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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08. 2017

#15. 기다리고 있어.

단 한 번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야겠다. 그래서 말했다. 같이 갑시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 진짜 있을 수 있다니

현지가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같이 있으면 그냥 좋아. 내일이 기다려져. 개미 똥만 한 이유로 투닥이긴 해도 말이지. 
그래서 결혼할까 봐.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랑..


 처음에 현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젠 알 것 같다. 이런 마음이 내게도 생겼으니깐. 아마 현지도 비슷한 느낌이었을까.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늘 궁금해지는 사람의 마음 말이다.


  가까운 거리에, 같은 공간에, 한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고 그 살아있는 존재 만으로도, 그저 바라봄으로써 위로와 용기를 낼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건 역시 사람 동물이 가진 최고의 선물이자 이해할 수 없는 신묘한 것임엔 틀림없다. 


 엘리베이터에 잠시 갇혀 버린 그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약간 떨어져서 앉아 있었지만 닿은 손 덕분에 우리의 체온은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 


가까이 이대로 다가가면 위험하겠죠? 
그러지 않겠어요? 진정해 주십시오..
하하. 재밌다 그 귀여운 말투 여전하군요
아 그런가요... 헤헷...
아무렇지 않네 우리 여전히..
그런가요. 아 그렇네요. 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해 당신. 
그러는 그쪽도...
신기하죠 시간만 지난 것 같네. 변한 게.. 아 내가 변했구나
....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냥 지냈어요 진짜 바쁘게 정신없이. 
좋았겠어요 미국 생활.... 부러...웠었는데. 
뭐가요?
그냥 다...
난 헤라 씨가 부러운걸요  
거짓말.. 
진짜예요 
네.. 아. 진우도 많이 컸겠네요. 그렇죠?
많이 컸어요. 네... 나보다 영어를 더 잘 해. 하하 
그러게. 많이 컸겠네요... 가족들도 다 건강하고요 
네 못 지낼 리 없죠. 내가 못 지냈나. 그러고 보니 내가 제일 못 지낸 것 같네. 하하
왜요. 지금 이렇게 잘 지내고 계셨으면서... 못 지낸 건 접니다. 
왜.. 헤라 씨가 왜 못 지내. 잘 지낸 거 같은데
.... 아팠습니다. 
아....
전 모든 게 다 처음이어서, 그래서 그냥 아팠습니다.. 그렇게 가신 것도 아니 저 때문에..
... 미안. 미안합니다. 
그런 말 듣자고 말씀드린 건 아니니깐 걱정 마세요. 
.... 난 받기만 하고 갔네. 
저 드린 거 없어요.
하하. 그래요. 앞으로도 주지 말아요..


 주지 말라는 그 말에 왜 이렇게 마음이 아팠을까. 그냥 그랬다. 현지가 말한 대로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게 얼마나 따끔거리는 소리인지, 나는 그를 통해 모든 그 감정들을 처음 겪고 있었다. 다 처음이었다. 


그나저나 이 아저씨 왜 이렇게 안 오죠.... 저 진짜 위험한데 (12시까지 안 오면 진짜 저 죽어요) 
걱정마요 설마 12시 지나서 오려고 
....(악 그게 안 된다고요 아놔 고양이 죽겠네) 
그나저나 헤라 씨, 남자 친구... 있어요? 손에 반지
아....


 유키가 건네 준 반지를 빼는 걸 가끔 잊곤 한다. 

 매일 보는 유키가 서운하다고 해서. 큰 의미 없이 끼고 있었던 건데. 사람 동물들에게는, 그리고 유키에게는 꽤 중요한 의미인 가 싶다. 여전히 그랬다. 유키도 아픈 걸까. 내가 이 사람 동물을 대하는 이감 정과 비슷하다면, 나는 유키에게 꽤나 몹쓸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왜 이제야 하게 된 걸까. 


헤라야. 
응? 
너 이거 끼고 있어. 
뭐야 이거.... 반지?
어. 내일 니 생일이잖아.
언제 생일 챙겼다고 그래. 고양이한테 생일이 뭐 그리 큰 대수라고. 
그냥 끼고 있어라. 너 지켜줄 거야 
하하. 고마워. 근데 왜 이렇게 오늘 진지해?
넌 모르겠지만 난 항상 진지했어. 특히나 널 대할 때면 더더욱 
유... 키야. 
아무튼 별거 아니지만 끼고 다녀라 앞으로. 웬만해선 빼지 마. 그럼 너, 덜 상처받을 수도 있다. 내 말 명심해 
알겠어....
그래 


 이상하게 유키의 말은 거절할 수가 없게 만든다. 

