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안에 나도 모르게 박혀있던 수많은 이름들도 함께.
예전에, 싸이월드 데이터가 포맷된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미니홈피엘 들어가봤었다. 밥벌이와의 각개전투로 피로한 심신에 오랜만에 멍때릴 시간을 줄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피식피식 웃다가 눈살도 좀 찌푸렸다가 다시 킥킥거리기도 하고 그랬다.
지금도 아니라고는 못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지적 허세가 징그러울 정도로 넘쳐나는 인간이었다. 내 이십대는 그 타고난 허세와 실제 나라는 사람의 간극을 줄이려는 노력의 과정으로 요약된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똑똑한 척 하는 사람보다는 똑똑한 사람이 되려고 많이 애썼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도 애쓰고 있다. 허세라는게 허세로 그치면 그냥 병신이 병신처럼 병신인걸 모르는 병신이다. 하지만 허세로만 그치지 않으면, 어떤 시작점이요 자기 발전을 위한 동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인스타며 페북에 한껏 허세 부리는 20대 초반의 동생들을 무시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나의 삼십대도 열심히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하며 보내리라 다짐한다. 동시에 끊임없이 생각하고 한껏 아는 척 있는 척 깨달은 척도 계속하리라 다짐한다. 더불어 그 징그럽던 나를 잘 받아주셨던 그 시절의 많은 분들께도 사과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여러분 덕에 제가 지금 그나마 이정도 정신차리고 삽니다.
묘한 일이다. 불과 몇년전에 죽고 못살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연락 한번 선뜻하기도 애매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때는 인사 한번 나눠본 적 없던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되어 옆에 있다. 그러고보면, 내 대인관계는 항상 모순의 연속이었다. 친밀해지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내 개인적 공간을 유지하고 싶은 배타적 성향도 있었다. 이 모순이 한 사람 안에 꽤 오랫동안 공존하고 있다. 취업준비생 신분일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게 좀 부담스러워졌고 거기에 소모할 에너지에 대해 걱정했었다. 그래서 모순이 해결됐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취업을 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다시 한번 엉켜버린 느낌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걸까.
다시 싸이월드 여기저기 남은 흔적들을 뒤적거렸다. 그와중에 튀어나오는, 욕심껏 친분을 쌓았던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 하나하나에 실소하며, 이게 다 무슨 소용이던가, 싶다가도 그나마 그렇게 욕심을 부렸기에 그 중 아직도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던 거였던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주변 사람들한테 잘해야겠다. 자의든 타의든 이제는 멀어져버린 사람들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우연히 만났을때, 또다시 어어 언제 밥 한번 먹어야지! 라는, 어색함을 밀어내려는 영혼 없는 인사치레 밖에 나눌게 없다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