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라도 제대로 닿을 수 있다면...
남자와 여자. 정말 다르면서도 한편 비슷할 수 있는 '인간' 으로서의 우리들은 그래서 사실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일지도 모르겠어요. 혼자든 아니든, 사랑을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부부로 매듭지어졌든 그러지 못했든. 오로지 죽는다는 것 이외에 우리가 확실하게 이 세계를 살아가며 장담할 수 있는 게 과연 얼마나 될까 싶어요. 그만큼 불확실한 세계에 태어나 불완전한 모습으로 살아가니까. 그런 우리들은 일상 곳곳에서 각자의 외로움을 조용히 지닌 채 살 지도 몰라요. 그러다 어느 날, 나와 비슷한, 그러나 내가 될 수 없는 누군가와 우연히 닿게 된다면 어떨까요. 그리곤 점점 그 우연한 형태의 첫 감정을, 느낌을, 생각을, 망상에 가까운 상상을, 어쩌면 '사랑'이라고 부르며 서서히 서로에게 이윽고 '남과 여'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종일 하면서, 내내 답신을 쓰다 지우다 생각에 빠지다를 반복하던 요즘이었어요.
상민과 기홍. '남과 여'가 우연히 만나는 곳은 설국의 핀란드죠. 민님이 말씀하신 대로 저도 그 배경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 시원해져서 기분이 좋았어요. 최근에 다시 봤는데도 그 배경은 여전히 어떤 그리움을 불러일으킬 만큼요... 상민과 기홍, 두 사람은 서로 다르듯 비슷한 이유로 각자 아이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먼 타국의 학교까지 다니게 되고, 때마침 유일해 보이는 동양인 게다가 한국인이었으며 그들을 잠깐 같이 있게 만드는 눈보라 또한 그들을 고립시키게 만들어요. 그런 배경 상황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곳은 두 사람에게 있어서 일상이 아니었을 테죠. 일상이 될 수 없는 곳.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잠시 머무는 곳. 떠나야 하기에 조금은 편하게 자신으로도 있을 수 있는 곳. 영화적 장치라 생각될지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사실 우리 인생에서 영화보다 더 한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던가요. 그러니 '남과 여'는 사실 허구라고만 보기에는 어딘지 아쉽죠. 그보다 더 기적 같고도 어처구니없는 현상과 관계의 연결들이 세상엔 벅찰 정도로 꽤 많이 탄생되기도 하니까요.
대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상민과 기홍 사이에는 원활한 발화적 대화가 오고 가지는 않아 보여요. 않는 게 아니라 '못했다'라는 게 어쩌면 더 어울릴지도요. 서로 이미 가족과 배우자로 묶여 있는 기혼자로서의 그들이 과연 어떤 대화를 어떤 형태로 나눌 수 있었을까 싶은 것이에요. 게다가 그들에게는 관능적이고도 감각적인 몸의 대화, 즉 에로스가 발산되고마는 육체적 교감은 실로 강렬하게 그들을 연결시켜버리고 말죠. '우리가 뭘 할 수 있어요'라는 말... 그래서 상민의 이 문장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던 건 아마도 그녀는 설령 '그 사람 없이는 안 되겠거든. 나도 날 용서할 수 없어'라는 말을 내뱉을 만큼 자신의 열정과 다시금 생동하는 육체가 정신없이 기뻤겠지만 동시에 한없이 절망적이었겠죠. 각자 또 같이 여러 형태의 절망을 감내해야 연결되는 관계. 그렇지 않으면 금세 소멸되기 쉬운 연결고리.
우울증에 걸린 아이와 감정조절을 하지 못한 채 조금 덜 자란 것 같은 제멋대로인 배우자. 그 환경 속에서 그저 그들을 지키려 묵묵히 견디고 있었던 기홍. 그 남자는 자신과 비슷한 외로움을 그대로 상민에게 직감적으로 느껴버리고 말았던 걸까요. 그녀 역시 자폐아를 가진 엄마로 워킹맘으로, 그 환경설정만으로도 충분히 시시포스의 형벌을 받는 것처럼 지치고 반복되는 무거운 일상에서 그녀 내면의 고독이나 슬픔을 이해해주는 이는 사실 보이지 않죠. 배우자가 있음에도 말입니다. 상민과 기홍에게 각자 정신과 육체를 고갈되고 메마르게 만드는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두 사람은 '생활'을 유지할 뿐이었겠죠. 낭만은커녕 그 생활조차도 감내하기 벅찬 일상을요. 그런데 그런 그들이 우연히 핀란드에서 만나서 짧지만 강렬한 교감을 나누게 되고 말아요. 고달픈 정신과 굳은 육체에 생기와 물기가 들어서는 순간이었죠. 마치 신의 장난처럼. 어쩌면 그 '하루'는 그들에게 있어서 정신과 육체의 대화를 나눈 유일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정신과 육체의 대화... 메마른 정신에 물기를 얹혀 평온을 만들며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굳어진 육체를 움직이게 만들어, 끝내 맹렬한 열정을 자신으로부터 발현시켜 생동하게 만드는 그것... 살아 있다는 자기 존재의 강렬함을 갖게 만드는 것. 남녀의 성 에너지만큼 세상을 움직이는 강한 원력이 되는 건 드물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기홍과 상민의 육체로 나누는 교감은 분명 그 시간이 서로를 채워주는 충분한 대화가 되지는 않았을까 싶었네요. 제가 너무 발칙한 걸까요... 그러나 몸은 정직하죠. 거짓 없이 움직이고 마니까요. 그래서 잘 제어하는 절제미도 필요한 셈이죠.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는.
