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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23. 2021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돼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나날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 세계의 끝, 여자 친구 - 





한 사람의 연인으로 존재할 때

우리 생에서 가장 예쁘고 근사한 시절은 아마 그러할지 모른다. 상호 간 사랑을 나눌 때. 그것이 빠지든 받든 주든, 그로 인해 누군가의 연정과 인정, 시선과 호감, 달궈지는 열정과 그로 인해 샘솟는 꾸준한 살아있음의 열망. 그 모든 사랑의 감정들로 인해 아프고 고통스럽기까지도 할 수 있는 시절. 그러나 그러하기에 스스로 가장 원석이 될 수 있는 시절, 빛나려 하는 뜨거운 시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신을, 우리를, 인간을 가장 성장시키는 찰나의 순간...



옷장 정리를 하다가 문득 떠올랐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한 때라 생각되던 시절을. 

지금은 뭐랄까, 나로서는 굉장히 이질적이고 여전히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 고유 명사가 '나'를 대변하던 그때. 여자 친구나 연인이라는 수식어가 붙곤 했던 그 시절에 입었던 푸른 녹색 빛깔을 띄는 원피스를 발견했기 때문일 테다. 입어보고 싶어진 건 그 시절을 은밀히 갈망하고 마는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아무도 보지 않아도. 혹은 누군가 봐 주기를 기대했을지도. 손은 주춤 망설이다가 이내 망설임은 그쳤다. 어느새 입고 있던 청바지와 반팔티셔츠는 벗겨진 채로 대신 몸에는 원피스가 입혀지고 있었다. 주섬주섬.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쁘다고 생각했다. 바보 같이. 

정말 부끄럽고 바보 같은 생각이 연신 밀려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직 예쁜가, 아직 사랑스러운가... '아직' 은 정말 아직이 맞는 걸까. 이 옷을 언제 또다시 입어볼까. 어울릴까. 지금의 나에게 어울리는 옷일까. 어째서 어울림을 따지려는 걸까. 어울림을 결정하는 건 누구던가. 내가 나의 어울림을 결정하지 못하고 마는 건 무엇 때문일까. 내가 아닌 이들을 위한 삶이 대부분이라. 그 삶의 선을 지키기 위해, 흔들리지 않고 선(線) 안에서 잘 살려 하기에....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안고 안기던 시절. 마음이 먼저 움직이던 순간들. 



그리움을 붙잡으면 꿈이 이뤄진다던데. 

그리움의 종착지는 혹은 그리움의 원천은 도대체 어디에서 터지고 마는가. 원피스 하나를 입으면서도 여러 생각을 하다가 결국 말미에 머릿속에서 남겨진 딱 한 문장으로 인해 그만 마음이 쿡쿡 찔리고 말았다. 그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걸까. 아니면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사치인 걸까. 일상을 지내기도 버거운 이 시절의 우리 둘인데. 건강의 적신호를 염려하고 도시락을 챙기면서 연민으로 감싸기도 부족한데...



형편없이 여전히 잘 우는 이런 나는, 과연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일까. 

'우리'가 '부부'가 되기 전, '너' 이자 '나' 였던 우리는 서로에게 예쁘고 특별하기만 했던 only one 인 존재였다. 그러나 결혼은 그런 두 사람을 가만 두지 않았다. 혼인신고를 한다는 전제 하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법적 사실혼 관계가 되려 했던 우리는 새로운 가정의 '미래'를 약속하는 아름다운 행위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그와 내가 철저히 착각하고 또 사랑에 대해 미처 간과했던 부분일지 모른다. 



우리의 에로스가 지속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까지고 흐르는 시간 앞에서 그럴 수 있으리라는 절대적 착각. 반대로 사랑의 형태가 점점 변모해 간다는 걸 모르니 한편 할 수 있는 것이 결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하고 만다. 물론 결혼 전에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었다. 결혼이란 정말 뜨거운 에로스적 교감의 대상과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결혼시장의 기혼 제도에서는 에로스가 살아남기 힘들 테니까. 어느 정도는 어렴풋한 불안 혹은 예상이 되었을 뿐 무릇 경험하지 못한 세계가 그러한 것처럼. 상상이 세계를 그리고 믿음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그 시절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꽃을 내밀고 싶은, 편지를 쓰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또 들려주고 싶은 마음만 있을 뿐이니까.



우리는 노력을 해야 했다. 아이라는 신(神)이 생기고 나서는 더더욱. 그래야 했었다...

