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이 갈라질 정도의 논쟁과 논박에 더하여
<스타워즈:라스트 제다이>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레이의 부모가 정말 ‘아무도 아닌’ 시정잡배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야말로 <라스트 제다이>가 스타워즈를 다시 탄생시키겠다는 선언이었고, 수많은 영화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라스트 제다이>에 애정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자, 디즈니 안에 포함되었을지언정 <스타워즈>를 그저 장사잘되는 프랜차이즈로 소비해버리지는 않겠다는 야심있는 선언이었다.
물론 JJ 에이브럼스가 시작한 스타워즈의 새 시리즈도 만족스러웠다. <깨어난 포스>는 에이브럼스가 스타워즈 시리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영화였다. 특유의 너드스러움을 십분 발휘하여, 올드팬들이 보고싶어 하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스타워즈의 그래픽효과는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좋아졌지만, ‘디자인’ 자체는 올드 시리즈에서 이미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당시의 기술은 따라갈 수 없던 그 완성된 디자인에 진보된 CG를 끼얹자, 우리는 복잡한 회피기동을 하는 밀레니엄 팔콘이라던지, 물보라를 뚫고 편대비행을 하는 X윙 같은 것들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깨어난 포스>는 이야기적으로는 사실상 답습에 그친다. 은하계 구석에, 자신의 무한한 잠재력을 알지 못하는 미숙한 청년이, 갑작스런 계기로 사건에 휘말리며 은하계를 구하게 되는 이야기. 그렇기에 <깨어난 포스>를 보고난 팬들은 예전의 스타워즈를 보던 방식대로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하게 되었다. 레이의 출생에 관한 긴 논쟁이 대표적이다. 레이는 누구의 딸일까? 팰퍼틴? 오비완? 그런 재능이 그저 아무에게나 주어졌을리가 없지? 결국 <깨어난 포스>는 기존 시리즈의 플롯에 정치적 올바름을 얹어 인종과 성별을 조금씩 바꾼 되돌이표 변주에 가깝다. 불가항력적으로 엑스윙의 자태에 감탄하고, 새로운 스톰트루퍼의 헬멧은 아름다웠지만, 이 안전한 선택은 분명히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라스트 제다이>에서 루크 스카이워커가 전편에서 그토록 감동적으로 건네받았던 자신의 라이트세이버를 어깨너머로 휙 던져버릴때, 온갖 신비로움은 죄다 가져다 몸에 두르고 있던 스노크가 헛웃음이 나오는 방식으로 두동강 날때, 무엇보다도 그토록 사람들을 궁금하게 했던 레이의 진짜 부모가 실은 ‘아무도 아닌’ 시정잡배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 나는 그 모든 무리수와 부족한 연출력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좋아졌다.
<스타워즈>는 이제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될 것이다. 고대부터 내려온, 혈통으로 선택받은 영웅들의 서사시의 일부를 뚝뚝 잘라낸 이야기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평범하고, 단점도 많지만 재능있는’ 자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 변화가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다음 시리즈가 ‘정말로’ 궁금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션 캡쳐가 아니라 CG로 움직이는 AT-AT워커는 어떤 모습일까? 같은게 아닌, ‘누가 무슨 일을 벌일까?’라는 원초적인 궁금증. 수십년 동안 미국 백인사회의 설화처럼 전해내려왔고, 많은 올드팬들이 분노하며 지켜야한다고 외치는 기존의 설정과 이야기들이, 이 순수한 궁금증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