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 is f*** small."
현재 미국에 체류하면서 격투기 관련 프모션사업을 하고 있는 어느 페친이 올린 포스팅의 첫 문장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오늘따라 자기 삶을 반추하는 중년 페친들의 글이 많이 보인다. 지난 주말 출장으로 일본 오사카에 다녀왔다. 일본은 일 년에 수 차례 가지만 오사카는 실로 20년 만이다.
20년 전의 나.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절망이, 갖고 있는 것보단 공허가 가득 채우고 있던 삶이었다. 술과 담배를 어디까지 몸 안에 흡입시킬 수 있는 생체실험을 하는 것인 양 마셔대고 빨아댔고 무의미한 무력충돌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땐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겠다고 마음먹어야만 했다. 그때 사업가 B 씨의 제안으로, 일본 오사카에 가게 되었다.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들었지만 실상은 그의 말과는 달랐고 난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인디언 섬에 갇힌 사립탐정처럼 여기저기 눈을 부라리며 나 자신을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움찔거렸다. 일본어도 전혀 몰랐기에 여기가 어딘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감각으로 짐작하고 무모함으로 돌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영화 마션의 맷 데이먼처럼 마치 불시착한 우주비행사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만 했다. 특히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20년이 지났다. 사진 없는 일본 술집 메뉴판을 읽고 주문할 수 있는 일본어 능력과 구글맵 덕분에 아무런 불편함 없이 오사카를 주유할 수 있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좀 남았기에 시내 쪽으로 들어가서 모터사이클 용품에서 헬멧과 함께 팀원들에게 선물할 헬멧 실드 와이퍼를 샀다. 20년 전의 기억이 있어 점원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그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때 만났을지도 모른다며 서로 너스레를 떨었고 '그럼 20년 뒤에 다시 만납시다' 라며 매장 문을 열고 나왔다.
청춘이 갖고 있는 필터링 작용은 강력하다. 대기업 부장님의 컨펌을 거친 '청춘을 소재로 한 광고'-비를 피해 길을 막 뛰어가던 남녀 군상들이 아예 피하는 것을 포기하고 길거리에서 미친 듯 춤을 추면서 즉석 난타공연까지 감행, 지나가던 버스 안 승객들이 환호-처럼 그렇게 열정적이며 희망에 가득 찼을까? 아니다. 절대 그럴 리 없다.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때도 절망과 염세의 늪에 빠져서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을 것이고 힘들었고 도망가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아직 죽지 않은 자들끼리 생존에 감사해하며 '후후 그땐 그랬지'리며 상호 확증에 따른 보정을 한 것뿐이다.
방랑과 투쟁. 그런 삶을 살 것이라고 막연히 상상했었다. 20대의 김남훈은 40대의 김남훈은 그렇게 살 거라고 생각했었다. 미국 드라마 '레니게이드'의 로렌조 라마스처럼 롱코트에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어떤 사건에 항상 휘말릴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기대했다. 드래곤 볼 손오공이 시간의 방에서 수련을 통해 극강의 힘을 얻었던 것처럼, 무자 수행을 통해서 잘 제련된 신체를 가질 거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싸운다.
그런 상상을 갖고 있던 때로부터 수년 후 프로레슬링을 접하면서 정말 이제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링 안의 박진의 삶에 취하면 취할수록 내 삶은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졌고 하반신이 마비되어 냉동참치처럼 누워있어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이 생태계에서 난 가장 약한 사람이었다. '프로스포츠'의 세계에선 스포츠보다 프로가 어두에 있다. 돈이 먼저다. 난 돈이 없었고 돈을 벌게 해줄 만한 선수도 아니었다.
그래. 멕시코로 가자. 멕시코의 경기장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1층부터 3층까지는 시합장, 그 위로 층층이 훈련장이 있는데 실력 있는 선수만이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드래곤볼의 에스칼레이션 대진 시스템의 완성이자 이소룡 사망유희의 현실적 오마주 아닌가. 멕시코로 가서 일단 한인회장을 찾아가자. 그리고 접시닦이든 뭐든 간에 일자를 얼도 인근에 비바람 피할 곳이면 다 좋으니 창고 같은 방이라도 구하자. 그리고 시합을 뛰는 거다. 아마 처음엔 엄청나게 고생하겠지. 죽고 싶을 거야. 하지만 사망탑 맨 꼭대기에서 카림 압둘 자바를 해치운 이소룡처럼, 늠름하고 당당해진 모습으로 언젠가 '김포공항'으로 귀국할 거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매우 합리적인 세상이 왔기 때문이다.
IMF가 터졌고 세상은 매우 합리적으로 바뀌었다. 정부는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합리적인 결정을 했고 기업들은 경비절감을 위해서 사람들을 해고했다. 역시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사람들은, 남자든 여자든 늙은이든 젊은이든 가릴 것 없이 모두 생존을 위해서 전력질주했다. 이전 한국사회는 아주 넓은 트랙에서 시계방향, 시계 반대방향으로 뛰거나 걷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이제 모든 한 방향으로 그리고 100미터 단거리를 목표로 필사적으로 뛴다. 이런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못한 이들은 여의도에서 한강에서 봄날의 벚꽃처럼 떨어져 내렸다. 나도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고 또 그렇게 했다.
지난주 오사카 출장을 통해서 그간 20년 동안 해왔던 합리적 선택의 시발점이 어디였는지 불현듯 떠올랐다. 지금도 난 매우 합리적이다. 아니 더 합리적이다. 김생민의 영수증을 듣고 스튜핏 한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 스마트폰 다회선을 정리하기로 했다. 각 카드사에 전화를 하고 금융기관은 직접 방문해서 번호를 하나로 모았다. 곧 회선 하나는 죽인다. 가계부를 한동안 쓰지 않았는데 다시 쓰기로 했다. 일단 십여 일 이전부터 정리해나가기로 했다. 이런 행동들이 '쪼잔하다' 뭐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네이비씰 특수부대원들이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침대 시트를 잘 정돈하는 것이다. 일상을 훌륭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남자는 만재흘수선까지 잠겨버린 화물선 같은 것이다. 덩치만 크고 요란할 뿐 컨트롤도 되지 않고 속도도 느리다.
다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해두자. 20대의 내가 40대의 나에게 어떤 열망을 가졌던 것처럼, 지금은 나는 20년 뒤의 나에게 어떤 열망을 갖고 있을을까? 아니 그런 게 없이 살았다고? 정말인가? 열망이 없는 사내의 삶이란 너무 덧없는 것. 그렇게 살았다는 참말인가. 어허. 이거 참 난리 났네.
- 인간어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