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놀이터에서 논 후, 집 앞에 있는 김밥 가게에 갔다. 오랜만에 김밥 두 줄을 사서 먹을 예정이었다. 친한 이웃 언니가 하는 가게라 아이도 가게 가는 것을 참 좋아한다. 들어가자마자 마치 제 집인 마냥 이모한테 인사를 하고, 물도 마시며 이리저리 가게 구경을 한다. 그러다가 아이의 눈이 빛이 나고 조용하다. 분리수거를 하려고 모아놓은 곳에서 아이가 무언가를 찾은 것이다. 김밥을 포장하며 오랜만에 언니랑 수다를 나누고 있는 사이 아이는 분리수거 쓰레기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 속에서 무언가를 하나 가져오며 쭈뼛쭈뼛 서있다.
-엄마, 엄마! 속닥 속닥 할래요.
-왜? 무슨 말 하려고?
-이모한테 이거 승현이 주면 안 되냐고 물어봐주세요.
뭔가 가져오면 안 될 것을 가져온 거라 생각했는지, 자신이 갖고 싶은 거는 이모한테도 소중하다고 생각한 건지
아이는 다 먹고 버리려고 둔 계란 판을 들고 서 있다.
나는 아이 손에 있는 계란판을 보고 그거 이모가 버리려고 놓아둔 거니 당연히 가져도 되지라고 말하려다가,
-승현이가 한번 이모한테 여쭤보는 거 어때?
-음, 이모가 혹시 안된다고 하면 어쩌지?
-엄마 생각에는 이모가 승현이 예뻐하니까 주실 거 같은데...
당연히 될 일이지만 비록 쓰레기지만 남의 것을 가져오는 일이기에 아이에게 부탁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모, 이거 승현이 주면 안 될까요?
언니는 김밥을 싸다 말고 쳐다보며,
-아~그거? 그래, 승현이 가져가~ 이모가 승현이 올 줄 알고 거기다 잘 뒀어!
라고 센스 있는 답변으로 말해주었다.
아이는 그 말을 듣고 뛸 듯 기뻐했다. 아니 실제로 가게에서 빈 계란판을 안고 뛰었다. 가게 손님들은 도대체 무엇을 받았길래 저렇게 좋아하나 한 번씩 쓱 쳐다보았다.
속으로 저게 뭐라고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계란판은 우리에게 꽤 흥미 있는 장난감이다.(장난감이 뭐 별거 있나, 갖고 노는 이가 재미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계란판으로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더 어렸을 적에 계란을 먹고 난 후면 계란판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가는 대신 미술 놀이를 할 때 팔레트로 한 번 쓰고, 알록달록 색깔을 입혀서 작품도 만들었다.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더하면 화산 폭발 놀이도 할 수 있다. 튼튼한 30구짜리 계란판은 방패가 되기도 하고, 작은 피겨들의 집이 되기도 한다.
우리 집은 10구짜리 계란을 사 먹기 때문에 30구짜리 계란판은 아이에게 희귀 템이다. 어느 날은 30구짜리 계란판을 들고 놀이터에 나갔는데, 친구와 함께 방패라며 놀다가 그만 계란판이 찢어졌다. 그래서 그날 집에 들어오면서 엄청 울었다. 다음 날 계란판을 구하러 쓰레기장을 돈 적도 있다. 4살 아이에게 5살이 된 지금도 계란판은 참 소중한 놀잇감이다.
택배가 온 날이면 택배를 시킨 나보다 아이가 더 신이 나 있다. 그 이유는 택배 상자 안에는 아이의 놀잇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와 택배 왔다!
-엄마 택배인데 네가 신나는 이유는바로 이것 때문이겠지?
-이 뾱뾱이 저 주면 안 돼요?엄마, 이 상자 저 주면 안돼요? 엄마, 이 얼음(아이스팩) 저 주면 안돼요?
아이가 달라는 말에 물론 안 될 것은 하나도 없지만 꽤 좋은 것을, 엄마에게 소중한 것을 양보하는 것처럼 아이에게 준다. 그럼 아이는 훨씬 좋아한다. 훗, 엄마들의 연기력이란...
택배가 온 날이면 그날 육아는 거저먹기다. 뾱뾱이가 들어있을지, 아이스팩이 들어있을 지, 친환경 포장으로 옥수수콘이 들어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이의 놀잇감이 들어있는 것은 확실하다.
뾱뾱이가 들어있는 날엔 함께 누가 먼저 뾱뾱이를 터트리나 시합을 한다. 발로도 터쳐보고 손으로도 손바닥으로도 터쳐본다. 큰 뾱뾱이는 온몸으로 터져도 재미있다. 다 터트린 뾱뾱이는 인형들의 이불이 되기도 한다.(아끼는 인형한테 덮어준다.)
