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이라고 불러 주셔서 정말 반갑고 고마웠어요. 사실 내내 갈망하는 것이거든요. 이름이 불려진다는 것. 그렇게 제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를 주고 받는 시간만큼 저로서는 큰 위로이자 기쁨을 느끼게 해 주는 선물은 사실 없을 테니까요. 이번 편지에서는 저 또한 '님' 자를 생략하며 선을 조금 넘는 이야기를 잠시 솔직하게 털어놓아 보려 합니다. 현재 시점으로 따지자면 미련한 한탄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지금부터 저의 선 넘기를, 들어주시겠어요. 민.....
운동을 시작했군요. 안 쓰던 근육을 쓰기 시작하든가 자신의 몸을 재발견할 수 있는 시간 중 운동만 한 것이 또 있을까 싶어요. 민의 그 시간, 정말 응원해요. 새삼스럽지만 건강함을 위한 시간뿐 아니라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깊숙하고 진지하게 탐색하고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라기도요. 몸은 상당히 중요하잖아요. 마음만큼이나... 몸과 마음은 그래서 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절대 따로 생각할 수 없는 셈이겠죠. 무엇 하나 무너지기 시작하면 파급력이 상당할 테니까요. 삶을 살리기도 하지만 일순간에 파괴시키기도 쉬운 것... 사실 제게 '몸' 은 그런 것이었어요. 부끄럽지만.
자백하자면 저는 몸을 가학하는 인간에 가까운 편이었어요. 결혼을 하고 조금 더 그렇게 변해간 것 같아요. 신혼 초기부터 연속적으로 유산을 경험하다 보니 묘하게 몸의 주인으로서는 그야말로 '인간실격' 이 되어갔달까요. 몸을 가꾼다든가 지키기는커녕 소홀히 대했죠. 밤을 새우기 일쑤이며 몸에게 잠을 안 재우는 가혹한 주인이었죠. 제대로 된 끼니를 먹지 않은 채로 매일 새벽 6시부터 8시까지, 퇴근하고 6시부터 8시까지. 하루에 몇 시간씩 러닝머신에서 죽어라 뛰며 마싹 말라보기도 했어요. 그뿐이면 다행이게요. 환멸과 자괴감이 치솟을 때면 괜히 복부를 찰싹 때리든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려 한다든가 허벅지 살을 꾸욱 꼬집어 본다든가 아랫입술의 살점들을 손끝으로 세차게 긁으며 생채기 내고 있다든가. 하여튼 그렇게 스스로에겐 잔혹한 인간이 되어갔죠. 아이가 없던 그 시절의 저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셈이죠... 출산 후에도 육아와 가사에 치여서 너무 힘든 나머지 아무것도 목에 넘어가지 못하고 갈증만 난다는 핑계로 못 자고 못 먹고 울기 일쑤이다 보니 몸이 다 뭔가요. 멀쩡한 정신으로 버티며 살기에도 벅찬 시간들... 생각해보니 여전히 몸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다루고 있는 나쁜 주인이 따로 없네요.
그렇게 몸을 소홀하게 다루는 인간의 '섹스'는 과연 어땠을까요. 생각해보니 저는 제 몸을 건강하게 자유롭고 유연하게 다루지 못한 서툰 여자였던 것 같아요. 연애 시절에 오르가슴을 느껴본 경험이 거의 없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자니 통탄할 일이지만 유년시절에는 그야말로 평범한 학생 그 자체였어요. 화장 조차 할 줄 몰랐던, 그냥 빨리 대학생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고 싶었던 여고생...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첫 연애라는 걸 하고 그렇게 처녀막은 터졌죠. 생리 이후 실로 놀라운 '피의 경험'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민. 그런 거 알아요? 왜 저는 그 첫 성적 경험이 좋아야 하는데 되려 불안했을까요. 생각해보니 언제나 섹스할 때 불안하고 한편으로는 분하기도 했어요. 신을 자주 원망하기도 해요. 임신과 출산이라는 사건을 왜 여자의 몸에서만 경험해야 하는 것인지. 테스터기의 줄 하나 차이를 두고 왜 그녀들은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지. 왜 섹스하면서 자유롭게 요구하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되고 마는지. 낙인이 찍힐까봐 두려워하는 자기검열적 생각들. 도대체 왜...
