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멀리스트 귀선 Sep 08. 2020

답정너 와이프의 미니멀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

  


  내가 미니멀 라이프를 할 수 있었던 것은..바로..


남편 덕분이다.


  "잘한다 잘한다" 열정적인 응원이 있던 것도 아니고, 바뀌어가는 집을 보며 칭찬을 해 준 것도 아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와이프가 환경을 생각한다며,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한다면서, 말없이 섬유유연제와 세제를 안쓰 친환경 세탁볼로 빨래를 해 옷에서 더이상 좋은 섬유유연제 향이 나지 않았을 , 말 없이 냄새가 나는 군복에 아침마다 향수를 뿌려가면서 출근을 하고,


 바디워시의 진한 향과 거품을 좋아하는데 갑자기 바뀐 순한 향의 비누로 "이걸로 몸씻으면 돼?"라고 물으며, 손수 거품을 내면서 몸을 씻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안방의 아이 침대를 팔았을 때도, 남편이 깜짝 선물로 사준 실내자전거를 이제 팔아야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소파의 위치가 텔레비전을 보는 데 불편한 위치로 옮겨져 있어도 아무말없이 그냥 앉아주는(?) 정도?

 남편은 뭐 정도였다.(요즘은 하루 한 끼 채식에도 동참 중이다.)


 한 집에 살면서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살림들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때론 장단을 맞춰주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소신 있는(?)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결국 지금까지 나를 잘 따라와 준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말없이 물건을 비우고, 팔고, 옮기고, 바꾸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제법 화낼 일도 불편할 일도 많았을 텐데..어떤 기분이었을까?


 우선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가족에게 고맙다고 말해야겠다.


"우리 가족 고마워~"


 아무리 의도가 좋았던 미니멀 라이프 실천이지만, 나 혼자 사는 집이 아니라 세 명이 같이 사는 집이기 때문에 가족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 처음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는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세제를 세탁볼로 바꿨어." 

"주방세제는 이제 비누야."

"소파를 여기로 옮겨봤어."

"침대를 이쪽으로 옮겼어."

"이거 안 써서 팔았어."

"저거 필요 없길래 팔았어."


  처음엔 그러려니 했던 남편도 조금씩 자신의 의사를 물어봐달라고 했다. 예를 들어, 설거지는 함께 하는 데 말없이 세제를 비누로 바꿔버리면 설거지에 지분이 있는 자신도 속상하다면서.. 앞으로는 바꾸기 전에 말을 해달라고 했다. 사실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그동안 내 행동들에 많이 놀라고 서운했을 것이다. 의도야 어떻든 간에 함께 하는 공간에서 아무 말 없이 바꾸고, 비우고, 옮기면 그 누구든 서운할 것 같다.


 요즘은 어차피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지만, 꼬박꼬박 의사를 묻고 있다.


답정너 와이프의 모자 비우는 법
남편의 의사를 존중하는 중


  결국, 남편이 잘 쓰지 않는 저 많은 모자들 중 정말 잘 안 쓰는 스냅백 딱 한 개만이 중고나라에 올라갔다. 이렇게 우리는 여러 차례  함께 고민하고 얘기해보면서 평화롭게(?) 미니멀 라이프를 실행 중이다.


 우리 집엔 남편뿐만이 아닌 이제 의사표현이 가능해져 발언권이 생긴 3살 아들도 있다. 최근에 함께 미니멀 라이프에 동참해 함께 물건을 비웠다.


"승현아~ 이제 승현이 형아 됐으니깐, 이 장난감은  동생 물려줄까?"


"안돼! 승현이 꺼야~"


"승현아, 우리 이 장난감은 팔고 그 돈으로 다음에 다른 장난감 살까?"


"네~ 팔아 팔아"


 

 이제 의사소통이 가능해져 아이 물건은 꼭 물어본 다음에 처리한다. 아이의 답변은 종잡을 수 없다. 분명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인데 주지 말라고 하고 어떨 때는 잘 가지고 노는 장난감도 팔으란다. 그래서 아이의 의사를 물어볼 때는 최소 5번은 묻는 것 같다.

 

 시기가 지난 장난감들과 잘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들 그리고 소중히 다루지 않는 장난감들을 주로 물어본다.


 장난감을 판다는 개념을 아직 정확히 모를 수도 있지만, 설명해주고, 이제 그 장난감과는 안녕해야 한다는 것과 자신의 장난감을 팔면 그 대가가 생긴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아이의 장난감을 비운 후 얻는 돈은 아이의 저금통으로 간다.


 아이가 정말 잘 가지고 놀던 피아노 장난감이 있다. 점차 그 장난감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 게  보였고, 며칠을 더 지켜보다가 팔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며칠 후, 아이에게


 "승현아 우리 이제 이 장난감이랑 안녕할까? 필요한 친구에게 팔고 우리 나중에 필요한 거 사자. "


  말을 꺼내고 잠시 생각하더니 아이는 그러자고 했다.(여러 번을 물어봤다.)그래서 중고장터에 올렸고 장난감은 바로 팔렸다.

피아노 장난감을 팔고 받은 돈
아이가 자신의 저금통에 신나게 저금하는 중


 한때는 아이에게 소중했던 장난감이 이렇게 비워졌다.

한편으로는 어른인 우리보다도 미련 없는 결정에 대단함을 느꼈다.

 혹시나 뒤늦게 찾진 않을까, 떼쓰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이는 다행히  찾지 않았고 집에 남아있는 현재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장난감들로 잘 놀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집에서 비우고 다시 안 사는 물건들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