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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06. 2017

39. 5점 만점에 4점

완벽하지 않은게 좋다. 사람이니깐.

 최근 지인의 추천으로 소셜앱을 통해서 본격적인 상담을 겸업(?) 중이다.

 독서 지도와 심리상담, 재무설계 분야에서 활동 중인데, 별 대단치 않지만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는 스펙 탓인지, 무료 상담으로 시작한 것이, 최근에 다양하게 자주 접수되면서, 요즘은 조금씩 밀리기까지 시작했다. 그래서 별 풍선과 같은 상담료를 굉장히 약소하나 걸어두었다.


 물론 큰 부담 없는 100원 단위의 귀여운(?) 수준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자면 각 상담에 임하는 나의 물리적 심적 투여 노동량을 생각하자면 실상 최저 시급에 1도도 다다르지 않는다. 그저 의지와 흥미로 시작했기에 뭐 돈이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만, 내담자 분들도 금액의 있고 없음은 역시나 별로 중요하시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상담을 해 달라 하시는 걸 보면.


예술과 현실을 구분해야 하는데 문단 내 문제를 접하곤 책 읽기가 싫어집니다.
(re :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책은 미워하지 마시길. 특정 사람 잘못이지 책이 잘못은 아니니깐요)
카드중독입니다. 어떻게 끊어야 할까요.
(re: 답은 의지. 가위로 잘라서라도 스스로 끊는 움직임 보여주심 어떨까요)
500만원으로 탈탈 털어 여행가도 될까요.
(re: 왜 물으셨나요. 이미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시니 가지 말라 한 들 소용 없다는 거 들키셨어요 훗)
사회 초년생인데 재무 설계 좀 해 주세요
(re: 자산 흐름을 '스스로'파악하시고, 그 후에 방향/목표 셋팅해주세요. 마인드셋이 우선입니다)
여자에 너무 관심이 없어요. 무성애자 같은데 이래서 정상일까 걱정이 됩니다.
(re: 첫사랑 이별 이후 자기 방어기제가 생기신 듯 보입니다. 그러나 걱정마세요 괜찮습니다)
기타 등등등... (씨익)


 완벽하지 않은 우리들의 상담이 어딘지 모르게 그냥 감사하고 좋다.  

 나로서는, 가지고 있는 자격증과 부끄러운 실패 경험력을 묻히기가 좀 아쉬워서, 나름 새로운 경험을 쌓기 위해 가볍게 시작한 상담이었다. 헌데 두드려 주시는 내담자들의 크고 작은 고민을 톡 형식으로 대화를 주고 받다 보면, 역시 사람 사는 게 다 고만고만(?) 하면서도 중요함과 절실함엔 크고 작은 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내가 지금 아픈 게 제일 아프고, 걱정 하는 게 제일 걱정스러울 뿐일 테다.
남의 눈에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내가 별거 있으면 그건 진짜 별거 있는 거다.


고만고만한 삶이 여간 소란스러우면 잠깐 혼자 멍 떄리는 시간도 나쁘지 않다.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그래서 고맙다.


그 분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게 되었다.

 3년전, 개인 경제 에세이를 출판해 낸 이후 소소하게 나와 같은 일반인 분들의 재무 고충을 듣다 보면, 아니 이런걸 가지고 재무컨설턴트 만나서 상담 하시고 애꿎은 보험 상품 하나 엉겁결에 가입하시는 분들이 좀 안타깝기도 했다. 그래서 시작한 무료 봉사 수준의 상담이 지금은 그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 마음으로 상담을 진행하다 보니, 그 분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게 되었다. 이 덕에 난 질문을 받고 잠시 그 내담자로 빙의(?) 되어 생각해 보곤 한다. 나를 찾는 분들을 향한 나만의 상담 첫번째 스텝은 ‘역지사지, 동병상련’ 이다.


되려 묻는 힘

 모든 상담과 공감의 출발은 ‘질문’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 사이의 대화는 좋은 질문과 그에 대한 서로의 공감대 형성과 건전한 비판에서 주고 받는 말들 사이의 깨달음이 있다면 참 좋은 대화임엔 분명할 것이다.