자신의 성감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꽤나 축복받은 걸지도요. 저는 알고 있다 생각하나 여전히 무지하다고도 믿고 있어요. 새로운 곳(!) 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은 걸지도요. 아직 발견되지 못했을 뿐...발견되길 바랄 뿐. 솔직히 남자의 몸이야 돌출형이고(!) 단순하면서 적합한 메인(!) 하나를 확실히 공략하면 그야말로 성적 쾌락과 관능과 몸의 기쁨과 희열을 확실히 느낄 수 있겠죠. 그런데 여자의 몸은 어디 그러하답니까. 흔히 G-스폿이라고 하는 그곳은 강렬한 성적 각성과 오르가슴을 일으킬 수 있는 곳이라던데, 자기 자신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도달하기 힘든 비밀의 숲이나 다름없지 않나요...(휴)
섹스를 프로젝트라고 생각하자면 (좀 웃긴 표현이지만) 남자들은 일단 발기와 사정이라는 메인 스테이지를 확실히 거치면 사실상 엔딩이죠. 섹스 후에 상대를 생각할 줄 아는 매너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게요. 재빨리 몸을 씻으려 하거나 혹은 자신의 에너지 방출에 스스로 뻗어버려서 들숨 날숨을 내쉬는 형편없는 모습을 여자들은 자주 목격하지 않나요. 아무튼 그런 남자 대비 여성은 조금 더 복잡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욕구... 이뤄지기 힘든, 만족시키기도, 만족을 바라기도 힘든 그 '욕구들'에 대해서... 좀 더 털어놓아볼까요. 한숨 한 번 내쉬고.
몸이 가진 기쁨과 관능적 쾌락을 충분히 느끼려면 저는 '전희'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즉 여자에게, 아니 최소한 여자로 태어난 '헤븐'이라고 하는 개인에게 있어서 섹스라는 프로젝트가 무사히 만족스럽게 엔딩을 맞이하려면, 사실 '상대'에 대한 '서사'가 진지하고 낭만적으로 쌓인 '사랑'을 전제로 한 섹스 사전 후의 '맥락' 이 상당히 중요하게 작동해요. 그러나 낭만적 상대임에도 키스나 대화, 아니면 기타 등등 각자만의 패티시나 성적 취향이 담긴 전희 과정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으면 애액은 분비되기가 쉽지 않은 법이죠... 물론 저야 그렇지만 다른 이들이야 뭐 각자의 몸과 성적 취향이 있을 테니 확언할 순 없겠지만요. 아무튼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의 억지스러운 섹스는 그야말로 처참한 엔딩을 맞이하게 되는 셈이 되고 말죠. 거기서 상대를 조금 '위하자면' 탁월한 '연기력' 이 발동하기도요. 좋은 '척'을 하게 되고 마는 거죠. 물론 몸과 제 목소리는 한편 거짓말에 능숙하지 않아서 금방 들통나지만... 아무튼 서로의 기쁨이 아닌 한쪽의 기쁨이 치솟아 어쩔 도리 없이 '펑' 하고 마는 그 찰나의 순간... 과연 그 섹스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했는가. 그런 공허하고 분한 생각을 할 때가 사실 많아요. 기혼녀로서의 '몸' 을 진지하게 생각할 땐 더더욱.