발성되지 않아도 발화되지 못했어도 두 사람 간 유대를 지속하게 만드는 강렬한 '마음'의 원천은 바로 그 정신과 육체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생각돼요. 그렇다면 기홍과 상민의 정신과 육체는 서로 합쳐졌다고 볼 수 있겠지만 사실 세상은 두 '남과 여' 에게 당신들의 '대상' 이 잘못되었다는 낙인을 찍기 쉽죠. 전통적 결혼제도란 그렇게 어떤 현상에 대해 단편적인 낙인들을 찍어가며 그 고유한 제도를 위풍당당히 유지했을지도 모를 테니까요. 물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그것을 파괴적 혁신으로 그들만의 혁명을 달성한 셈이겠고요. 에바 일루즈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이야말로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비할 조항'을 그 철학자들은 만들고야 말았으니까.
서로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의식하는 주체들의 의지를 저울질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계약이다. 다시 말해서 조건을 지키지 않았을 때 내려질 처벌까지 규정할 때에만 진정한 계약이 성립한다. 계약은 정의에 맞게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비할 조항을 갖추어야만 한다.
- 에바 일루즈, 사랑은 왜 끝나나, p. 20 -
기혼자들의 열정을 방해하는 건 그렇다면 무엇일까, 저는 요즘 종종 이런 생각에 빠지게 되고 마는데요. 여러 요인들이 뒤섞여있겠지만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르고 마는 건 역시 아직 애송이인 저로서는 '양육' 그리고 '가족' 이라든 집단 무리를 향한 남녀 간 너무나도 다른 인간의 본능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돼요. 무릇 여자는 로맨스와 헌신을, 그러나 남자는 섹스와 번식을 좋아하는 생물학적 종으로 태어났다면서요.거역하고 싶어도 거부할 수가 없이 만들어진 이기적 유전자인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이고 우주의 하찮은 존재란 말이던가요.
게다가 우리는 한 대상에게 그야말로 돌진해버리다가도 막상 '매듭' 이 생기면 다시 그 매듭을 자유롭게 풀어헤치려는 욕망을 잘 제어해야 해요. 막혀버리는 대화와 그저 그런 섹스의 연속. 그야말로 퍽퍽한 일상이 마음을 식게 만들어도. 아니면 이미 식은 마음에서부터 새로운 사랑이 싹트고 말아도. 정신과 육체의 대화가 서로 잘 가닿지 못해서 생기는 간극 때문이라지만 한편으로는 '욕망의 진화' 처럼 다른 생물학적 종인 사실 하나만으로도 좁혀지지 않은 그 차이를 하물며 같이 살아도 서로 느끼는 것들이 너무 달라서 생기는 것들이 살면서 다수 발생된다면. 얼마나 대단한 노력과 각고의 세심함과 서로 간의 상상력을 요하는 게 바로 인간 남녀의 사랑이, 결혼이 아닐까 싶은 것이예요. 그런데 우리는 일단 '매듭' 지어진 상태 이후에는 잘 알려고도 하지 않죠. 결혼이라는 매듭은 끝이 아니라 고작 시작일 뿐인데도. 게다가 두 사람 이외의 타자가 생겨 양육이라는 과정까지 곁들인다면 더더욱 그 시작에 블랙홀 같은 신세계까지 들어서게 되는 것인데도!
결혼의 비극은, 결혼이 약속하는 것과 같은 행복을 여자에게 분명히 주지 않는다. 행복에 관해서는 보증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여자를 불구로 만들며 반복과 매너리즘에 떨어뜨려 버린다. (중략) 여자는 세계와 자기의 운명을 발견한다. 20세에 가정의 주부가 되어 그때부터 일생 동안 한 남자에게 매여서 아이들을 품에 안는다. 이것으로써 그녀의 생활은 끝이 난다. 진정한 행위, 진정한 일은 남자의 특권이다. 여자에게는 그날그날의 살림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때로는 여자를 녹초로 만드는 노동일 때도 있지만, 결코 마음을 충족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여자에게 체념과 헌신의 덕을 설파한다.