 

 공감과 호응, 긍정의 에너지가 주고 받는 공감대가 기반이 된 대화는 소위 ‘잘 통한다’의 느낌일 테고, 그렇지 않고 의심 섞인 반박과 매끄럽지 못한 감정선의 주고 받음이 많다면 ‘별로 안 통해’의 느낌일 테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상담을 할 때도, 누군가와 대화할 때도 되도록 좋은 질문을 되려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왜냐면 되려 묻는 것에서부터 상대의 입장과 현재의 감정 상태를 되짚어 볼 수 있고 공감해 줄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한다. 좋은 질문에서 좋은 답이 나온다고.


 허나 우리는 좋은 질문을 어떻게 하는지 학교에서도 부모님에게도 그 누구에게서도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사실 배울 수도 없는것일지 모른다. 질문은 ‘나’ 에게서 나올 뿐. 그래서 우린 무언가 답을 구하는 질문을 하기 전에 내 마음이 진정 바라는 좋은 답을 듣기 위해 좋은 질문을 하는 연습을 길러 나갔으면 좋겠다.


 혹은 질문이 터무니 없더라도, 되려 묻는 힘을 길러서, 나를 애써 찾아와 준 사람을 비난하거나 비평하기 보다는, 되려 좋은 답이 나올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의 입장이 되어 되 질문해 주었으면 한다.


 그러면 대화에서 오고 가는 삭막함과 팍팍함 보다는 따뜻함과 인정이 더해질 거고 그런 대화가 커져가는 커뮤니티와 사회는 얼마나 또 훈훈할까.


남의 얘기일 수 있는 나의 얘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 '누구'가 된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이다.


혼자를 자처했으나, 사실은 그게 아닐거야.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알아주는 든든한 한 명만 있어도 살아지는 게 또 삶이니깐.. (그래서 오늘도 고마워 지현아-)



힘을 뺄 수 있는 상담이기에 더 큰 힘이 생긴다.

 컨설턴트 혹은 컨설팅으로 소위 밥벌이 하시는 나보다 훨씬 뛰어나신 분들이 업계에 많다는 걸 안다. 허나 그분들에 비한 나의 가장크고 또 유일할 수 있는 장점은 다름아닌 나는 ‘밥벌이로 시작한 상담’이 아니기에, 힘을 빼고 겸손하며 진실되게 상담에 임할 수 있는 듯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라는 게 크게 연관되기 시작하면 욕심이 생기고 또 겉포장도 의례껏 담겨지게 되는 게 사람 심리임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내가 뭐라고, 그럼에도 내게 상담을 해 주시나 싶은 마음에 덕분에 더욱 겸손해 지는 요즘이다. 상담사로 자처한 지 이제 겨우 병아리에 불과할 테지만, 그 몇 달 동안 나도 내담자분들 덕분에 여전히 ‘성장’이라는 걸 해 나가고 있음이 느껴지니 말이다.


우등생 인생이 아니기에 가능한 이야기들

 사실 언젠가부터 전문가들의 자기계발서를 멀리한 까닭은 어쩌면 이 때문일 지 모르겠다. 소위 청춘이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이들의 취업난, 헬조선, 혹은 처음 육아를 맞이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헬육아 등의 현실 팩트각 아픔을 들쑤셔서 우등생 전문가들의 ‘이렇게만 하면 다 풀릴’것 같은 지식과 억지스럽게 짜맞춘 문장에서 거슬림을 느끼기 시작했다.


 삐뚤어진 시선일 지 모르겠지만, 아프니깐 청춘이라는 소위 우등생 전문가들의 위로 라는 걸 하고 계시는데, 실은따지고 보면 별 내용이 없고 대략 공자님 말씀이다. 따지고 보면 이미 다 알고 있는 진리들이다. 물론 그럼에도 자기 계발서를 우리들이 찾는 이유는, 나보다 좀 더 대단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어딘지 모르게 안심이 되고 동기부여도 되어 주기에. 그러니 여전히 자기계발서가 잘팔리는 이유 중 하나일 지 모르겠다.


