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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훈 해설위원 Sep 06. 2017

나보다 쎈 놈과 싸우는 법  2.0

어차피 쓸 주먹이라면

"에이 씨발 한놈만 걸려라" 


주말의 유흥가 뒷골목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사내들의 울부짖음입니다. 정작 혼자인 제가 옆으로 가도 그들은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 제가 엄청난 싸움꾼은 아니지만 아마 그 사내들도 저 같은 프로레슬러는 부담스럽겠지요. 즉 그들은 "한놈만 걸려라"라고 크게 소리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이 안심하고 분풀이를 할 수 있는 아주 약한 한 사람만 걸려라 라고 소리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인간 아니 인간 수컷의 본능입니다. 자연의 세계에서 인간만이 수컷이 사냥을 합니다. 자신보다 작거나 만만한 대상을 포획하는 것에 실패하면 단순히 먹을거리를 놓칠 뿐이지만 커다란 육식동물 사냥에 실패하면 자신들이 단백질 공급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금 전까지 말아먹은 쏘맥 덕분에 뇌의 판단능력이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생존을 위한 회로는 대개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물론 저는 저에게 시비 거는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린 이 한놈만 걸려라 라고 하는 사람들을 종종 아니 너무 자주 봅니다. 포털사이트, SNS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하나 꼬투리가 잡히면 시쳇말로 가루가 되도록 "까입니다" 여기서도 중력의 법칙이 작용합니다. 정치인보다는 연예인, 토착 한국인보다는 이주 한국인, 남자보다는 여자 이렇게 힘의 서열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주기적으로 패륜녀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이미 공공재에 가깝습니다. 무슨 무슨 패륜녀라는 자극적인 제목은 실력 없는 인터넷 기자의 허술한 문장을 감춰주고 클릭수를 높여 회사에 수익을 가져다줍니다. 포털사이트는 광고단가가 올라갑니다. 네티즌들은 그녀의 신상을 터는 집단 사냥을 통해서 희열을 느끼고 악플을 달며 하루 남짓 살아갈 정의감을 충족합니다. 저는 이런 소위 악플러들이 처음부터 비뚤어진 인성을 가진 사람이거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런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들도 그들 삶에 있어서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그것을 풀 수 있는 어떤 손쉬운 수단을 찾고 있었겠지요. 수평 폭력이란 말이 있습니다. 자신보다 강한 존재에게 폭력과 억압을 받으면 그것을 돌려주질 못하고 주변의 인물 또는 아주 만만해 보이는 사람에게 풀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과장님은 부장님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여자 신입사원에 풉니다. 만만하니까요.  


찌질합니다. 다른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 왜 찌질한지 알아볼까요? 그건 바로 두렵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두렵기 때문에 스트레스의 근원지에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다른 사람에게 풀어버리는 것입니다. 권력과 젠더 또는 빈부. 여러 가지 요소로 서열을 나누고 위에서 아래로 쏟아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찌질한 세상은 찌질한 사람들이 만나고 융합하며 번성하며 만든 것입니다.


이 찌질함은 상대가 너무 강할 때 나타나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린 그럼 이렇게 반응하며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요? 오직 생존을 위해서 약한 사람에게 분풀이나 하면서 사는 길 밖에 없는 것일까요. 


나보다 강한 상대와 싸우는 방법은 없을까요. 아니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주먹 한번 휘두르는 방법 말입니다. 있습니다. 있어요. 있습니다.


첫 번째 팔을 뻗어보세요. 그리고 주먹을 쥡니다. 당신의 몸에서 당신의 주먹 끝까지의 거리가 바로 당신의 공격 가능 거리 즉 사정거리입니다. 이 사정거리를 아는 것이 모든 싸움이 시작입니다. 꼭 이겨야겠다는 결기에 휩싸인 사람은 그저 주먹을 마구 휘두를 뿐 정작 상대방을 맞추지는 못합니다. 본인이 맞닥뜨린 문제가 무엇이며 내가 그것을 이겨낼 만한 무기가 어떤 것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두 번째 목표를 맞추기 위해서 자세를 유지한 채 움직입니다. 양 손 가드를 올려 안면을 단단히 방어하고 다리는 스텝을 밟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주먹 끝에 체중이 실린 강펀치를 쏘기 위해서는 자세와 스텝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고정된 샌드백이나 두들길 수 있을 뿐 살아 움직이는 목표를 잡을 수 없습니다. 자신만의 태도를 유지한 채 계속 그 문제를 쫓아가는 겁니다. 링이나 현실세계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대동소이합니다.


쫄지 않고 싸우려면? 자신의 강점을 파악하고 자신만의 태도를 유지한 채 끊임없이 이슈를 향해서 가는 겁니다.
쉽죠? 그런데 또 쉬운 건 아닙니다. 이건 꾸준한 연습과 성찰을 필요로 합니다. 


먼저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세요. 나 자신을 모르는데 어떻게 나보다 강한 쎈 놈과 싸운단 말입니까. 나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는가. 나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있는가. 어떤 문제에 대한 나의 경향성 즉 정치적 성향은 어떠한가.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유지해야 내가 정한 원칙과 부합하는가. 난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사람인가. 통장 잔고 외에 내가 소중히 지켜야 할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이런 작업이 쉽지 않을 겁니다. 본질에 대한 물음에 답변을 하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처세술과 자기계발서로 감춰진 힐링이란 단어로 적당히 얼버무린 것이 아닌 진짜 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진짜 나 자신을 알아가는 작업은 뜨거운 양은 냄비 손잡이를 맨 손으로 잡는 것처럼 고통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멈추지 말고 계속 나가야 합니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다보면 아주 희미하게나마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자 이제 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려봅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으니 자신보다 약한 사람, 억울한 사람, 짓밟힌 사람들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그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보세요. 호모사피엔스 이래로 현생 인류의 선조들이 물려준 약육강식이란 생존본능을 던져버릴 기회가 올 겁니다. 


가드를 올리고 주먹을 휘두르단 말입니다. 스텝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찌질해지지 않을 수 있어요. 우리 폼나게 싸우며 폼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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