많이 도와준 친구라서, 아니면 같은 고양이 사람이라서. 아니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내 곁에 있어준 묵묵한 친구. 난 그가 친구지만 그는 내가 친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왜 이제야 이 사람 동물 때문에 하게 된 건지....


생일 반지예요 
아.... 생일이었어요 헤라 씨? 
아.. 작년에 받은 반지예요. 친구가.... 줬어요. 생일 선물로 
아... 축하해요.. 남자 친구 생겼구나
....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리곤 말없이 그를 쳐다봤다. 그가 내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가 반지를 보곤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넌지시 잡고 있던 손을 떼 주었다. 쓸쓸한 표정이다. 왠지 그 표정이 귀엽게만 느껴지지만 이윽고 나도 쓸쓸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손을 놔주지 않기를 바랐다. 잡고 있던 손이 너무 따뜻해서, 차가운 내 손을 계속 데펴주면 좋을 텐데....아직 이렇게 차가운데. 


질투하시는 거예요? 
그럴 리가. 이렇게 예쁜 사람이 남자 친구 있다는 게 이상하죠. 
안 예뻐요 저..
예뻐요... 하 좋겠네 그 남자 친구는 헤라 씨 같은 좋은 여자를 두고 있다니. 
좋겠어요...
응?
사모님도 진우도 좋겠습니다... 
아......
잘 지내시죠? 
못 지내지 않아요. 음....
그러신 것 같아요. 이렇게 다시 돌아오신 걸 보니. 진우 얘기하실 때도 아무렇지 않으셨고 
아....
저희가, 어디서부터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요 
글쎄, 굳이 생각 안 해봤네요 
저도 사실 생각해 보진 않았어요 
그러게... 사람 인연이라는 게 신기하네
.....(고양이 인연이라는 게 이렇게 신기해요) 
헤라 씨
네?
고백할 게 있어요 
..... 또 저 놀리시려는 거면 안 듣고 싶습니다. 
들어야 해요 
....


 심장이 쿵쿵거렸다.

 또 무슨 말을 해서 나를 아프게 할지. 혹은 기대의 1% 라도 현실로 될 수 있다면 이 사람과 되도록 오랫동안 같은 공간에서 아니 같은 곳에서 마주할 수 있을까. 그런 이상하고 현실과는 희박한 거리의 터무니없는 욕심을 여전히 바라고 있던 나였다. 정말 몹쓸 마음이다. 사람 아니 고양이 마음이라는 게 이렇게 간사할 줄이야. 


사람 동물이나 고양이나 별 반 다를 게 없었다.
사랑이란 감정 앞에선 더군다나. 



헤라 씨가 좋아요. 내가 만지고 싶게 만드는 그런 대상이죠. 
...
처음엔 그저 본능이라고 생각했어요. 남자들의 흔한 동물적 본능
...(저도 동물이에요. 진짜 동물이에요) 
그런데 말을 몇 번 주고받다 보니 좀 다른 느낌입니다. 그니깐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좋아하나요?
아... 그래요 좋아합니다. 좋아해요. 그런데 알겠지만, 알죠.... 우린 상황이 그렇게 서로를 좋아할 만한...
모르지 않아요. 그래서 전 떠나실 때도 아무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딱 한번 공항에 갔을 뿐 
.... 그래요 
저도 그래요 
...?
저도 좋아했어요. 처음이었거든요. 의심했어요. 제 스스로를. 근데 참 아프더라고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
그래서 좋아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죠. 마주하고 있을 땐 몰랐어요 이 정도 일 줄이라곤 
아...
근데 좋아했고, 여전히 힘든 건 좋아요. 좋아해요.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서로 떨어진 각자여도 말이죠 
아..........


