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기억하며 2
26년 어느덧 2월도 중순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니 서서히 겨울이 지고 있다.
어젠 퇴근길 우리 집 이사를 앞두고 여동생이 소파 리폼을 해주고 있어서 마트를 들려서
물파래와 풋마늘 딸기 파프리카를 사 왔다.
이 음식은 전라도 영산포가 고향이신 울 엄마가 봄이 되기 전 늘 해주셨던 물파래무침
풋마늘김치나 풋마늘간장이 코 끝이 찡하게 그리운 맛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결혼 10년 차가 지나가도 9년까지 늘 엄마가 해주셨던 반찬을 공수하며 너무 주셔서
아쉽게도 버리던 음식도 있어서 죄송해하며 복에 겨운 시간을 보냈었다.
엄마가 그립다. 엄마의 사랑이 엄마의 목소리가 엄마의 살내음이.
엄마의 음식이.
얼마 전 삼척을 아버지와 여동생과 순둥이 강아지 남편과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중간에 점심식사를 들린 안성에서 성당이 있어 두 손 모아 기도드렸다. 귀여운 강아지 순둥이는
옆에서 마냥 즐겁지만
난 꿈속에 나타나도 엄마가 아프신 거 같아 하늘에선 아프시지 말길.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울 엄마 엄청 이쁘신 미인인데 아프실 땐 잘 안 웃으셔서
하늘나라에선 웃으실 일만 가득하시길 빌었다.
삼척은 엄마와의 추억도 있는 여행지이다.
내가 부동산 투자를 했기에 엄마는 내 임장파트너이자 여행 동반자였다.
나의 절친을 잃어버린.
여동생도 엄마는 그런 존재라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엄마를 꼭 닮은 여동생. 이 아이도 가벼워지길.
눈물 콧물 흘리며 울곤 하는 내 동생.
온몸에 진땀을 흘려도 아픈 엄마 1년 넘게 옆에셔 식사를 챙겨 온 귀한 존재.
그래도 더 잘해드렸어야 하는 마음이 깊게 남는다.
식도흑색종암은 불편함을 느낀 건. 24년 2월 이 정도. 4월부터 25년 8월 떠나셨으니
1년 4개월
아프시다 떠나셨다.
25년 1월 겨울 2월
작년 이맘때 엄만 눈이 와도 걸으셨다.
반듯이 누워서 잘 수도 없고 식사 후 앉아있을 수도 없는 불편함에 하루 만보 넘게 걸으셨다.
엄마는 의지가 강하셨다. 하지만 이 겨울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못 볼 거 같다는 얘기를 나에게
하셨다. 그 목소리가 엄마의 표정이 지워지질 않는다.
25년 4월 간으로 전이가 밝혀져 아산병원에서 항암을 시작했다.
임상항암을 도전했는데. 듣질 않았다.
혈액종양내과 주치의는 모든 결정을 가족과 상의하에 환자에게 맡기며
항암종료도 아무렇지 않게 통보해 버렸다.
다시 결정을 한다면 또 하겠고 엄마의 투병기간동안 했던 수많은 선택과 결정이 후회하지
않으려 하지만.
누군가 식도흑색종암으로 투병하신다면 하시지 말라고 싶다는 게 나도 여동생도 같은 답변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좀 더 내 가족 소중한 엄마를 덜 힘들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니까.
하늘에서 밝게 웃으시며 지내실 엄마를 생각하며
천국에서 만나기까지 매일 기도드리며 씩씩하게 지낼 장녀도 여동생도
아버지도 지켜주시라고 엄마에게 부탁드려 본다.
엄마가 씩씩하게 지내라고 말씀하신 대로 잘 따라보자.
사랑해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