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나는 집안일 중 설거지를 가장 싫어한다.요리는 좋아하지만 요리를 하면 나오는 설거지는 싫다.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설거지거리를 줄여보려고 조리도구 사용을 줄이기로 했다. 그러다보니자연스럽게 주방도구가미니멀이되었다.
'언젠간 쓰겠지.'
'있으면 사용하겠지.'
라는 생각은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조리도구는 귀찮은 설거지 거리 중 하나일 뿐. 특히 내가 요리하는 날에는. 더 정확히는 내가 설거지하는 날에는 다양한 조리도구는 필요 없다. 결혼을 하고 구색을 맞추려고 산 조리도구들은 자리만 차지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리도구들에게 내 주방 한 켠을 내어주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고서야 나에게 필요 없는 주방도구들을 보낼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내가 잘 사용하는 나무 수저 하나만 남겨놓고 싶었다. 나무 수저 하나면 모든 요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열에 한 번 요리를 하고 싶어 하는 남편과 가끔 집에서 가족모임을 할 때 필요한 기본적인 조리도구는 필요했다.
냄비 하나로 시금치나물을 무치는 나와는 달리 집에 있는 조리도구란 조리도구를 다 사용해야 직성이 풀리는 지(?) 온갖 조리도구를 다 써서 만드는 남편의 시금치나물이다. 간장을 사용한 수저, 소금을 뿌린 수저, 다진 마늘을 퍼낸 수저 그리고 시금치를 삶은 냄비와 삶을 때 사용한 집게, 시금치 거름망, 마지막으로 시금치를 무칠 스텐 통까지... 다행히도 참기름은 그냥 주르륵 따랐다.
"왜 참기름은 수저로 계량 안 해?"
"원래 써야는데 참기름 넣는 걸 깜빡했네? 빨리 넣느라 그냥 한바퀴 둘러봤어. 다음엔 수저로 제대로 계량해야지."
"아...그런 깊은 뜻이? 그런데 나물하나 무치는데 조리도구 7개나 썼어~ 수저는 바로바로 헹궈서 쓰면되는데..."
"요리하는데 설거지할 시간이 어딨어. 어차피 하는 설거지 한꺼번에 하면 돼~"
무려 7가지의 조리기구를 사용한 남편의 시금치는 맛있었다. 하지만 조리도구를 많이 써서 그런 것 같진 않았다.
반면, 내가 시금치를 무칠 땐, 시금치를 삶는 냄비 하나와 나무 수저 하나면 된다. 먼저, 시금치를 씻은 후 끓는 냄비에 삶는다. 이때 집게는 필요 없다. 나무 수저로 시금치가 잘 삶아지게 찌르면서 삶는다. 냄비째 찬물에 헹구고 손으로 시금치를 건져 물기를 꽉 짜낸다. 시금치나물을 다시 헹군 냄비에 담는다.(시금치 삶은 냄비가 더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로 물로 헹구면 된다.) 나무 수저를 물로 헹구며 소금, 간장, 마늘을 넣으며 간을 맞춘다. 이때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바로 물에 헹궈가며 양념을 넣는 것이다. 물에 바로 씻으면 설거지가 바로 된다. 양념마다 수저를 따로 쓸 필요가 없다. 마지막으로 잊지 않고 참기름은 쪼르륵 한 바퀴 두르고 손으로 조물조물하면 냄비 하나와 나무 수저 하나로 맛있는 시금치 나물이 완성된다.
가끔 요리를 하는 남편에게,
"요리 하나 하는 데 조리기구를도대체 몇 개나 쓰는 거야? "라고 물었을 때,"조리기구들의 기능이 다 있는 거잖아. 각각 알맞게 써줘야지. 안 그래?" 대답한다.
어차피 설거지는 내 몫이 아니니 남편의 조리도구에 대한 가치관을 인정해 준다.
가끔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몸에 좋은 거라며 항상 시금치를 고르는 남편.나는 "오늘 시금치나물은 내가 무칠게."라고 말한다.
