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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멀리스트 귀선 Dec 25. 2020

서랍장을 없앴다.

쌓아두거나 채워 넣지 않는 법


  서랍장은 언제나 보물창고가 된다.


  서랍장과 살다 보니 자꾸만 우리 집 잡동사니들을 숨겨놓게 되었다. 모든 잡동사니들이 서랍장 안에 들어가 있으니 깔끔하다. 아니, 깔끔하게 보일 뿐이다. 나는 서랍장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사실 뒤죽박죽 하게 변한지도 몰랐다. 잡동사니 물건들이 보기 싫다는 이유로 매번 서랍장 안에 쑤셔 넣기 일 쑤였다. 서랍장 안에 먼지가 쌓이고, 어떤 물건들이 들었는지는 서랍장을 없애야겠다고 마음먹은 후에 알게 되었다. 서랍장 맨 아랫칸은 아이의 옷들이 들어있다. 가끔 어떤 옷들이 들어있는지 모를 때도 있다. 자주 빨아서 제일 위쪽에 올려놓은 옷들만 항상 손이갔고 아랫칸에 깔려있는 옷들은 그저 항상 아래칸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나는 공인인증서가 필요했다. 일 년에 몇 번 안 찾는 공인인증서라 잡동사니 칸을 뒤지며 겨우 찾았다. 그때부터 서랍장은 '언제 정리하지?'마음속의 걸림돌이 되었다. 며칠간 서랍장을 째려본 것 같다.


 조금씩 서랍장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필요 없는 잡동사니들은 중고에 팔거나 필요한 지인에게 나누었고, 꼭 필요한 물건들은 잘 보이는 곳으로 빼놓았다. 아이 옷들 칸과 내 운동복 칸도 정리하니 서랍장 반 이상이 빈칸이 되었다.

 힘들게 서랍 칸을 정리했는데 다시 잡동사니들로 채우기 아까웠다. 나머지 칸에 남아있던 내 운동복들과 아이 옷은 비어있던 헹어 칸에 걸고 리빙박스에 넣으니  옷을 입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이제  두 칸이 남았다. 남편 물건들이 있는 칸이다. 남편의 물건은 함부로 없애고 치울 순 없다. 그대로 옮겨서 남은 슬라이딩 박스에 넣었다. 남편 물건 전용칸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서랍장 15칸은 텅텅 비게 되었다.


'정말 저 서랍장이 우리에게 필요한지...'


 영원히 못 치울 것 같았던 잡동사니 서랍장이 비워지니 서랍장의 필요성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 서랍장을 비우자는 말에 남편의 반대가 있었다.


"잘 쓰고 있는 걸 왜 비워?"


 남편의 잘 쓰고 있다는 말에 나는 '우리는 서랍장을 잘 쓰고 있는 게 아니다.''지금 서랍장은 관리가 안되고 있다. 이 끔찍한 먼지들을 봐라.''남편이 쓰는 칸은 2칸뿐, 나머지는 잘 쓰지도 않는 잡동사니였다. 그리고 필요한 것들은 잘 보관했으니 걱정마라.''서랍장을 잘 쓰려면 그만큼 관리도 필요하다. 매번 잘 관리할 수 있겠느냐.'등의 말들로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주일 정도 빈 서랍장을 가지고 살았다. 즉 일주일 정도 비워진 서랍장을 쓰지 않고 살았다. 남편이 말했다.


"서랍장 마음대로 해~"


 서랍장을 팔았다. 서랍장을 팔고 받은 돈은 아이 저금통에 넣어주기로 했다.


 우리 집에 잡동사니 서랍장은 이제 없다. 뒤적거리며 물건을 찾지 않아도 된다. 서랍장의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서랍장 안의 쌓인 먼지들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아도 된다. 서랍장이 나가고 빈 공간을 보니 속이 시원하기만 하다.


'채워 넣을 공간이 없으면, 채워 넣지 않게 되더라.' 


 지금까지 비우며 느낀 점이다. 옷장 헹거를 줄이니 옷을 더 이상 (잘) 안 사게 되었다. 거실장을 비우니 거실장 서랍을 가득 메웠던 잡동사니들을 안 사게 되었다. 이렇게 소비생활이 현저히 줄었다. 공간이 있으면 있을수록 채웠던 내 생활이 180도 바뀐 것이다. 이제 새로운 물건보다는 빈 공간이 주는 진정한 기쁨을 알아버렸다. 앞으로도 이 기쁨을 위해 미니멀하게 살아야겠다.



"지금 당신의 서랍장은 안녕하신가요?"

서랍장이 나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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