기혼녀의 섹슈얼리티는 어디까지 확실히 사적 기쁨을 보장하고 지킬 수 있는가... 싶은 것이죠. 결혼이란 무릇 장기적 헌신을 담보해주는 일종의 보험 증서 아니던가요. (조금 과장되어 빗대자면) 그런데 생물학적으로 XY 염색체는 한 여자에게 헌신하기가 상당히 힘든 '동물' 이라죠. 결혼시장에서 한 번 낚인 '젊은 여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늙은 여자'가 되어간다는 걸 우리는 모를 리 없죠. 물론 남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XY 염색체는 사실 상황이 좀 다르지 않나요. 그들은 나이가 들어도 띠동갑 아니 스무 살 이상 차이나는 젊은 여자까지도 만날 수 있으며, 집 밖에서 신나게 '뒹굴' 확률이 상대적으로 여성보다 우월하다죠. 경제적 사회적으로 충분히 괜찮은 조건만 갖춘다면. 물론 어디서 뒹구느냐에 따라 난봉꾼이 되느냐 낭만적 로맨티시스트가 되느냐 그 차이일 수 있겠지만 솔직히 '그 놈이 그 놈'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그들도 생각하겠죠. '그 년이 그 년'이라고. 그 몸이 그 몸이라고도.
그러나 사실 이렇게 가볍게 얕잡아 보기에 섹스라는 것은, 남녀의 성행위는, 서사가 구축된 낭만이 살아 있는 두 사람의 몸의 교감은, 그 몸의 언어는, 삶에서 정말 중요하고 진지하게 다뤄져야 하는 건 분명하긴 해요. 몸의 대화가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삶이 얼마나 한 인간을 메마르게 만들기 쉬운지, 엇나가게 만드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으니까요. 그러니 저로서는 결국 상대와의 서사, 섹스 전후의 맥락이 그래서 중요하게 작용될 수밖에 없는 것이겠고요. 몸의 대화도 결국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저로서는. 서로 위로를 주고, 다독이고, 사랑한다는, 인정한다는, 당신의 세상 안으로 매우 몹시 들어가고 싶다는... 두 사람이 만들어 나가는 두 사람만 알 수 밖에 없는 그런 유일무이한 대화요. 그러니 욕정으로만 만나 주체와 객체가 확실히 젠더적으로 구분된 채 이리저리 뒤엉키다가 몇 번의 움직임 끝에 사정하고 끝내버리는 형편없이 지루하고 품위 없는 섹스는.... 정말이지 참담하지 않나요. 그야말로 안 하니 못한...
여자들의 허기, 감춰진 허기, 갈등하는 허기, 금지된 허기였다. 사랑과 인정에 대한 끝없는 허기였고 섹스와 만족과 아름다움에 대한 허기, 보이고자 알려지고자 먹여지고자 하는 허기, 취하고 또 취하고자 하는 허기였다.
인정과 섹스가 하나가 되고 섹스는 배신과 하나가 되며 육체의 욕구들과 영혼의 욕구들은 완전히 헝클어진 매듭이 되어 정체도 알 수 없고 행동으로 옮길 수도 없게 된다. 허기의 통제든 허기에 대한 굴복이든 나는 허기가 한 사람을 어디로 데려갈 수 있는지를 보아왔다.
- 캐럴라인 냅, 욕구들 中 -
뷰티 산업과 헬스, 그리고 관련 의약 산업이 앞으로도 꾸준히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끊김 없는 탐욕과 욕망, 인정 욕구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섹스를 원하는 것도, 몸의 교감을 힘껏 주고받고 싶은 마음의 원천도 결국 사랑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몸' 은 그래서 중요하죠. 그것이 자본주의시대의 우리로 하여금 소비를 부축이고 자신을 더 '어려 보이게' '안티에이징'하며 가꾸는 데 혈안이 되게 만들어버리곤 하잖아요. 피부과와 성형외과, 마사지와 스파가 여전히 성행하는 이유. 얼굴과 몸에 돈을 그야말로 쳐 발라서 되도록 젊고 예뻐지겠다는 강력한 의지. 그로 인해 성적 매력이 여전한 '나' 로서 타자의 '시선'을 쟁취하고 말겠다는 열정. 자기만족이라고 포장하기 쉬운,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지적이고 고결한 정신과 내면의 평정에서 나오지 못하는 비뚤어진 아름다움은 엉뚱하게도 몸으로 왜곡되어 발산되기 쉽죠.
