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윈드 리버

당신이 감당할만큼만 과도한 폭력에 대하여

by OHNUS

wind-river-reservation-road-sign.jpg


<시카리오>와 <로스트 인 더스트>로 미국사회 이면의 물질적/정서적 황폐함을 세밀하게 그렸던 테일러 쉐리던이다. 입봉작에서도 그의 주제의식은 바뀌지 않는다. 수작의 반열에 들만한 영화 세편의 각본이, 큰 시간차 없이 쓰여질 정도로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이 크다고 받아들여도 될까.


<윈드 리버>에서는 인디언이다. 지금까지 흑인사회에 대해 다룬 영화는 많이 있어왔다. 그러나 현대 시점에서 인디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매체는 만나본 기억이 거의 없다. 이것은 그들이 소수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전통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하기 때문인가. 알 수 없다. 피와 학살로 건국의 기초를 세운 미국의 태생적 원죄를 바라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의도적인 외면이었을 수도, 흑인사회에 비해 크지 않은 원주민 사회의 사이즈 문제였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인디언들은 주로 시대극에서나 소재로 활용되었다. 그런 점에서, '현대의 인디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테일러 쉐리던의 문제 의식은 멋지다.


그러나, 사실 그의 문제 의식을 칭찬하는 것은 정말 새삼스러운 일이다. 그의 문제 의식은 <시카리오>에서도 <로스트 인 더스트>에서도, 명감독들의 연출과 무관하게 빛났었다. 문제 의식만으로 영화가 훌륭해지지도 않는다. 특히 한국 관객들은 문제 의식만 가진채 완성도 없이 내달린 영화가 얼마나 쉽게 망가질 수 있는지, 그 예시를 이미 너무 많이 봐왔다.


<윈드 리버>는 테일러 쉐리던이 연출에도 뛰어난 잠재력이 있음을 증명한다. 그가 찍은 눈덮인 설원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지 않다. 자연 풍광을 찍은 화면에서 감정이 느껴지기란 어려운 일이다. 영화 내내 가느다란 텐션을 끊기지 않게 아슬아슬하게 끌고가는 솜씨도 놀랍고, 갑자기 폭발하는 후반부에서는 누구나 화들짝 자세를 고쳐앉게 된다. 호크아이도, 스칼렛 위치도 느껴지지 않는 연기 조율도 완벽하다.


영화의 폭력은 상당히 노골적이다. FBI 요원 제인은 상당히 독특한 사격술을 보여주는데 바로 총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표적에다 대고 연속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다. 단순히 당황하거나 놀라서 그랬다기엔 지나치게 집요하며, 다 쏜 후에 탄창을 교체하는 손동작 역시 흔들림이 없다.


사냥꾼 코리의 총은 짐승을 상대로 하는 총이다. 그런 총이 사람에게 발사되자, 애니메이션에나 나올법한 파괴력을 낸다.방탄복을 뚫어버리고, 피격자를 반대편 벽으로 날려버리는 강력함.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이렇듯 강력하고 집요하며 과도하다.


그런데, 관객은 이 과도한 폭력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사실 제인이나 코리는 그들이 진짜 범인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도 없다. 그러나 관객은 코리가 보지 못한 플래시백을 보았고, 그토록 냉철한 사냥꾼이 낯선 여자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털어놓은 그의 과거를 들었다. 이렇게 영화 내내 형성된 공감대에 젖어든 나는 그 공감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거친 폭력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공감하고 후련해 했다는게 더 솔직한 것이리라.


‘정의구현’ 이라는 네 글자가 얼마나 무거운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소녀를 죽였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그저 소녀가 맨발로 눈위를 달려가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방아쇠를 당기는 주인공을 바라보기만 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위대한 쇼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