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3
"처음 만난 그 순간이 좋았지."
총무인 상근형이 자꾸 그 노래를 부른다. 아니 그 노래를 중얼거린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도 거의 돌아가고 마침 나랑 그랑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에 서 있다. 나의 귀가 솔깃한다. 혹시 상근형이 그에게서 어떤 말이라도 들은 걸까? 나를 처음 만난 순간이 좋았다는 모 그런 말? 하하 푸하하하 망상은 해수욕장이라더니 나의 상상은 바다만큼이나 넓게 퍼져간다. 아무리 그가 그랬겠냐. 그래도 생각은 맘껏 해볼 수 있는 거니까. 괜히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막 좋아지며 음하하하 절로 웃음이 나온다.
처음 느낀 그 눈길이 좋았지
처음 닿은 그 손길이 좋았지
처음 받은 그 마음이 너무 좋았지
캬~ 노래하고는. 하하. 상근형이 저렇게 노래를 잘 불렀던가. 웅얼웅얼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가 가사는 어찌 그리 정확히 전달되는지. 아, 너무도 멋진 가사 아닌가. 상상만으로도 오홋 그와 함께 하는 상상만으로도 나의 마음은 두둥실 두리둥실 하늘로 떠간다. 오호호호호호
언제나 만나서는 즐거웠지
언제나 다정하게 속삭였지
언제나 둘이서만 걸었지
하루하루 사랑을 키워 갔었지
야유회다. 밤섬 야유회. 선배 언니들이 회장인 그를 잘 챙긴다. 젓가락도 벗겨서 쥐어주고 이것저것 준비한 먹거리들을 그의 입에 넣어 준다. 그는 갑자기 아가가 된 듯 그걸 다 받아먹는다. 다른 선배님들의 눈에도 그가 매력적인 걸까? 눈웃음 가득한 그 특유의 미소. 가끔 나를 향하는 그 미소는 쿵! 쿵! 쿵! 나의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그 귀한 미소를 설마 아무에게나 날리는 건 아니겠지?
밥을 먹을 때 그는 어느새 내 곁에 있다. 오잉? 우연? 그가 일부러? 잘 모르겠지만 어쩌다 의식하면 그가 항상 내 곁에 있다. 선배 언니들이 챙겨주는 대로 나도 해보려 하지만 잘 안된다. 그가 곁에 있다는 것을 의식한 순간 그냥 뻣뻣해진다. 무언가 자꾸 어긋나는 느낌이다. 드러내지 않길 잘했다. 속으로만 좋아하는 건 얼마나 편한가. 편하긴? 속으로만 이면서도 이리 뻣뻣한데 어쩌려고? 그런데 그도 나를 신경 쓰고 있을까? 일부러 내 옆자리 오는 건 아닐까?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가 무어 잘난 구석이 있다고 그가 좋아하겠는가. 우연이야 우연. 그가 내 옆에 있는 것은.
"새로 합류한 애 있다며?"
"네."
"그런데 왜 야유회 안 와?"
"아마 새로 와서 쑥스러워서일 거예요."
은애는 야유회에 오지 않았다. 그 도도한 애가 이런 야유회 같은 데 올 리가 없다. 선배 언니들에게 미움을 받건 말건 내버려 두지 난 또 웬 오지랖일까. 그녀를 두둔하기 바쁘다. 나는 이런 행사에 온다. 총무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회장단을 돕는 일이니까. 그녀는 그런 건 안중에 없는 가보다. 이런데 함께 하지 않는다. 과 행사 때 노상 빠지는 그녀를 봐서 잘 안다. 그래도 남학생들은 그녀를 좋아한다. 아니, 어쩜 그녀를 쉽게 볼 수 없으니 더 그녀의 가치가 올라가는지도 모른다. 난 이런저런 행사 다 참여한다. 참석 여부 말도 없이 관심 없는 듯 빠져버리는 그런 건 난 절대 못한다. 그나저나 난 왜 자꾸 그녀를 신경 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