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May 18. 2021

사랑의 증언

아프지 마...

진실을 마주하는 건 두렵지 않아, 두려운 건 내 머릿속 상상이야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이 생에서든 다음 생에서든


- 청춘의 증언 -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던 걸까.

아이들의 이불을 덮어주며 그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음악을 듣던 밤. 기어코 또 호통과 다그쳤던 지나간 낮의 순간이 떠올라 눈물이 저절로 흐르던 때, 그러다 떠올리는 대상이 바뀌려 하던 순간. 복잡하고 심난한 감정의 대상, 그 대상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상냥하게도... 그는 여전히 친절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그를 생각할수록 요즘은 눈물이 절로 난다. 몇 년 전부터. 아니 몇 달 전부터 더더욱...



고장 나고 있는 그가 보여서. 그래서 그랬던 걸까.

며칠 전, 엄마는 아빠를 떠올리며 울먹였다. 아빠가 불쌍하다 했다. 자기 때문이라 했다. 그런 말을 하며 전화로 훌쩍이던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묘한 안도를 느꼈다. 그녀의 눈물을 볼 수 있는, 기댈 수 있는 대상이 되고 싶었던 나는 그녀가 편해지기를 오랫동안 바랐으니까. 그녀가 기어코 눈물을 흘려서 그 아픈 감정을 씻겨 내릴 수 있다면. 그 감정이 부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그럴 수만 있다면... 그 대상이 나여서 다행이라고. 당신 곁에 아직 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야 엄마의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어린 시절에는 절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아빠 '같은' 사람을 생각하며 울 수가 있는지. 당신을 아프게만 하는 사람 같이 보이는데. 어째서 그럴 수 있는지를. 그때는 몰랐는데...



어째서 울 수 있는지. 그녀의 마음을 이제 나는 확실히 이해할 것만 같았다.

같이 사는 사람을 떠올리다 나도 모르게 울먹이게 되고 마니까. 새벽녘 숨죽여 그와의 시간을 떠올리다 이불속에서 눈물을 훔치는 그 감정을... 한 때 너무나도 미워서 독이 묻은 화살을 여러 번 심장에 저격하듯 그의 마음에 대고 쏘아대 버린 그 시절의 미운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그가 아픈 것 같아서... 나 때문에 그가 지금 한꺼번에 그 독이 퍼지고 있는 것 같아서. 온몸과 마음 구석구석. 나 때문에... 내가 아프게 해서.


 

함께 해도 따로 있는 것 같았던 그 시절이..미안해서.



허리 디스크라던 그는 며칠 전부터 기어코 다리를 조금씩 절며 걷기 시작했다.

디스크는 완치가 없어서 관리하고 운동하고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유경험자인 4번이나 큰 수술을 해냈던 친정엄마를 곁에서 아주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도, 그리고 그도... 무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상을 '무리 없다'는 듯이 열심히 살아냈고 여전히 그러고 산다. 그들이 떠올라서 그랬던 걸 지도 모르겠다. 이 밤, 이 새벽, 자꾸만 눈물을 멈출 수 없는 것은. 나 때문에. 나쁜 생각을 하고 말았던 나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일찍 죽기를 여전히 소망하는 나 때문에. 그 와중에 다른 생각도 하고 말았던 나 때문에. '소로의 문장들'과 '향수'가 떠올라서. 바람 한 점 없는 산을 타다 마주한 '미풍' 과도 같은 것들이, 기억이, 심장이 쿵쿵거릴 정도로 아프게도 생각나서. 그래서...



그이는 내가 우는 이유가 아이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아이들 기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라면서. 휴직을 내 볼까 라면서. 오늘도 힘들었냐고. 내일도 약속이 있으니 새벽에 일찍 일어나 도시락 만들지 말라고 하면서. 푹 늦잠 자라고 하면서. 조금 일찍 오도록 더 노력한다고 하면서. 상냥했다. 그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다... 그래서 슬펐다. 당신은 여기저기 아프면서.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저리고 하루는 고되고 기댈 데가 마뜩치 않으면서. 여전히 어린애 같이 잘 우는 내가 아프면서. 차가워진 내게 기대지도 못하면서. 내가 더 다른 형태로 기대버리거나 아예 차단시켜 버리고 마는걸 알면서도. 그런 당신이야말로 아프면서..



꽉 닫혀 있는 바보 같은 나였어도, 언제나 열려 있던 당신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왜 더 잘해주지 못하는걸까.



울 수밖에 없었던 건 나 때문이었다.