아이스팩이나 드라이아이스가 있는 날에는 과학실험이 시작된다. 몇 개는 냉동실에 얼려두고 재활용하고 나머지는 얼음을 어떻게 빨리 녹일까? 의 주제로 대결을 한다. (장난감) 망치를 가져와서 깨보고, 따뜻한 물을 뿌려보고, 따뜻한 햇빛에 가만히 두기도 한다. 가장 빨리 녹이는 방법을 아는 아이는 화장실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아이스팩 하나로 약 한 시간을 편히 육아할 수 있다. 아이스팩보다 더 고급스러운(?) 드라이아이스가 있는 날이면 나도 함께 신이 난다. 아직도 그 연기를 보면 흥분하는 만 32세 엄마와 5살 아이는 주방 싱크대를 연기 바다로 만든다. 컵에 넣으면 연기가 흘러나오고 싱크대에 넣으면 싱크대 안이 안개 낀 것 마냥 무섭다. 나도 신기한데 5살 아이는 얼마나 더 신기할까? 택배를 시켰는데 드라이아이스가 온 날은 택배는 덤이고 드라이아이스가 더 기분 좋은 선물이 된다.
그냥 무심코 보면 버릴 수 있는 것들을 다시 한번 활용해서 놀면 아이와 엄마도 재미있고, 장난감을 따로 사지 않아도 된다. 쓰레기로 노는 것이 뭐가 재미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는 쓰레기로 놀 든 비싼 장난감으로 놀든 엄마, 아빠와 함께 논다는 것 자체에 더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계란판을 소중하게 들고 오는 아이의 모습은 너무 귀엽다. 집에 있는 장난감으로 함께 노는 것도 좋지만 어떤 물건이든 장난감으로 만들어 함께 노는 우리는 행복하다. 그리고 가끔가다 아이를 보며 '정말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이렇게도 놀 수 있구나'라고 아이의 창의력도 엿볼 수 있다. 배우기도 한다. 아이에게 모든 물건은 놀잇감이 될 수 있다. 위생적으로 너무 더럽고, 안전상의 문제가 있는 것만 아니라면 쓰레기 장의 물건도 아이에게 좋은 놀잇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필요한 것을 분리수거장에서 얻는 경우도 많다. (주워서 깨끗하게 턴 다음 놀고 난 후 다시 분리수거장으로 보낸다.)
그 밖에도 다 쓴 화장지에서 나오는 휴지심은 꼭 모은다. 블록 대신 쌓기 놀이를 할 수 있고, 반으로 잘라 미니카가 다니는 터널도 만들 수 있다. 어느 날은 아이가 화장실 세면대에서 한참을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편하고 아이도 집중하고 있는 모습에 놔뒀는데 글쎄 화장지 심지를 물어 풀어서 놀고 있었다. 그날 조금만 늦게 봤으면 세면대가 크게 막힐 뻔했다.
외할머니 집에 가면 키친타월 심지도 모아두는데 화장지 심지보다 더 길쭉하고 튼튼해서 더 좋아한다. 사인펜으로 예쁘게 칠해서 망원경으로 변신해 해적 놀이를 하면 딱이다. 요즘에는 가위로 잘라서 문어를 만드는 놀이에 빠졌다. 팁으로 문어는 종이컵으로 만들면 좋다. 맥도날 0에서 콜라를 먹으면 주는 컵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재료다. 문어 만들기 딱이라나? 콜라를 싫어하지만 일부러 사이즈를 업해서 시킨 날도 있다.
-우아 대왕 컵이다! 이거 다 먹으면 승현이 선물로 줘요! 문어 만들래요~
참 소소하지만 이런 것으로(?)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아이에게 배운다. 행복은 맥도날 0컵처럼 가까이 있고, 소소하지만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큰 행복을 느낄 수 있구나, 나도 그러도록 노력해야겠다는 행복에 대한 교훈을 얻는다. 행복은 결국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육아를 하길 바란다. 엄마가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한다. 너무 애쓰면 지칠게 뻔하니까. 나 또한 그랬다. 세상엔 너무 잘하는 엄마들이 많았고 나도 너무 잘하고 싶어서 육아서적, 엄마표 놀이, sns에 나오는 육아 놀이를 탐구했지만 내가 너무 지칠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나와 아이 성향에 맞는 육아가 최고의 육아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육아가 정답이다. 아이의 성향과 기질이 다르고 엄마의 성향과 기질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육아든 정답은 없다.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하면 그게 정답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만은 모두 같으니다른 엄마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의 관심과 사랑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