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을 만큼,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 세 번째 상담, 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걸까?

by 너울

휴직 후 2주가량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지냈다.

상담과 병원 진료 외에는 외출도 하지 않았다.

딱 1번, 산책을 나갔다.


"핸드폰을 보거나 음악을 듣지 말고 온전히 나의 감각에만 집중하며 걸어보세요."


우울감 해소에 산책이 효과적이라는 조언에 따라 '나'만 생각하며 걸어보았는데, 그날의 산책은 결국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불안,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 등으로 얼룩졌고 눈물로 끝났다.


무리하지 않고 그냥 쉬기로 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잠만 자기도 했고, 멍하니 TV 앞에 앉아있기도 했다. (본 내용이 기억나지 않으니, TV를 봤다고 할 수도 없었다.)

어떤 날은 침대에서 나오지 않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시계를 보지도, 시각을 따지지도 않았다. 그냥 허기가 느껴질 때면 간단히 요기를 했다.

그나마 아침과 저녁 시간에는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 정도 생활 리듬은 유지할 수 있었다.


'엄마가(아내가) 집에서 쉬고 있으니 밥상이 푸짐해지고 집 안에 윤이 나지 않을까?'


혹시라도 가족들이 기대할까 봐, 한 달 동안 집안일을 포함한 어떤 일에도 애쓰지 않겠다고 미리 선언했다.

어쩌면 이건,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책임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를 위한 선언이었을지도 모른다.


내키는 만큼만, 할 수 있는 만큼만 움직였다.

어떤 일에도 무리하지 않고 그냥 쉬기로 했다.




다시, 상담센터. 세 번째 상담 시간.


"낮에 그렇게 오래 자고도 밤에 또 잠들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예요. 제가 이렇게 잠이 많은지 몰랐어요.

그리고 정말, 진심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정확히 말하면 '뭘 해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드는데, 동시에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더 크게 떠올라요.

몸 안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버린 것 같아요. 바람이 완전히 빠진 풍선 인형처럼, 일어나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 정말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될까요?

사실 가족들한테 미안하고 눈치도 보여요.

가족들은 그냥 관심의 표현으로 '오늘 어땠어? 뭐 했어?'라고 묻는 걸 텐데... 그게 저를 나무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매일 뭐라도 하고 보고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껴요."


"네! 정말 아무것도 안 하셔도 됩니다.

잘 쉬어야, 잘 회복하실 수 있어요. 이제 겨우 2주 쉬신 거잖아요.

번아웃 증상도 있으신데, 자꾸 뭘 하려 하면 제대로 충전할 수 없습니다. '뭘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리셔야 해요.

주변 사람들이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라고 욕할 만큼, 그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


상담 선생님의 말씀은 다소 황당하게 들렸다.

저렇게 말씀하셔도... 내가 결국 '아무것도' 안 하지는 못할 거라고 이미 짐작하고 계신 건 아닐까?




돌아보면 그랬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100%이라면, 언제부턴가 늘 150%, 200%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쥐어짜도, 더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젖은 수건 같았다.

그럼에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늘 부족하고 미안한 일 투성이었다.

남들은 늦게까지 야근도 하는데... 늘 먼저 퇴근하다 보니, 근무시간을 다 채웠음에도 괜히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더 꼼꼼하고 완벽하게 일을 해내려 애썼다.

청소가 안된 집안은 늘 엉망이었지만 시간이 없었고, 아이들 밥을 먹이면서도 노트북을 펴고 틈틈이 일을 했다.

아이들을 재우다 까무룩 잠든 날에는 신기하게도 새벽 4~5시에 눈이 번쩍 떠졌고, 여명을 맞이하며 또 일을 했다.

더 이상 감당이 안될 때는 친정 엄마께 며칠만 와달라고 어렵게 부탁해야 했다.

큰아이 유치원에 도시락을 보내야 했던 날에, 가방이 비어 있다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는 자책감과 막막함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였다.


그래. 돌이켜보면 정말 버거 시간이었다.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늘 양해를 구하고 부탁을 하게 되는 나는 천덕꾸러기, 모지리가 된 것 같았고...

그렇게 체력도, 정신력도 소진되어 가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다시 다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죄책감도, 눈치도, 미안함도 잠시 내려놓고, 마음 편히 쉬어 보기로.

온전히 비워둔 오늘 하루. 이 또한, 괜찮다.









이전 14화나에게 왜 그렇게 가혹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