머리를 쓰다듬었을 때. 어깨를 토닥였을 때. 같이 앉아주고 쓰다듬어주고 만져주고 싶었지만. 그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째서... 어째서 마음과는 달리 몸은 이제 더 이상 움직여지지 않는 걸까. 딱딱해져 버린, 더 이상 만질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리는 것만 같아서였을까. 다만 그이의 저린 다리와 그러면서도 일상에서 고군분투하기 바쁜 그가, 새벽에 나가서 늦은 밤이면 귀가하는 그가, 돌아와서 피곤한 몸에도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이젠 버겁기 시작해버린 튼튼한 두 아들과 몸과 마음을 다해 조금이라도 놀아주고 앉아주려는 그가, 밥 먹었다면서 오늘은 어땠냐고 물어보는 그가, 아이의 생떼에도 화 한번 잘 내지 않는 그가, 그리고.... 여전히 연애하던 시절의 애칭을 기억해주는 그가....



오랜 옛날, 당신이 인생의 '미풍'이었던 시절이 떠올라서.

인생의 새어들기 시작하는 햇빛과 같던 당신이었는데. 무엇보다 강하게 절대 아프지 않을 같던, 그래서 유약한 나를 내내 지켜줄 있을 것만도 같았던 당신이었는데. 기댈 있을 거라 생각했던 당신이었는데. 여전히 제일 먼저 기대고 싶은 건... 다름 아닌 나의 '당신'인데... 



우리가 가장 사랑하던 그 시절에 서로 붙여준 애칭을 여전히 기억하며 부르는 그가..... 그가 아프다.

그이의 아픔을 대신해 줄 수 없음에. 그이가 나 때문에 아파서. 그런 것 같아서. 그래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열심히 산 죄 밖에는 없는데. 한 눈 팔지 않고 몸과 마음을 다해 가족을 사랑한 죄밖에 없는데. 왜 아파지는 걸까. 왜 그런 배우자는, 그런 가족은, 그런 아빠는, 그런 엄마는, 아파지는 걸까. 왜 건강하지 못하고 고장이 나기 일쑤인 걸까. 왜. 도대체 왜...



혼자 있을때야말로 그를 떠올리게 된다. 함께 했을 땐 미처 볼 수 없는 것들을.



그를 향한 사랑의 증언이 만약 눈물이라면. 만약 그렇다면...

이 마음은, 이 애달픔은, 이 아픔은, 내가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라... 감히 믿고 싶었다. 그리하여 믿고 있다. 이것도 사랑이라고. 당신을 떠올리면 이젠 고마움과 눈물로 가득한 지금 이 시절도 사랑의 형태라고. 비록 앉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주저하고 마는 내가 되고 말았을지언정. 손끝으로 그의 등에 손을 잠깐 대보거나 시답잖은 농담을 건네다가도 말없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순간이나, 아이들과 부대끼다 잠든 그의 굳은살이 베긴 발을 조용히 매만져주거나, 아이들과 뒤엉켜 버린 그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이마에 손을 잠깐 대 보면서. 신께 빌었다. 눈에는 한가득 물이 고여 있는 채로.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그이가 아프지 않기를.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이렇게 잘 살아가 보기를.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고 그에게 종종 묻곤 하는 요즘, 그는 말한다.  '지금'이라고. 아이들과 깔깔거리면서 살을 맞대고 웃고 부대끼고 비록 고됨이 붙을지언정. 이 어린 시절의 순정한 사랑을 마음껏 네 명이서 열심히 온몸과 마음으로 서로에게 충실한 지금이, 그는 가장 힘들지만 그래서 가장 좋다고 했다. 나중엔 이런 기쁨이 사라진다 하면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지만 한편 사라지는 것들이 우리 사이에 점점 더 많이 생길지라도.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어떤 형태라도. 비록 내가 가장 예뻤던 그 시절의, 당신을 떠올리면 내내 설레고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던 그 사랑은 더 이상 보지 못할지언정. 연민이든 측은지심이든 어떤 모양이라도 좋으니. 부디... 당신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때 미안하고 고마워서 우는 것보다, 웃으면서 같이 앉아줄 수 있기를. 무엇보다 그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면서. 비록 위선적인 미안함과 오만한 차가움도 마음 어느 한 켠에는 품고 있더라도. 진실의 소리는 다름 아닌 '사랑'이라고. 당신을 향한, 여전히 단단히 놓치지 않고 잡고 있는, 당신의 아픔이 낫기를, 당신의 오늘이 좀 더 평온하기를, 오늘의 출근길이 무사하기를, 당신의 미소가 오래가기를, 편안함과 따뜻함과 고마움을 서로 느끼기를 바라는, 바로 당신을 향하는 여전한 이 마음이라고. 변해가도, 굳어가도, 다시 형태는 달리 가더라도.



눈물이 그를 향한 사랑의 증언이라면, 잠든 그를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말했다.

당신을 만나서 다행이라 지금은 생각하지만 아프기만 했던 당신 같아서. 다음 생에는 만나지 말기를.

 다정하고 친절한 나의 당신을 이런 형태로나마, 여전히 사랑해서...그래서 미안하다고...



당신이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아프지도 않고. 내 곁의 사람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사랑의 증언은 눈물이었어. 당신이 그걸 알까...

당신이 싫어했던 그 눈물...

울 수 밖에 없었던, 사랑의 증언..

작가의 이전글 제어되지 못한, 향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