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먹한 친구 하나쯤은 있다
후회는 늘 어딘가 불쑥 나타난다. 생각보다 자주.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문득 지나친 골목에서, 다 쓰고 조금 남은 지우개 조각처럼 문득 내 마음 한쪽을 툭 건드린다.
“그때 전화할 걸 그랬나? “
“그 회사에 메일을 보냈어야 했는데”
“내가 왜 헤어지자고 그랬지?”
그럴 땐 괜히 머쓱하다. “또 왔어?” 하고 묻지도 않았는데 벌써 옆자리에 앉아 있다.
어쩌면 후회는 약간 서먹해진 친구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예전엔 정말 친했는데, 지금은 연락도 뜸하고, 만나면 어색하고 지루한.
가끔은 회사 앞이라며 톡이와 와서 마지 못해 나가 보기는 하지만 마음 속으론 ‘그만 왔으면’ 하고 짜증이 나는.
그렇다고 미워하기엔 뭔가 애매하고, 그렇다고 매번 반갑게 맞아줄 수도 없는 그런 사이.
우리는 후회를 멀리하려고 애쓴다. 잊으려 하고,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그러면 이상하게 더 자주 생각난다. 마치 연락하지 말자고 다짐한 날에 한 번 더 전화를 거는 것처럼.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해보려 한다.
그 친구가 찾아오면, 잠깐 커피 한 잔쯤은 같이 마셔주는 거다.
“맞아, 너도 참 오랜만이네.”
한숨 한번 쉬어주고, 옛날 얘기 조금 듣고, 그러다보면 금방 지루해진다.
그러다가 아아메가 1/3 정도 남았을 때 “이제 그만 일어나자” 하고 보내준다.
이런 식이다. 후회는 마음에 오래 담아두면 상처가 되지만, 적당히 다뤄주면 그냥 지나간 시간이 된다.
만약 지금, 후회라는 이름의 친구가 자꾸 찾아와 마음을 어지럽힌다면
너무 긴 대화를 나누지는 말자. 그렇다고 차갑게 문전박대할 필요도 없다.
그냥 적당히, 가끔 만나고, 가끔 무시하고.
때로는 너를 만들어준 조각 중 하나였다고, 그 정도로만 기억하면 충분하다.
우리는 누구나 서먹한 친구 하나쯤은 품고 살아간다.
잊히지도 않고, 다시 친해지고 싶지도 않은 그런 친구.
괜찮다. 그 친구가 있다고 해서 지금의 네가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친구 덕분에, 더 조심스러워졌고, 더 깊어진 면도 있을 테니까.
오늘도 그 친구가 문득 떠오르거든
살짝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해보자.
“그래, 너 아직도 거기 있었구나. 뭐, 나도 잘 지내고 있어. 커피 마시러 올래? 사거리 무인카페로 와”
-인간어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