 헌데 아파도 봤고, 힘들어도 봤고, 나도 상담사로 자청(?) 하기 이전에 내담자로서 상담을 경험하다 보니 어느새 깨달아 진 게 하나 있다. 내가 진짜 필요한 건 뛰어난 전문가나 유명인, 명강사가 말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필요했던 건, 차라리 먼저 살아본 사람들의 진짜 고통 섞인 그들의 경험담들이었다.

 가령 제일 가까운 부모님, 쉽게접할 수 있는 고전과 서책들. 혹은 연륜 있고 마음 맞는 직장 선배,동료, 나보다 아주 약간 좀 더 높은 위치에 있으나 나와 같은 경험을 가져본 사람들의 경험담들 말이다.  


나와 비슷한, 다양한 색깔의 고통과 슬픔, 아픔과 성공을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살아있어서 참 좋다.


 누가 그랬다. 꼰대는 성공담을 자랑하고 멘토는 실패담을 들려준다고.

 되도록 나는 꼰대 보다는 멘토로 늙고 싶단 욕심이다. 돌아보면 내가 한 일이라고는 결국 나이 먹는 게 전부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상담을 하면서 항상 내담자 분들께 넌지시 건네는 메시지는 한결 같은 듯 하다.


 나도 당신 만큼 아파봤고, 그래서 실패해봤고, 그러니 이렇게 했는데 이랬다더라,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렇게 하니 크고 작은 성공과 성장도 해 봤다고. 그저 경험담을 담담히 들려주는 수준이지만, 그래서일까. 상담 이후의 평가들이 쏠쏠하게 대부분 5점 만점에 가까워서 나를 피식 웃게 만든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한다.

 역으로 생각하면 고개를 먼저 숙이면 벼가 빨리 익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겸손하면 상대방도 친절할 것이고 친절은 협조를 동반할 것이니 나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의 겸손을 이해하지 못해 되려 갑질 해 주시는 멍청한 인간도 여전히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상처 받는 우리들이 있을 테고 말이다. 그래서 상담을 하다 마주하는 상처 덩어리 내담자를 만나 뵈면 곧잘 드리는 메시지가 있다.


 갑질하는 닝겐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대단한 조직과 자신의 능력을 혼동하거나, 출신 학교가 자기를 대변한다고 믿는 삼류들이라고 때론 쿨하게 인정해 주시는 센스를 발휘해 주시기를. 그리고 또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 상처나 성장도 없겠지만
대신 아파도 뭔가를 하고 있는 당신이야말로,
어떤 식으로든 성장을 할 테니. 부디 스스로 움직이고 믿기를 말이다.



 나도 나를 믿지 못해서 나를 잃어 보았었다고, 그래서 많이 힘들었다고. 그런데 언젠가 살고자 하는 의지와 절실함 덕에 항상 알고 있는 것들이 어딘가 새롭게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고. 나도 그랬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진부하나 진실인 메시지를 마음 담아 정성껏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접수되는 상담 내역 한 문장 한 문장에 실어 보고자 한다.


결국엔 당신이 최고예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당신의 삶인걸요! 라는 무한응원러의 '라이킷과 그레잇'을 마구마구 날려주기도 한다. 친절해지고 싶어서. 누구 한명쯤은 그러면 좋잖아

 

 오늘 두 건의 상담을 종료 했다.

 꽤 오랜 대화를 해주신 한 분의 상담은 재테크였고, 다른 분은 영어 관련 고충이셨다. 그 분들의 상담 평가는 5점 만점에 5점. 그러나 왠지 마냥 즐겁지는 않다.


완벽하지 않은 게 되려 좋아지는 요즘이다.
당신도 나도, 우리는 모두 똑같은 24시간을 살 뿐이다.



 1점 모자라게 주시면 오히려 나를 좀더 겸손하게 생각할 수 있는 근육이 길러질 수 있을 텐데 라는 행복에 겨운 헛소리를 잠시 지껄여본다. 그러면서 내일이 사뭇 기대된다. 그래서 설레고 고마운 요즘이다.


어떤 이야기들과 어떤 고민들이 나와 만나서, 우리는 그렇게 연결될까.


여전히 나는, 기다리며 살아보기로 했다.
기다림이 있으면 우리는 곧 연결될 거라고 믿으니깐.
그래서 내게 결국 찾아와 주신 '당신'께, 고마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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