남자들이라고 다를까요. 열심히 근육을 키울뿐더러 경제력과 권력을 보다 우월하게 만들려는 이유는 보다 젊고 예쁜 여자와 언제든지 섹스할 수 있는 '여유'와 '여지'를 만들기 위해서. 그녀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재력과 페니스 크기와 섹스 테크닉과 발기 유지 시간에 여러모로 신경 쓰는, 그러나 속셈이 뚜렷한 이들의 포장된 비주얼과 연기력에 속아넘어가기도 쉬운 안타까운 그들의 한심함...늙어간다는 것에 꽤 진지한 생각을 자주 하는 별 볼일 없는 기혼녀인 제 눈에는 보이지만 늙어가도 남자인 그들의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 소위 그녀들이 섹스하는 237가지 이유와 같은 것들에 대한 설명은 묵비권을 행사하기로요. (사실 알게 뭔가 싶기도 하지만)
그들이 띠동갑 아니 20살 정도 어린 여자와도 신나게 몸과 마음을 나누며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동안에도 집에서 늙어가는, 이미 '낚은' 여자는 집에서 충실하게 늙어가겠죠. 그녀는 육아에 가사에 살림에 눈물범벅이 되기 일쑤이겠지만 상황은 쉽게 역전되지 못하고도 말겠고요.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집 '밖' 은 위험하며 용기도 필요할 뿐더러 하물며 종속된 인간이 조금이라도 자유롭기란 거의 불가에 가깝죠. 게다가 집 '안'에서는 판에 박힌 의무로 전락한 섹스 앞에서 아무리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들 몸과 마음이 어디 그리 쉽게 붙어지던가요. 서로에게 정이 뚝 떨어지고 마는 사건이나 서사가 한 두 개씩 쌓이기 시작하며 그 시간이 적금 붓듯 불어나면 자연스럽게 불만과 권태라는 이자는 쌓이게 되죠.
비극의 시작, 악순환의 반복... 유책 배우자는 과연 어느 쪽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귀찮다고 성관계를 마냥 거부하며 다만 오늘의 핫플레이스와 인스타맛집, 시즌별 신상템이나 부동산, 축적된 재력과 배우자의 경제력을 은근히 한탄하며 아이들의 학구열에 열을 내는 배우자? 편할 수 없이 살얼음판 같은 일터와 집에서조차 위로와 인정은커녕 사랑받지 못하다가 우연히 몸이든 정신이든 '통하고 마는' 새로운 인물에 어쩔 수 없이 끌림을 느끼게 되어 인내하지 못하고 마는 배우자? 아니면 그들 모두? 어쩌면 연인이든 부부든 내 세계에 들어온 사람에 대해서 알았다 생각하며 더 이상 노력이나 관심을 지속적으로 쏟으려 하지 않는, 무지한 인간이 스스로 만든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덫이자 반복되는 형벌일지도요...
확신할 수 없지만 저로서는 낭만적 사랑과 서사가 밑바탕이 된 섹스는 아무튼 너무나 강력한 인간의 실재일 수 있다는 생각에 강력히 동의하고 말아요. 자신을 움직이고 살아있게 만드는 강력한 에너지의 기본 원천이 되는 셈이기도 하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부부' 사이에 그것을 적절히 유지하는 게 순탄하지 않은 셈이죠. 우리는 '생활' 을 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늙어가요. 민.... 우리는 영원히 젊을 수 없잖아요. 하물며 1분 1초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죠.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원하고, 그들은 혼자 살아남지 못하죠. 우리 삶은 유한하고 지루하게 긴 것 같으면서도 엄청나게 짧을 수 있죠...
