하는 것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런 감정들을 원하는 만큼, 그리고 그것들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만큼 애정이나 헌신 같은 감정들은 그에게 쉽사리 다가왔다.


- 슬픔이여 안녕 -




어른이 되면 우리는 일상 속 현실 경제의 어떤 '안전한' 가성비들을 추구하게 되고 말죠. 결혼도 만약 사랑의 안전한 장치라고 착각하며 행하듯이. 그렇게 어른이 될수록 어떤 안전함에 길들여지는 순간 우리는 반대로 잃게 되는 것들이 꽤 많은 것도 같아요. 낭만이 어쩌면 바로 그 영역에 속할지 모르고요. 안전하다면 절대 경험하지 못하고 마는 뜨거운 열정과 비장한 아름다움, 급속도로 퍼지고 마는 중독적인 마성적 끌림. 그것은 낭만의 영역이지 현실의 영역은 절대 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니까요. 올해로 결혼 10년 차에 미취학 아들 둘을 보살피는 기혼녀가 되어 버린 제게 있어, 개인적 낭만을 소멸시키지 않고 살려내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따라가며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아무리 생각해도 관리는 가당찮고 그저 내면에서 은밀하게 간직하고 마는 낭만을 죽이지 않는 방법... 그 개인적 낭만을 지키기 위한 방법은 딱 하나밖에 떠오르지 못하고 마네요.



gg.JPG 개성화된 자신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사람들에겐 빛이 나는 법이죠... 찾기도 지키기도 힘들어서, 그래서 빛나는 것.


때로 미쳐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낭만을 얻으려면, 지키려면,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우리는 때때로 미쳐야 하죠. 미칠 줄 알아야 해요. 그런데 그 미침의 정도가 그냥 대충 미친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확실하게 미쳐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고도 말아요. 마치 등가교환의 법칙처럼. 삶에서 하나를 얻으려면 반드시 하나를 내놔야 하죠. 신의 제단과 달콤한 선물에는 그에 응하는 대가가 따르듯 말이죠.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인 에로스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거는 프시케처럼. 미칠 줄 안다는 건 그만큼 용기가 있는 사람들만이 저지를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영역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자신만의 개성화된 취향을 흔들림 없이 고수하거나 오랜 시간 축적해 온 개인의 오티움 혹은 리추얼 같은 것 말이죠. 아니면 누군가들에게는 살아 숨 쉬는 대상으로부터 찾고 마는 낭만이 될 수도 있겠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랑과 낭만은 여러모로 닮았네요.



우리는 무릇 가장 얻기 힘든 것을 가장 사랑하는 법이라죠. 그러니 낭만이 현실에서 가장 얻기 힘들다면, 그럼에도 그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잘 간직하고 싶다면, 결국 현실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는 찰나의 용기, 때로 미칠 수밖에 없겠다 싶어요. 미친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는 세계, 그것이 바로 '낭만' 일지도 모르니까요. 현실과 생활은 길고 지루하고 권태롭고 비슷하게 흐르기 쉽죠. 사실 저로서는 가끔 그런 현실 안에서 그저 사랑하는 누군가가 온전히 안전하게 잘 살아 있으니 감사하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찾아라!라는 식의 이야기가 일종의 자기기만처럼 느껴지고 말아요. 모든 사랑과 낭만에는 질투와 소유욕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지 않나요. 특히 사랑은 원래 불평등한 것 아니던가요. 모든 사랑은 어쩔 수 없이 언페어 게임처럼 누군가가 결국 더 많이 사랑하고 그래서 아플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더 말을 걸고 안부를 묻고 더 곁으로 다가가고 더 마음을 쓸수록, '내 영역'의 상대를 더 쉽고 지루하게 느끼기도 쉬운, 인간이라는 지독한 유전자들의 사랑...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John Everett Millais Ophelia 1851.JPG John Everett Millais Ophelia 1851, 오필리아에게 햄릿은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사랑이자 욕망 혹은 낭만의 영역이었을까요



긴 현실을 버티게 만들어 주는 것이 만약 '낭만'이라면. '세렌디피티' 적인 낭만은 되도록 열심히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불시에 발견하고 마는 일종의 뜻밖의 즐거움이자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만나는 강렬한 희열이라면. 그리하여 현실과 생활을 외면하지 않은 상태의 우리가 발견하는 혹은 지키고 싶은 낭만은 얼마든지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실에서 벗어나 모험을 떠날 용기를 간직하고 있다면. 그리하여 민님이나 제가 일상에서 생활을 돌파해 나가면서도 다채로운 장르의 문학을, 책을, 글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읽고 쓰고 생각하며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혼자의 시간을 찾아 깊이 침잠하고 마는 것도 일종의 용기가 있으니 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돌연 우리들의 일상 속 어디선가 미풍처럼 불어오는 세렌디피티나 길티 플레저를 행여나 만나게 된다 한들. 미치지 않고서야 얻을 수 없는 낭만의 영역이라면 선택은 자신이 할 뿐이겠죠. 마음속에 엄청난 갈증과 보이지 않는 감옥을 만드는, 감당할 수 없는 질문에 스스로 공격당하고 이겨낼 수 없는 열망에 주눅 든다 하더라도. 가장 얻기 힘든 것을 가장 사랑할 용기가 있다면 그 시점이 바로 미쳐버리는 시점이 되듯이.



민님이 낭만을 관리하는 방법을 여쭤봐 주신 덕에 저도 모르게 그 사소한 단어의 자극으로부터 제 기억의 봉인이 확 풀려 버려서 두서없이 편지를 쓰고 마는 우를 저질러버렸어요. 그러나 민님. 이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이 순간, 과실주 세 잔을 마시고 혼자 식탁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이 편지의 답신을 보내며 떠오르는 생각들과 문장을 정리하는 이 시간은 말이죠. 먼바다를 떠올리고, 어떤 시간과 장면을 상상하는 저로서는, 이것 자체들이 굉장히 사치스러운 시간이고 그리하여 기능적 인간으로서는 죄스럽고 또 미안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도 않은 현재의 이 낭만은, 제가 꽤 열심히 지켜보고 싶은 길티 플레저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John William Waterhouse Miranda 1875.JPG John William Waterhouse, Miranda 1875



- 현실 속 작지만 확실한 낭만, 길티플레저를 잘 간직하며 살아보고 싶은 헤븐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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