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부장 안의 그릇들을 모조리 꺼냈습니다. 주방 바닥이 발 디딜틈도 없이 그릇들로 꽉 찼지요. 몇십 년 동안 모은 그릇들이 한눈에 다 보였습니다. 그릇들의 상태가 너무 좋아서 버리기엔 꽤 아까웠습니다. 고민한 끝에 그릇이 필요한 이들에게 기부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화를 해서 어떤 그릇들이 기부가능한지 물어보고 하나하나 깨지지 않도록 포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너무 오래된 그릇이나 두꺼운 도자기 그릇은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가능한 물품들을 꼭 전화로 알아보고 보내야 합니다.)큰 박스로 6개나 나왔습니다. 만약 그릇을 버려야 했다면 쉽게 비우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엄마도 버리는 것보다 기부를 한다는 말에 비우는 결심이 한 결 쉽다고 하셨습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접시도 선물 받고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찻잔도 새 주인에게 간다는 생각에 아까운 생각 없이 포장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안 쓰는 그릇을 누군가 잘 써주면 고마운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쓰지 않는 컵과 텀블러도 함께 정리했습니다. 정리는 정리를 부릅니다. 하부장을 정리하니 상부장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틀림없이 맞는 말입니다. 미루고 미뤘던 안 쓰던 그릇을 비우니 도미노처럼 정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안 쓰는 반찬통과 언젠가 쓸 것 같아서 모아 둔 유리병들을 모두 비웠습니다. 주방 한 켠의 하부장 그릇 비움으로 시작해서 상부장의 컵과 텀블러, 그동안 모아둔 유리병들, 서랍 속 오래된 반찬통과 주방 용품을 비웠습니다. 정말 많이도비웠지요. 언젠가라는 말을 좋아하는 엄마가 변했습니다. 언젠가라는 말은 주방을 어지럽히는 큰 적입니다. 엄마는 속이 시원하다고 하셨고 이제 필요한 그릇만이 남아있는 주방을 보고 더 이상 그릇을 사지 않고 있는 그릇들을 잘 써야겠다고 하셨습니다.(원래 그릇 사는 것에 취미는 없지만)
비움과 정리는 소비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필요 없는 물건들과 함께 살아갈 때는 잘 모릅니다. 우리가 진정 그 물건이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비로소 정리를 시작할 때 그 물건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물건이며 내가 얼마나 많은 물건을 안고 살고 있었는지를 느끼면 더 이상 소비가 필요 없다고 느껴질 것입니다.
무너지기 직전의 하부장은 다행히 그릇을 다 빼고 나서야무너졌습니다. 아래위로 꽉 차 있던 그릇들이 서로 지탱하고 버텼던 것입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아까운 그릇들이 빛도 못 보고 와장창 깨졌을 것입니다. 원래 2층으로 빽빽하게 그릇들로 채워졌던 하부장은 무너진 2층을 빼고 1층으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충분했습니다. 아니 여유롭다는 표현이 더 맞겠어요.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게 가득 찬 서랍과 상부장도 빈 공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빈 공간은 새로운 무엇을 다시 채울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 빛이 납니다. 청소도 한결 쉬워져 청소가 재미있어집니다. 물건을 비우고 그 공간을 청소하던 엄마가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사니까 너무 좋네”
비움을 결코 쉬운 게 아닙다.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아주 독하게 먹어야 시도할 수 있지요. 내 소유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그리고 아깝다는 이유가 가장 클 것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비울 때마다 아깝다는 생각은 어쩔 수가 없지요. 동시에 앞으로 좀 더 소비에 신중해져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물건을 소유할 때의 기쁨은 잠시뿐이고 익숙해지면 다른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 이 패턴이 반복되면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쌓여가고 소비는 늘며 우리 마음은 복잡해지는 것이지요. 정리를 시작해 보세요. 소비의 기쁨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기고 마음도 평안해질 것입니다.
정리를 무작정 비우고 버린다고 생각하면 어렵습니다.(이 물건에 쓴 돈이 얼만데…) 기부는 물건을 조금 더 쉽게 비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쓰이지 않는 물건은 가치가 불분명해지지만 필요한 이에게는 선물과도 같지요. 비우기 어려운 물건이 있다면 버린다고 생각하지 말로 나보다 더 필요한 이가 잘 사용해준다고 생각하면 복잡한 마음이 한결 쉬워질 것입니다. 물건은 잘 써야 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공간에 필요 없는 물건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은주방 서랍을 둘러봅니디ㅣ. 1년 동안 잘 사용한 물건도 있지만 반면 사용하지 않고 자리만 지켰던 물건도 있을 거에요. 내 마음을 복잡하게 하고 주방서랍을 어지럽히는 물건들을 정리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