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과 행복의 상관관계.
남자들끼리 술을 먹으면 열에 아홉은 여자 얘기고 나머지 하나는 별 시덥잖은 개똥철학의 향연이 된다. 그런 드문 경우가 최근에 있었는데, 놀랍게도 행복에 대한 이야기였다. 알랭 드 보통이나 할 법한 이야기를 월급 받기 바쁜 20대 후반 남자들의 술자리에서 나누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구체적인 주제는 '행복의 조건'이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거냐 같은거. 한 친구는 애인이랑 있으면 행복하다고 했다. 그 옆에 앉은 친구는 정확히 'ㅡㅡ' 이 표정을 짓더니 넌 헤어지면 니 행복도 끝인거냐 팔불출 새꺄, 라고 했다.
쓸데없는 투닥거림을 무시하기 위해 천장을 쳐다보며 생각해봤더니 내 행복은 택배 아저씨가 방문하는, 그런거 같았다. 평소에 느낄 수 있는 가장 접근성 좋은 행복이 그거였던거다. 이 얘기를 했더니 백화점 가더니 물욕이 두배로 뛰었다고 욕을 한바가지 들어먹었다.
이렇게저렇게 얘기가 오가다가, 알콜 기운이 뇌에 스며든 타이밍이 되어 다들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품으며 말이 없어질 타이밍 즈음, 의대를 나온 친구가 갑자기 홍게탕을 먹자고 했다.
술자리 파해가는 분위기에 뭔 안주를 또 시키냐고 면박을 줬다. 그랬더니 이놈 하는 소리가 걸작이다. 게에 많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중에 티로신이라는게 있는데 이게 뇌에 행복을 느끼는 부분을 활성화시키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된다는거다.
그놈은 그게 행복의 조건이라고 했다.
그놈 빼고 다 문과생이었던 우리는 잠시 말을 잃고 벙쪄있다가(저거보다 훨씬 어렵게 설명했었음) 아놔이런씨 뭔소린진 모르겠지만 뭔가 그럴듯한게 그렇다니까 그런줄 알아야겠다 싶어서 소주를 추가로 시키고, 젓가락으로 홍게 다리를 후벼내며 티로신! 도파민!을 외쳤다.
그 다음에는 가위바위보로 술값 몰아주기를 했는데, 홍게를 먹은 양은 비슷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산을 한 놈들과 안한 놈들의 행복의 양은 이상하게도 달랐던것 같다. 역시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생물이다. 인간은 재밌어... 건방진 이과놈. 니가 인간의 본질을 아느뇨?
행복의 조건.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까 그날 나의 가장 큰 행복은 가위바위보에 이겨서 그 비싼 홍게탕을 계산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하다. 다 그런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