이것이야말로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 바로 우리 인간은 처한 상황에 따라 결국 '변하면서' 적응해나가는 동물이라는 것.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싶지 않지만 알 수 밖에 없는 진리는 바로 몸도 늙어가고 마음도 언제까지고 열정적일 수는 없다는 것. 하물며 노력 없이는... 모르던 사람에서 아는 사람으로. 신선하고 호기심 충만했던 인연에서, 연인이 되고 난 이후 은밀하게 갖게 되는 서로에 대한 실망과 은은한 분노, 그로 인한 망상과 또 그로 인해 느껴지는 허기와 공허, 환멸마저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틈이 벌어지고 오해가 쌓이고 그렇게 멀어질 수 있다는 것.
우리는 서로를 모르기에 사랑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걸 테니까... 그렇다면 그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충분히 안다 하는 상태일지라도, 여전히 자신이 상대에게 '무지' 하다는 것을 '알려고' 하면 좋겠어요... 마치 내가 나의 몸을 몰랐듯이. 나의 몸이든, 상대의 몸이든. 나의 세계도, 상대의 세계도. 알려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요...
편지를 원하는 제게 그는 편지를 써 주지 않을 거라는 걸, 받기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대신 글재주가 없다는 목소리가 들렸죠. 저로서는 안타까운 이해가 생기지만. 그로 인해 여러 개인적 망상과 상상과 급기야 여러 헛된 무쓸모 한 나쁜 생각으로까지 뻗치고 마는 건 어쩔 도리가 없네요. 처음의 노력이나 샘솟는 생생한 의지는 없어져가기 시작했다고. 노력과 진심과 마음을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채 그저 침묵과 개인의 자존심으로 일갈하며 자신의 우월함을 지키려는 인간이 저지르기 쉬운 어긋남...
그는 알지 못할 거예요. 제가 적절히 실망하고 적절히 침묵하며 적절히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는 다 안다 생각하겠지만 모른다는 걸 모르고 있겠죠. 제 몸이 꽤 괜찮은, 상위 1퍼센트의 섹스를 농밀하게 즐길 줄 아는 주도적이고 발칙한 카르멘일 수 있으며 가끔은 탁월한 연기력으로 종종 슬퍼하는 대단히 풀기 어려운 여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민... 제 헛되고 몹쓸 상상은 도대체 언제쯤 그칠까요. 그놈의 PMS 기간과 널뛰는 감정은 얼마나 '늙으면' 좀 나아질까요. 한편 늙은 여자는 재미없고 지루하고 뻔하다지만 - 그 말이 얼마나 묘하게 큰 실망과 분노와 조소와 환멸을 갖다 주고 말았던지 - 저는 잘 늙어가는 여자만큼 대단히 우아하고 아름다운 인간도 없던데 말이죠.... 그걸 간과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특히 남자들은. '나이가 깡패' 라면서요. (하..)
그나저나 민.... 제게는, 저만 끙끙대고 마는, 사건들이 몇 개 일어났는데요 게다가 시댁에 다녀와서 에피소드마저 생겨버렸죠. 물론 모두 제가 만들어 낸 망상과 상상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알아요... 그렇지만 아무튼 그는 모를 거예요. 단순한 말 몇 마디가 얼마나 큰 상처와 한 인간으로 하여금 모난 상상과 실망감마저 느끼게 만드는지. 그리하여 당분간 제 몸과 마음은, 그 누구에게도 유연하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그에게 보여주기에 제 몸은 아직 꽤 대단해서... 저만 지켜볼 생각인데 이 생각이 참 너무 슬픈 건 또 왜일까요. 저도 고작 사랑받고 싶은 한낱 유약한 인간임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일 테죠... 진퇴양난입니다. 사랑을 포기하지도 못하는, 사실은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랑하며 살고 싶은 저로서는. 덥네요. 여러모로... 더운 8월이 어서 지나가고 선선한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토끼 눈이 자주 되어버렸던, 그리하여 편지가 두서 없이 길어져서 죄송한, 헤븐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