- 제2의 성 下, p. 186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사실 고통스럽지 않나요. 물론 그것이 꽤 안전한 고통이지만요. 나 이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그 고통은 스스로에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요. 사적인 고통이라서? 그러하니 사랑은 애초에 얼마나 아픈 영역의 것이란 말일까요. 부모와 자식, 그리고 부부. 그리고 또 달리 탄생되고 마는 사랑, 세상 모든 형태의 사랑들.... 사랑은 본질적으로 보답받을 수 없다 하지만 사실 최소한 기혼자들은 상호 간 정신적 육체적 대화를 제대로, 정말이지 하나라도 제대로 주고받을 수 있어야, 서로의 사랑에 대한 보답과 고마움을 나눌 줄 알아야 오래 유지될 수 있는 것이겠죠...결혼 이후의 유일한 미션이자 계속 가지고 가야 할 과제 같은 것.
그 연장선에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를 다시 떠올리자면 그들은 꽤나 신선하고 파괴적 혁신을 통해 정신적으로는 강한 유대관계를 글과 사상, 사유와 지적 영적 철학적 대화를 통해서 오랜 시간 교류하면서도 동시에 육체는 다른 우연한 사랑에게도 '나눌' 수 있도록 오픈시키는 과감함까지 발휘하여 육체적 교감까지도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범위 안에 놓으려 애쓴 걸로 보여요. '작별의 의식'이라는 일종의 동반자에서 보호자로 변한 보부아르의 간병 일기와 같은 내용들을 읽어보면 실로 그 두 사람이 대단했던 건 결국 정신적 대화의 스펙트럼과 육체의 대화를 나누는 범위마저도 실로 자율성과 자주성을 내세웠기에 가능한 것이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자신에게 그리고 연인에게 진실하려면 결국 자신의 욕망뿐 아니라 동반자의 욕망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두 사람은 알았었겠죠...
그것은 말로 할 수 없고, 글로 쓸 수도 없고, 생각으로 할 수도 없는 것, 이를테면 삶으로 산 것, 그게 전부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그러나 웃고 있었다. 사실은 그 모든 일들에 그는 아주 즐거워하고 있었다. 사르트르는 자부심이 강해서 절대 허영에 빠지지 않았다. 모든 작가들처럼, 그 역시 자신의 작업이 거둔 성공과 그 영향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과거란 곧바로 넘어서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전부를 건 것은 바로 미래, 그러니까 그의 다음 책, 그의 다음 희곡이었다.
- 작별의 의식, p. 19, 218 -
사실.. 편지를 쓰면서 몇 번을 고쳤어요. 상민과 기홍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리고 제가 미처 가물가물한 기억 탓에 잘 쓰지 못하고 만 '비포 시리즈'의 제시와 셀린느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 마음과 저희 '부부'의 대화에 대한 이야기를 꽤 많이 저도 모르게 줄줄이 적고 있더라고요. 그 시간이야말로 제가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 기억이, 장면이, 생각이, 마음이 글로 나타나 글이 써지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고 마니... 잠시 적절한 제어와 삭제를 하면서 이렇게 어설프게 끝을 맺는 저를 용서하시길.
그런데 민님.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과 육체는 뗄 수 없기에 무엇 하나 어긋나면 전체가 흔들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말아요. 그리하여 제가 애쓰듯 노력하고 있는 현재의 정신적 육체적 대화의 게이트라 볼 수 있는 소극적이지만 꽤나 귀여운 스킨십, 답신 없이도 지속되는 메시지나 쪽지의 연속, 매일의 안부와 블랙코미디적인 대화 속 유머. 이것들이 설령 폭발적인 일방적 호응에서 안타깝게 유지되는 것이라 해도, 제가 그를 향해 이런 '관심' 마저도 주지 않으려 한다면 두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대화는 금세 소멸되고 만다는 걸 알 것 같기에...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미취학 아동을 겨우 재우고 난 부부의 현실 장면 속에서 - 거실에서 누워서 영화를 보는 한 사람과 식탁 위에서 키보드를 불타게 두드리며 잠시 쫑알거리던 한 사람 - 이것이 정말 건강하다고 볼 수 있을지, 아니면 웃기고 또 궁색한 진지함을 머금은 채 이런 마음을 드러내야 하나 조금 고민하고 말았네요.
당신은 왜. 이제는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건지. 예전의 궁금함은 다 어디로 갔는지.
당신은 왜. 어째서 내 마음이 여전할 것이라고 그렇게 확신하고 또 믿을 수 있는 건지.
우리가 흔들림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정녕 확신할 수 있는 건지.
우리는 한 때 서둘러 키스하고 앉으려 했지만, 왜 조금씩 점점 더. 어째서 느리게 소멸해가는지를...
-글을 쓰다가 입술을 꽉 깨물어 본, 게다가 구구절절 길어진 편지 앞에서 잠시 어쩔 줄 몰라한 헤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