그 신은 우리 일상 모든 신(信)이 되기 시작했다. 우선순위로 냉큼 들어와 버린 대상, 절대 거역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사랑스러운 숙명. 사랑에는 대가가 존재한다 했던가. 대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때때로 가혹하다 생각되곤 한다. 그와 나는 객체로서의 자신을 조금씩 흐리게 만드는 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대신 새로운 존재로서의 우리를 만들어 낸다. 열심히. 성실하게. 꾸준히. 반복하여. 지치지 않고. 지쳐도 끝까지. 한 사람이 둘이 되었고, 두 사람이 네 사람이 되어 집단이 형성되는 순간의 자연스러운 사랑이란 어쩌면 이런 형태일까. 일상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어딘지 모르게 애석하고 서글픈 자연애(愛)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든다. 녹색 원피스 따위는 집어치우는 대신, 청바지와 면티셔츠로 굳건히 '우리'를 지키려 매일을 무장하고 마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성실한, 그이와 나의 또 다른 삶의 진화적 사랑...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했던 소설가의 문장이 떠올랐지만. 

한편 한 시절 서로가 서로에게 분출할 수밖에 없었던 뜨거움 대신 그 자리엔 대체된 새로운 사랑이 존재한다는 걸 선명히 확인할 때마다 가끔은 마냥 슬퍼지려 한다. 그리하여 때때로 조용한 분노와 슬픔이 나도 모르게 밀려오고 마는 것이다. 신의 제단에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시간과 에너지, 이성과 감성, 육감과 오감, 그 모든 것들을 기어코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얻어지는 일상적이고도 지켜야 하는 현재의 사랑이라는 것이, 사랑은 고통이고 슬픔이라면 이 사랑은 지극히 자연스럽다고도 말할 수 있을 테지만. 



진정한 사랑은 아픔의 질곡을 기어코 건너 내야 얻어지는 사랑이라지만. 

아이라는 나의 신들과 지내기 시작하며 여전히도 꾸준하게 인간적 한계와 그로 인한 인문적 도덕적 윤리적 사랑의 참된 면면들을 한참 배워가고 있는 중이지만. 왜 가끔 자꾸 서러워지고 마는 것일까. 사랑을 하고 있는데. 내가 원하는 사랑이 이런 형태의 성실한 사랑에서 가끔 빗겨나가 주기를 무의식이 원하고 있기 때문인 걸까... 원피스가 뭐라고. 내가 가장 예뻤을 시절이 도대체 뭐가 그렇게 그립다고... 



사회의 모델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낭만적 사랑이라는 이상과 충돌하게 만들며 

현대의 공동체는 우리의 기대 안에 사회적 모순을 심어놓는다. 

이 모순은 결코 관념적인 게 아니라 심적 갈등을 일으키는 현실이다.


- 사랑은 왜 아픈가, 에바 일루즈, p 33 - 



그래서 편지를 쓴다. 그에게... 그이는 편지를 고마워했다. 한 편의 마음은 모르는 채로. 



확실히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다른 무언의 감정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면. 

하나의 특별한 물음을 나는 스스로에게 제기하고 만다. 낭만적 사랑을 아직도 꿈꾸냐고. 여전히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그토록 원하는지를. 아직도 사랑스러운 여자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냐고. 그러하나 도무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를. 꽤 오래 '우리'는 삶을 지탱하듯 살아왔는데. 낭만적 사랑보다 지지적 동반자로서의 우리가 되어 버렸는데. 나는 어쩌자고 자꾸만.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제2의 자아의 목소리에 귀를 닫으려 애쓰고 말 뿐이며. 



원피스를 입고 우스운 농담으로 밀려오는 감정을 삭히려 했다. 

예쁘네... 라면서. 빌어먹을 나르시시즘은 어디 가지 않았구나 라면서. 사랑을 하던,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나를 그리워하고 있구나 라고. 옷장에서 입어주지 않고 있던 옷을 문득 발견했을 때, 주인의 화답이 오지 않을 위험을 감수하고서 내내 옷장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렸을 원피스를 향하여. 거부하지 않고 옷을 입고 나서 잠시 웃어 보았다. 그리고 벗지 않았다. 그대로 잠깐 아니 내내 계속 있으려 했다. 이제는 내게 어울리지 않은, 자유나 여유, 어떤 투명한 사랑스러움을 만끽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비로소 화답을 받은, 내가 가장 예뻤던 때의 녹색 원피스와 함께. 

문을 통과한 메리다 공주가 되고 싶었던 것처럼. 



원피스와 맨발은, 꽤 잘 어울리는 조합 같았다. 맨 마음의 두 개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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