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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스트 Jan 25. 2023

기도

Love poem




  동생은 소심한 아이였다. 축구를 하는 형들에게 다가가 끼워 달라 할 용기가 없어 누군가 대신 말해주어야 했다. 그러다 거절이라도 당하면 그 자리에서 울고 마는 아이였다. 나보다 작은 내 동생, 하염없이 장난쳐도 되는 아이. 암호학을 하신 아버지 밑에서 자란 우리 집은 꽤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가 있었다. 컴퓨터를 누가 차지 하냐는 것은 그야말로 눈치 싸움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보다 작은 아이를 힘으로 밀어내어 그 자리를 차지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보다 커진 동생의 주먹맛을 봤을 때, 이제는 나보다 작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동생은 거절당했다고 우는 아이가 아니었다.


  사춘기를 지나 진로를 고민할 시절, 나는 좋은 대학에 가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된 것은 그 시절 나는 꽤 아팠다. 내가 아픈 것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도움 한번 구하지 못한 채 어둡고 캄캄한 시간을 견뎠다.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무기력했던 나와는 다르게 동생은 치열하게 인생을 산 덕인가. 같은 시험을 치른 동생은 좋은 점수를 얻어 의사가 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나는 변두리 대학에 가까스로 입학하였다. 어쩐지 순수하게 기쁘고 축하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몽상과 가까운 상상을 하며 꿈꾸었던 길을 손쉽게 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가 포기했을 때 항상 일어서있던 그를 보았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픔은 대학에 가서도 진행형이었기에 컨디션에 따라 성적은 오르락내리락했다. 참고 이겨낼 수 있을 때는 과에서 손쉽게 만점을 받았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호르몬의 불균형은 틈만 보이면 다시 찾아오고야 말았다. 이제와 말하면, 나는 그때서야 내가 아픈 것을 알았다. 그제야 도움을 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쯤 우리는 서로의 길을 각자 꾸역꾸역 걷고 있었다.


  집과 거리가 있는 대학이기에 기숙사와 원룸가를 전전하며 상상할 수 없이 방대한 양의 학업을 감당하고 있었던 동생은 그야말로 내가 넘어지고 있을 때도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 성실함과 인내심은 같은 배 속에서 태어났지만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영역이었다. 내가 넘볼 수 없는 길을 갔으니까. 내가 넘볼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니까. 그는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렇게 얼굴 보는 것은 1년에 두 번─의과대학에서도 인정하는 두 번의 연례행사─, 그리고 생존여부만 확인한 지 어느덧 7년이 된 차였다.


  어머니는 항상 동생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다. 학업과 업무로 상상초월하게 힘들어한다고 했다. 상상도 못 할 일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저 묵묵히 그에게 어떤 선택을 하든 응원한다는 몇 마디를 메시지로 보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기도를 잊어버릴 때도 많았고 생각이 나더라도 간단하게 할 뿐이었다.

 

 어느 날 부모님과 작은 다툼이 있었다. 아버지가 술자리를 가지고 오셨는데 그의 모습이 슬퍼 보였다. 어둠으로부터 홀로 빠져나오려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신경 쓰는 것 같이 보이지 않았다. 내 마음은 폭발했다. 그의 쓸쓸함과 고독으로부터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뒷모습에. 어머니께 화나는 마음을 토해냈다. 일방적인 통보 끝에 그녀를 뒤로 하고 방문을 잠그고 들어왔다. 마음이 불편했다. 어머니도 고독함을 가진 여자였다. 아차 싶어 다시 어머니 방을 두드렸다. 사과의 말씀을 드리자 어머니는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사실 너와 언니, 그리고 아버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어.

  재훈이가 지금 많이 힘들어해.

  주말마다 가는 것도 일주일에 이틀이라도 안정을 찾을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 가는 거야.


  동생은 매일 밤 퇴근 후 사표를 쓰고 있었다. 말문이 막혔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 녀석이 대체 언제부터, 힘들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말 그 정도로 힘든 것은 언제부터일까, 무엇이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일까. 하나둘씩 물어보았지만, 그것은 그동안 나의 무관심을 더 뚜렷하게 해 줄 뿐이었다. 부끄러웠다. 어머니는 동생을 위해 항상 기도해 주라고 했는데, 진심으로 동생을 걱정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내가 메시지를 보낼 때 정말 그 녀석을 이해하며 보냈을까, 어디서부터 내가 무관심했을까, 동생은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이겨내고 있었으면, 상상할 수 없는 관심과 애정을 주어야 했다. 나는 동생이 겪는 수많은 일들을 눈곱만치도 이해하지 않은 채 무관심한 이야기만 펼칠 뿐이었다.


  아직도 기도의 효능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진심을 다해 그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그 시간은 고통을 나누어 가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얗고 차디찬 그곳에서 잠시라도 따뜻할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푸른 하늘을 통해 그의 마음에 닿기를 바란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은다.

  잊지 마.

  너의 곁에 작은 누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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