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의 기록>
뭔가를 쓴다. 쓰고나서는 쓴 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굉장히 주의깊게 들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재미없는 끄적임을 끝까지 읽어주는 고마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글은 이랬으면 좋겠다’는 지향점이 확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글이 담백하고 간결했으면 좋겠다. 문장도 표현도 간결해서 읽는 사람이 부담이 없고, 읽는 순간에는 그저 읽히기만 하는 글이었으면 싶다. 그렇게 심심하게 쉽게 읽고 나서는 조용하게 공감할 수 있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멋부린것 같다’거나 ‘과하다’는 등의 평을 내릴 때 가장 신경 쓰인다. 글을 쓰는 것은 기본적으로 나를 위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쓴 글을 사람들이 볼만한 곳에 전시해두는 것은 결국 자기표현의 한 방법이다. 밖에 나갈때 외출복에 신경쓰듯, 남이 나에 대해 좋은 인상, 좋은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욕구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그렇기에 손으로 적는 글이 아니라 키보드로 두드리는 글은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수첩에 대충 끄적거린 것들 중에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것, 공감을 구하고 싶은것들을 골라내어 다시 쓰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간식 위에 설탕을 뿌리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맛있었으면 하는 욕심은 보통 과하게 마련이어서, 내 처음 의도보다 설탕이 많이 들어갈 때가 많다. 글을 쓰고 남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올림에 있어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그것이다.
그런 나에게 있어 <모든 요일의 기록>은 읽는 내내 조금 부담스러운 느낌이었다. 카피라이터는 끊임없이 부지런하게 모든 것을 예민하게 느끼고 기록해야하는 직업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렇게 예민하게 날이 서있는 작가 내면에서 느낀 과잉된 감정들을 조금의 정제도 없이 맞딱뜨린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내 감성이 많이 무뎌진건가 생각하다가, 중반부를 넘어가서는 기어이 이 책과 나는 잘 안맞는게 아닌가 생각하였다.
그것은 설탕을 일부러 빼려는 내 개인적 지향점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설탕같은 조미료 없이도 이렇게 단맛을 느끼는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내가 보는 세상과 작가가 보는 세상이 너무 다를 때, 새로운 관점에 대한 반가움과 간접경험의 기쁨보다 낯설고 거북한 느낌이 더 강할 수도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작가가 한껏 다듬어진 감성으로 느끼는 세계는, 기본적으로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내가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감하고 감동하기엔 너무 다른 세상 같았다.
물론 감정 자체가 보잘것 없는데 말만 예쁜 글이었다면 이 에세이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어딘가 모자란 나의 세상을 묘사할 때 내가 내 표현의 당도를 검열하듯, 작가가 온몸으로 느낀 세상을 조금은 더 정제된 표현과 담백한 문장으로 묘사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작가가 보여주는 몇몇 인사이트에는 더할나위없이 공감했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 중 ’모든 독서는 오독이자 낭만적 오해’라는 말에 특히 공감한다. 이 책을 읽는 나조차 그렇지 않았을까. 언제가될진 모르지만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작가만큼의 열린 마음과 섬세함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된 내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