 그가 잠시 주춤했다.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리는 건 내 환청 탓이었을까. 아직 조금의 시간이 더 주어지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 만들어 낸 환청.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냥 위로가 될 줄은 몰랐어요. 여전히 3년이 지났는 데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헤라 씨는 어때요 
네?
날 보면 어떠냐고 
.... 그냥 같이 있고... 보고 싶어 져요. 그렇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아요. 그래서 힘듭니다. 
차라리 안 보면 어때요. 
.... 그게 아픕니다. 3년을 안 봤을 땐 그나마 견딜 수 있었지만 아팠어요. 마음이. 
떨어져 있으면 시간은 또 지나가니까...
......
내가 곧 다시 떠날 것 같아요. 
....?
사실 미국에서 취업비자를 얻었어요. 다른 회사에 합격 소식을 최근에 받았고. 
...
헤라 씨가 처음이군요. 내가 이 말을 하는 사람도. 
..... 언니는 모르세요?
수현이한테. 아... 아내한테도 이야기 안 했어요 아직은. 
.. 왜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요 아무튼. 
네... 저 지금 차인.... 아.. 표현이 좀 재밌네요... 음.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차였다는 사람들의 말.. 
그런가... 아무튼 나 다시 그렇게 헤라 씨 아프게 할 사람이니깐, 너무 다가오지 말라고.


 그가 아주 또렷하게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입술이 얕은 사람이라는 걸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아무 표정 없는 약간의 근엄한 표정의 그 남자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싸늘하고 무섭게만 느껴진다. 눈물이 날 뻔했다. 밤이라서. 밤엔 사람이든 고양이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진정한 감정의 날것들이 표출되는 시간이라서. 그 시간 핑계를 대 보고 있었다. 그도 밤이라서, 괜히 그런 걸 거라고. 진심이지만 또한 진심을 억지로 표현해 내자니 그렇게 서투르게 보이고 있을 뿐이라고. 그건 진심이 아닐 거라는 나의 마음도 함께.... 그의 싸늘한 표정을 같이 아무 미소 없이 바라봐 주었다. 


...... 
내가 다가가고 싶어도 나는 정말 꾹 참고 있다고. 알아요? 그러니까 정말 다가오지 말라고... 알겠어 고헤 라?
아.....


 어딘지 모르게 눈물이 나려 했다. 이미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어서 그 상태에서 한 마디만 더하면 툭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울지 마. 나 때문에 울지도 말라고요 알겠어요?


순간 고여 있던 눈물이 탁 하고 흘렀다. 내가 원하지 않은 내 눈물이었다. 그러면서 어딘지 모르게 화가 났다. 내 입은 어느새 그를 향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왜 나한테 그래요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 잘못했어요
아니 나 잘못 안 했어. 잘못 한 건 당신이야 
... 그래. 다 말해봐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 
맞아요 다 당신 잘못이에요. 왜 말을 걸었어요. 말만 안 걸었어도. 우리가 마주 하지 않았어도
그러면 이렇게 연결되지 않았을까
몰라. 그런 건 다 모르겠어요.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이렇게 여전히 시간이 지났음에도 다시 보고 싶어.
......
아프다고. 마음이 저리다고. 이렇게 꽤나. 내가 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여전히 많아진다고. 
....
왜 나타났어요. 다시 결국 떠날 거면서 왜 또 나타났어요. 왜 이런 일이 생겨요. 왜. 도대체 왜요... 
난 말이죠. 
...
설레는 내가 정말 두려워. 무서워. 너 없이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 봐. 지금 지켜낸 거 다 무너질까 봐 
아.....


 혼란스러워서 여전히 눈물이 맺혀 갔다. 

 늘 내 곁에 있기를 바라던 남자가 드디어 내게 그 마음을 조금씩 더 가까이 열어내주었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현실은 혼란스러워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이렇게 귀를 열어두고 말을 할 뿐. 될 수 있는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고작 이것뿐이다. 12시 전, 사람으로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고작 이것뿐이라는 사실이 더 한편으론 마음 아파진다. 


그래서 그래요. 알죠 우린 어른이니까.....
어른의 이별 따위 전 모르겠습니다. 
그 남자 친구 생각을 해요 
....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남자 친구 아니에요 
아... 
아무튼. 설레지 마세요 그럼. 저는 아플 테니깐. 저한테 설레지 마세요 라고 하심 안 설렐 건가요
.....
마음은 그리 쉽게 누가 하라 한다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마찬가지예요. 알잖아요. 
.....


 그가 나를 끌어안았다. 

