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연골이 사라진 자리에서
왼쪽 무릎 연골이 사라졌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내 몸 어딘가에서 조용히 흘러가던 시간의 잔혹함과 마주했다. 프로레슬러로 살아온 세월, 훈련과 시합이 일상이었고, 몸은 도구이자 무기였다. 그 무기의 이음매 하나가 이제 닳고 부서져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연골이란 게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줄 몰랐다. 겨우 3mm 콜라겐 조직의 부재. 그 공백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라 습관 전체를 바꾸는 파문이 된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무릎뼈는 부딪치는 소리 대신 통증이 내 귀에 속삭인다.
‘남훈아 예전 같지 않아.’ 그 소리는 작지만, 일상에서 반복되면 꽤 큰 울림이 된다.
연골이 달아서 뼈와 뼈가 부딪치며 서로가 날카로워졌다. 그 튀어나온 부분들이 무뤂의 가동범위를 억제해버리고 만 것이다. 수술을 하면 나아질 수 있다고 하나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침울한 한 달을 보냈다. 이제 투렉테이크다운은 못 쓰는 건가, 롤링휠킥은 어떻게 하지? 아니 이 사람아 기술을 쓴다 못쓴다 이전에 링 옆 철제계단을 오를 때 뒤뚱거리는 모습을 보일텐데 그건 어쩔건가. 부상을 받아들이는 건 생각보다 훨씬 느린 일이었다. 나는 무릎을 구부릴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무릎을 중심으로 세상이 기울어 보였다. 무엇을 해도 이 감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일어나려 해도, 앉으려 해도 무릎은 먼저 반응했다. 그건 육체의 신호였지만, 정신까지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런 부상이 내 전신에 동시에 있었다면? 두 무릎, 허리, 어깨, 손목까지 모든 관절이 다 이 상태였다면 나는 뭘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더는 일어날 의욕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비슷한 상황은 과거에 있긴 했었다. 링에서 떨어져 하반신 마비가 된 적이 있었다. 나중에 다시 서술하겠지만 기적적인 회복이 일어났을 때 의사 선생님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복권같은 거 사지 마세요. 이미 당첨됐어요’
이런 생각들이 서로 교차하며 이상하게도 나를 일으켜 세웠다.
차라리 한 군데 몰린 게 낫다. 고통이 집중되면, 집중해서 싸울 수 있다.
나는 무뤂은 굽히지 않았지만 생각을 구부러뜨렸다. 바꿀 수 있는 건 생각뿐이었으니까.
웨이트에 힘을 더 실었다. 무릎을 대신할 수 있는 건 근육뿐이라는 재활의사 말이 떠올랐다. 믿을 수 있는 건 남아 있는 것들뿐이었다.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 복근과 등, 그리고 의지. 무릎을 보호하기 위한 체중 감량도 시작했다. 간단한 전략이었다. ‘덜 먹고, 더 움직인다.’ 하지만 그것만큼 어려운 전략도 없다는 걸 금세 알게 되었다. 더 많은 체지방 소모를 위해서 복싱은 오전 공복 상태에서 수행을 했다. 마침 선수부 훈련이 9시에 생겼다. 대개 인생이란 이렇다. 뭔가 마음을 먹으면 이런 우연의 일치가 만들어내는 소소한 행운이 따르기 마련이다.
나는 그날의 칼로리 공급을 저녁 8시이전에 닫기로 했다. 한 그릇 더를 참는 대신, 무릎에 더는 무게를 올리지 않기로 했다. 매일 최소 한 끼는 닭가슴살과 브로콜리, 방울토마토로 구성된 식단을 진행한다. 술은 어쩔 수 없이 금주다. 마신다면 월 1회 정도로 제한한다. 이제 맥주 한 잔도 마실려면 최소 이주일전에 계획을 세워야만 한다. 이 작은 절제가 몸에 익숙해지자 이상하게도 삶의 다른 부분까지 정돈되기 시작했다. 배고픔과 함께 정신이 맑아졌고,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부드러운 연골은 사라졌지만, 나는 더 단단해졌다.
부상이 준 가장 큰 선물은, 내가 내 몸을 다르게 바라보게 했다는 것이다. 예전엔 도구였지만, 지금은 동반자다. 어느 날은 말을 잘 듣고, 또 어떤 날은 고집을 부린다. 하지만 이 몸과 함께 끝까지 가야 하기에, 이제는 좀 더 부드럽게 대한다.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이 되었다.
왼쪽 무릎은 종종 늘 나보다 먼저 피곤해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보다 나 자신을 더 믿게 됐다. 연골은 사라졌지만, 의지와 습관은 남았다.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