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농담처럼 다가와 진담처럼 남는다
여의도 KBS 5층 라디오 스튜디오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전쟁 영화에 나오는 비상상황실 방폭 도어 같은 두꺼운 문을 지나서 안으로 들어간다. 예전엔 정복을 입은 경비원이 앉아서 들어가는 사람들의 이름을 공책에 적기도 했는데 아무리 봐도 진짜 기록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냥 끄적거리는 수준이었다. 그곳에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각종 방송장비에서 나는 것인지, 수십 년간 축적된 말들의 잔향인지 분간할 수 없지만, 나는 그 공간을 좋아했다. 대기실에 마주 보고 있는 소파를 중심으로 양 옆에 하나 씩 커다란 유리창으로 내부가 보이는 스튜디오가 있다. 왼쪽일까? 오늘쪽일까? 오늘은 생방이니 아마도 왼쪽 스튜디오 일 것이다. 이곳에서 처음 방송을 한 것이 1999년이었다.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의 게스트. 그때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작가가 인쇄해준 원고를 들고 스튜디오에 들어설 때마다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왼손엔 아이폰이 아니라 녹색 액정 SKY핸드폰이 들려 있는 듯했다.
2017년, 출연을 마치고 나가는 길. 담당 PD가 말을 건넸다. “가을 개편 때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연락이 갈지도 몰라요.”
툭 가볍게 던진 말이었지만, 내 귓가엔 천둥처럼 울렸다. 데드리프트를 할 때처럼 어깨가 살짝 펴지고, 근육실패점이 온 것도 아닌데 몸 곳곳에 젖산이 차는 것 같았고 목이 말랐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천천히 그 말을 되새겼다. 가을 개편,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연락. 다정하고 따뜻한 말들이다. 방송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연락’이란 단어가 떠오를 때 쯤이면 사랑하는 여인과 한 침대에 있는 것보다 더 다정함이 느껴질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나 혼자 밖에 없었지만 이미 마음 속엔 그 여인과 손을 살포시 잡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설쳤다. 마음속엔 이미 피디,작가,보조 작가와 함께 있는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아이템 구상을 하다가 내가 눈여겨 본 네이버 기사 링크를 던졌더니 금새 반응이 왔다. 미리 구성해 본 오프닝 멘트가 떠돌았고, 침대 위 몸은 방송 대본에 펜으로 구간 표시를 하는 짓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김남훈의 시사 파이팅(가제) 오늘 다룰 이슈는……” 오프닝 멘트를 치다가 잠에서 깼다.
하지만 가을은 지나갔고, 봄도 지나갔으며, 다시 가을이 돌아왔다. 그 어떤 연락도 없었다. 내 전화는 조용했고, 문자 메시지도 적적했으며 메일함은 냉정했다. 내 손을 잡아주던 그 여인은 어디갔나. 환상이었을까. 그 PD의 말은 그저 지나가는 농담이었을까.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이런 말로 농담을 하는 경우는 없다. 게다가 막내 피디도 아니고 꽤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었다. 아니면 현실 속 사정이 바뀐 것일까. 어른들의 사정이 있는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어간 방송국 홈페이지에서 내가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던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다른 분으로 바뀐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진행자로 입봉하면서 말쑥하게 빼입은 양복차림 사진 속 치아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난 그 치아에 물린 듯 가슴에 작은 움푹 파인 자국만이 희미하게 남았다.
그러던 2018년 초, 이번엔 WWE 해설을 하러 방송국에 갔다. 쉬는 시간에 제작 피디가 말을 꺼냈다. “WWE에서 연락 안갔어요? 메일 보냈다고 하던데”
그 말은 더 묘했다. 어떤 근거도, 확신도 없어 보였다. “뭐 때문이요?” “글쎄요, 저도 몰라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아주 잠깐 숨이 멎는 기분을 느꼈다. 머릿속엔 어처구니없는 그림들이 그려졌다. 1985년 미군방송 AFKN 으로 WWF(WWE의 옛이름)를 보며 몸을 부르르 떨던 국민학생으로 되돌아갔다. 혹시 출전 요청? 설마? 젼혀 현실성이 없지. 하지만 무슨 이벤트 매치 같은 걸 기획하는게 아닐까? 아니면 아시아 마케팅의 일환으로 WWE가 한국에서 경기를 연다면? 그때 링 위에 나를 올리는 그림? 말도 안 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상상 속에서 나는 꽤나 멋지게 싸우고 있었다. 훠암스매쉬! 엘보우! 스피어! 원투! 탄자니아 백드롭!
해설석이 아니라 링 위. 마이크가 아니라 해머링!
며칠 뒤 도착한 메일은 실망과 웃음을 동시에 안겨줬다. “셔츠를 보내드리려 합니다. 사이즈를 알려주세요.”
나는 답장을 보냈다. "2XL, not Asian size. Americal 2XL Please"
그게 전부였다. 나는 허탈하게 웃었고, 그때 받은 폴로셔츠는 지금도 요긴하게 쓰고 있다. 강연장이나 행사장에서 내 귀중한 소중한 경력을 증명하는 족보처럼 말이다.
꿈에서 깨어나 내 손을 잡아주던 그녀가 부재하다는 걸 느꼈던 순간,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때의 기분은 전적으로 쓰디쓴 것만은 아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진심으로 기뻤고, 미래를 기대했고, 스스로를 상상 속에서 빛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자가발전하는 이런 기대는 헛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기대 속에 머무는 시간이 좋았다. 결과보다 그 사이의 시간이, 실현보다 상상의 감정이 내겐 오래 남았다. 마치 산책로에 핀 들꽃처럼, 누군가 일부로 줍지 않아도 그 순간 스스로 피어나는 기쁨 같은 것.
누군가는 말한다. 괜한 기대는 상처만 남길 뿐이라고. 나는 그 말에 조심스레 고개를 젓는다. 상처는 남을지언정, 그 짧은 기쁨은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려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맛. 달기도 하고 짜기도 하며 때론 시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 게다가 무해하다. 그 누군가에게도 원치 않는 부담을 지우지 아니한다.
희망이란 때때로 시시껄렁한 농담처럼 찾아와, 눅진눅진 진담처럼 남는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 삶은 조금은 살 만해진다.
- 인간어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