어느 날은 싱크대에 뒤집개가 나와 있었다.
"전이라도 부쳐먹은 거야? 웬 뒤집개가 나와있어?"
"아니? 계란 후라이 해먹었는데?"
우리 집 뒤집개로 말할 것 같으면, 일 년 중 행사가 있는 날에만 쓰는 조리도구이다. 예를 들면, 설날과 추석에 가족들이 모여 전을 부칠 때, 아니면 신랑이 대왕 해물파전이 먹고 싶다고 할 때나(남편은 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태까지 한 번도 대왕 해물파전을 찾은 적이 없다.) 사용하는 도구이다. 그만큼 사용빈도가 낮은 조리도구란 이야기다. 계란 프라이를 할 때는 더더욱 상상할 수도 없는 조리도구였다. 간단한 전 같은 경우에는 프라이팬을 잡고 손목 스냅을 이용해 뒤집는다.(조금이라도 조리도구 설거지를 줄이기위해 연습한 결과물)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잘 사용하는 조리도구는 바로 '나무 수저' 밥을 먹는 수저는 아니고 밥 수저보다 조금 더 길쭉하고 크다. 이 만능 나무 수저만 있으면 대부분의 요리가 완성된다. 나에게 다양한 조리도구는 필요 없다. 나는 단지 설거지가 귀찮아서 조리도구를포기했다.
요리 계량을 할 때는 물론, 볶음 요리를 할 때도, 국물 요리를 할 때도, 잼을 만들 때도, 걸쭉한 카레나, 짜장을 만들 때도, 브로콜리나 시금치를 삶을 때도 집게대신 수저로 쿡쿡 누르고, 행여 갑자기 물이 넘칠 때 퍼내기도 좋다. 다 삶아진 브로콜리를 건지기도 편하다. 수저라 중간중간 간을 보기에는 더욱 좋다. 국의 건더기를 건져 담을 때도 편하다. 만능 나무 수저는 사이즈가 커서 아이의 국물을 담을 때도 딱 적당하다.
어느 날은 내가 나무 수저 하나로 요리를 하는 것을 보고 남편이 물었다.
"왜 편리한 조리도구들을 두고 그렇게 해? 설거지 때문이면 내가 설거지할게. 마음껏 써!"
"그래? 한 번 마음껏 써볼까?"
남편의 말대로 요리를 하면서 설거지에 대한 걱정없이 다양한 조리도구들을 써 보았다.
나무 수저 몇 개, 국자, 젓가락, 뒤집개까지..설거지 통에 설거지거리가 점점 쌓여갔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조리도구를 많이 쓴다고 해서 마냥 편하지도 않았다. 사용한 조리도구를 바로바로 씻어서 사용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나에게는 나무 수저 하나로 하는 요리가 훨씬 편했다. 심적으로도...
처음엔 설거지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 포기했던 조리도구의 사용이 이제 조리도구 미니멀 라이프를 가능하게 했다.
"나는 그냥 이게 편해. 나무 수저로 요리할래."
설거지는 남편이 하겠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요리할 때 사용하는 조리도구는 만능 나무 수저 하나다. 아직도 조리도구는 최대한 미니멀하게 사용중이다.
주방에서 남편도 안 쓰고 나도 안 쓰는 조리도구들은 모두 비웠다. 이제 결혼 5년 차 주부로서 자주 사용하는 조리도구들과 필요한 조리 도구들, 사용하지 않을 조리도구는 모두 파악되었기 때문에 조리도구 미니멀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좋아하고 자주 해 먹는 웬만한 요리는 우리 집에 있는 최소한의 조리도구들로 만들기가 가능하다. 혹시 꼭 필요한 조리기구가 생기면 친한 이웃들에게 잠시 빌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오늘도 나는 식탁에 앉아 '오늘은 나무 수저 하나로 무슨 요리를 해 볼까' 고민을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