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2
"여기야? 네가 자랑하던 서클?"
선배가 꼭 좀 와달라 해서 와봤다는 그녀가 착 눈을 내리 깐다. 그리 자랑하더니 꼴랑 여기였어? 하는 느낌이랄까. 뭬라. 꼭 좀 와달라 해서? 그러니까 우리의 총무님께서 그렇게 사정했다고? 우쒸. 모야. 여기 이렇게 엉망이어도 되는 거야? 하긴 그녀는 우리 학교의 그 유명한 영어연극 출신이다. 그것도 꽤 비중 있는 역으로. 영어도 잘하고. 성량도 풍부하고 그래 딱이다. 그녀의 미모는 단연 빛나고 있다. 나의 그가 인사한다. 나의 그? 풋.
"아, 아주 잘 오셨어요. 정말 그 역에 딱이시네요."
뭬라. 딱이긴 무엇이 딱이야. 그렇게 사람이 없단 말인가. 그러나 사실 그녀는 빛나고 있다. 주인공이라도 꿰찰 기세다. 그의 시선이 자꾸 그에게 간다. 아니 그럴 것이다. 그럼. 그녀가 얼마나 예쁜데. 중요한 조연 자리를 놓고 알맞은 인물이 없어 임원진이 백방으로 찾아 헤맨 것은 나도 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은애라니. 그렇게 인물이 없단 말인가. 특채랄까. 이 서클에 들어오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그 네 번의 준비모임도 없이 5분 스피치도 없이 그대로 이 서클 멤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이 서클의 백미인 영어연극의 주요 자리를 꿰차며 말이다. 음. 이건 불공평해. 난 그리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우리 과 네 명이 중간중간 강의 없는 시간에 죽치고 앉아 수다 떠는 그 학교 앞 다방에서 아주 조금 이야기했을 뿐이다. 영국 대사관에서 한다는 것과 그곳 들어가는 순간 한국어를 써선 안된다는 것과 회장이 꽤 매력적이라는 것 정도.
'이 회장이 그 회장?'
하하 그녀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내게 신호한다. 그래 그래 맞아. 그래 바로 그 회장이야. 나도 눈으로 신호한다. 남성이라면 모두 그녀에게 폭 빠질 것이다. 저렇게 예쁜데. 저렇게 날씬한데. 저렇게 영어를 잘하는데. 이제 그의 눈길이 내게 올 일은 없으리라. 저 뛰어난 애를 두고 내게 관심을 가질 이유는 절대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녀는 참 매력적이다. 오늘도 바로 그 머리. 아무렇게나 틀어 올린 듯 위로 뽕긋 솟고 귀 옆으로 살짝 흘러내린 일부가 너무도 매력적인 그 긴 머리. 망했다. 난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