한참 동안 우리는 그렇게 서로 꼭 끌어안고 있었다. 남녀 사이의 뜨거운 포옹이라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가족 같은, 상처 덩어리의 사람들이 서로의 아픔을 감싸 주기 위한 위로의 안김이었다. 사실 유키도 내게 그런 포옹을 종종해 주었다. 현지도 그렇고. 그러나 유키와 현지의 포옹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심장이 이렇게 뛰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동시에 아플 줄은 몰랐다.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게 하는 마력을 지녔을까.

 오랫동안 그렇게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새 그의 핸드폰 알람이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입맞춤을 했다. 그의 입술이 다시 닿아지는 순간 내 몸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입맞춤을 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항상 그의 입술이 포개어지면 아무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헤어지지 않았다면, 아니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우린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한 쌍이었을까....
...... 아뇨. 모르죠.
그래 모르지.....
다만, 그랬으면 좋겠어요..
....
너와 한 번만, 한 번만 하나이고 싶어 
아.....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았지만,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쿵하고 울렸다. 


거기 사람 있어요? 
아... 우리 이제 나가야죠 
네 그래야 할... 듯...
헤라 씨, 같이 있을 수 있어요?
아...........
같이 있고 싶어요 오늘 
...... 그럴 수가 없어요 (나 곧 몇 시간 후에 변해요. 놀라지 않겠어요? 나 변한다고요. ) 
... 어른이군요 헤라 씨. 
그게 아니라.... 그럴 수가 없어요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고요...
.....
그래서 안되잖아요 사실 내가 그러고 싶다 한들 그러면 안되잖아요. 
.... 기다리고 있어. 
.... 응?
같이 갑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우리는 그대로 원래 가려던 문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는 1층으로, 그는 지하 4층으로. 그렇게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눌렀다. 1층의 불이 켜지는 순간 그가 나를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그렇게 지하 4층으로 우리 두 사람은 같이 내려갔다. 


기다리고 있어 여기서. 차 가지고 올게요 
....


사람 동물들도 그러할까. 


어떤 것이 점점 더 많이. 그리고 점점 더 깊이 자신에게 다가올수록
좀 더 오래 자기 곁에 머물기를 원하는 걸까 


 그러나 점점 더 많이 다른 곁에 있을 수도 있고 그것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진정한 아픔을 겪어야만 한다는 걸, 우리는 이미 3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겪고 있었던 걸까.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감히도 고양이가 사람을 사랑하게 된 이 감정이 사람 동물들이 말하는 수치심과 죄의식인 걸까. 의문만이 머릿속과 혼란스러움만이 마음에 가득한 채 나는 꼼짝 앉고 그대로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고양이가 아닌 한 마리의 벌레 같은 기분을 동시에 가지면서도, 사실은 떨려서 주체할 수 없는 심장을 부여잡고 있었다. 


가요 


그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느껴졌다. 나는 뒷좌석에 조용히 몸을 실었다. 




 늦은 시간이라는 걸 알았다. 반 제정신이 아니라서 내 입에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밤이어서 그렇다는 핑계만 댄 채. 

 

 도저히 이 여자를 다시 보는 순간 나는 어딘지 모르게 떼어내야 한다는, 그녀와 멀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국 취업을 결심했다. 그녀를 그리고 흔들리는 나를 악착같이 지켜내고 싶어서.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는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그것뿐이었다.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주체하지 못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현실의 도망칠 수 없는 굴레에 안타까움을 부여잡은 채 내가 할 수 있는 어른 다운 최선을 하려 했다. 그럼에도 마음은 머리를 이기지 못했던 걸까. 


그녀를 사로잡고 싶다. 그녀를 어디론가 데리고 도망치고 싶다. 잠깐은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인생에서 딱 한 번은 그녀의 남자로 있고 싶다는 욕심은 여태껏 잘 살아온 나를 위해 주는 선물이라고. 단 한 번은 그래도 된다는 쓰레기 같은 변명을 내게 해 댄다. 


그녀가 날 기다리고 있다. 도망가지 않고 저기 서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마음이 아파온다. 그녀는 그만큼 참 아름답다. 아프고 절망적이고 우울감을 안겨주는 그녀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안고 싶다는 생각 밖에는 아무 마음이 들지 않는다.



마음 내키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고 축복인지. 
단 한 번은, 짧아도,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나는 지금 하려 한다.
그 커다란 두 눈을 바라보며, 그녀를 안아야겠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내 마음이..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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