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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r 02. 2020

한밤중 수제비

코로나 19로 집에만 콕 박혀있다 보니

미쳤다 정말. 미쳤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 지금이 몇 시냐. 밤 열두 시가 넘어가고 있는데 수제비라니. 남편도 나도 참! 핑계는 있다. 새벽 두시반까지 수제비라도 끓여먹으며 기다려 파리에 있는 작은 아들과 통화하자고. 시차가 애매해 그 애가 퇴근하는 한가한 통화 시간은 새벽 두 시 반이어야 한다. 그래서 가끔 우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 두시반까지 기다려 통화하곤 하는데 그런데 아뿔싸! 코로나 19로 하도 집에만 콕 박혀있다 보니 우리는 오늘이 휴일인지 평일인지조차 헷갈린 것이다. 오늘은 굳이 그 애의 퇴근시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일요일이었던 것이다. 


집에 있기보다는 주로 밖에 나가기를 좋아하고 약속도 많고 모임도 많고 그리고도 남는 날엔 하다못해 집 앞 카페라도 가서 글을 쓰며 집보다는 바깥 생활을 즐기던 내가 콕 집에만 박혀있다. 집을 워낙 좋아하는 남편이야 뭐 애초 즐기던 대로 집에서의 생활을 즐기면 되니 그렇다 쳐도 나는 사실 꼬박 보름 이상 집에만 있는 게 여간 큰일이 아니다. 입으로 수다를 떨어야 하는데 그리고 그 수다의 참맛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푸하하하 그래? 맞아 우히히히 끝없이 떠들어대는 데 있으니 전화로 톡으로 메꿔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도 나름 잘 지내고 있다. 거실을 중심으로 난 안방에 작은 테이블을 가져다 놓고 마치 집 앞 카페 인양 노트북을 두들기며 브런치와 함께 하고 남편은 자기의 책방에서 컴퓨터 게임도 하면서 책을 읽고 있다. 둘 다 문은 활짝 열어놓고 거실 커다란 TV는 틀어놓는다. 재난상황에서 뉴스를 멀리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우리 집은 모두 각자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기 방에서 책과 씨름을. 나는 나대로 안방에서 노트북과 씨름을. TV는 TV대로 거실에서 각종 뉴스를.  


왜 수제비냐. 한밤중 라면이 제격이지만 무언가 속이 불편하다. 마침 냉장고에는 멸치, 다시마, 북어채, 표고버섯, 무, 양파, 땡고추 등등 물에 들어갈 수 있는 온갖 것을 커다란 냄비에 넣고 부글부글 끓여 푹 우려낸 다시물이 있다. 그리고 오늘 밤을 예견한 걸까? 문득 낮에 나는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냉동실의 밀가루를 꺼내 스테인리스 볼에 넣고 소금도 약간 넣고 물을 부은 후 과감히 양 손을 푹 밀가루 속으로 쑤셔 넣어 주물럭주물럭 반죽을 했던 것이다. 손에 안 붙게 식용유를 발라가면서. 그렇게 씩씩하게 만들어 비닐봉지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시라도 수제비가 먹고 싶다 하면 다시물 있겠다 뚝뚝 떼어 만들어주려고. 그래서 난 '무언가 출출한데... 라면?' 눈짓을 보내는 남편에게 감히 수제비를 제안한 것이다. 만들어 놓은 다시물에 감자, 당근, 양파를 썰어 넣고 끓인다. 뽀골뽀골 신나게 끓고 있는 국물을 보며 남편을 부른다.  


여보~ 이리 와. 같이 떼어 넣자. 


수제비는 뭐니 뭐니 해도 요렇게 같이 떼어 넣는 맛 아닐까. 퐁당퐁당. 밤인데 조금만 하자고 해서 밀가루 반죽 반은 뚝 떼어 냉장고에 다시 들여보내고 꼭 한 줌씩만 들고 냄비에 떼어 넣는다. 팔팔 끓는 국물 속에 퐁당퐁당. 앗. 좀 살살. 뜨거운 물 튀기잖아. 좀 더 얇게. 그렇게 굵게 떼면 어떡해. 잔소리가 오가며 시끌벅적 우리의 수제비 작업이 시작된다. 푸하하하 한밤의 수제비 향연? 엄마 말 안 듣고 한밤중 나대는 불량 청소년 된 느낌이랄까. 푸하하하  


수제비는 고추장을 풀어 먹어야 제 격. 고추장을 덜어 놓고 수제비 한 개씩을 고추장에 찍어먹을 작은 접시도 놓고. 김장 김치도 놓고. 팔팔 끊는 수제비를 한 사발씩 담아 놓고 "자 됐지?" 다 차려진 작은 상을 양 쪽에서 맞잡고 거실로 온다. 계속 뉴스를 토해내고 있는 TV를 과감히 드라마 채널로 옮긴다. 밥 먹을 때만은 드라마 보기. 따로 돈을 지불하지 않아 본방 아니면 몇 주는 기다려야 공짜로 볼 수 있다. 그중 우리가 즐겨 보는 검사 내전, 스토브리그, 낭만 닥터가 아슬아슬 마지막 편을 향해 달리고 있다. 아, 너무 재밌어. 


스토브리그 마지막 편을 보려 하니 돈을 내야 한다. 음. 다음으로 넘겨. 한 주 더 기다려야 공짜가 되나 보다. 검사 내전. 오홋. 14회를 공짜로 볼 수 있네. 그리고 낭만 닥터까지. 새벽 두 시가 넘어가고 있다. 이미 수제비를 한가득 배가 터지도록 먹었으니, 아 왜 이렇게 맛있냐. 정말 맛있네. 그런데 여보 우리 지금 모하는 거지? 망가진 김에 마저 망가지자. 그래! 남편은 나름 바리스터인 양 카페 라테와 라이트 커피를 절묘하게 섞어 환상의 믹스커피를 만들어 대령한다. 음하하하  


배는 남산만 하고 거기다 커피까지. 시계는 새벽 세시를 향해가고 있다. 우리 이래도 될까? 어때~ 내일 늦게 까지 자면 되지. 파리의 아들은 몇 번 시도해보지만 휴일을 친구들과 보내는지 보이스톡에 응답이 없다. 종종 친구들과 여행 중이라며 휴일 보이스톡에 답이 없지만 오늘 한밤중 수제비 파티에 우리 아들의 대화가 곁들여졌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아쉽다. 그래도 집에만 있으며 그날이 그날 똑같은 날들 중 하나가 특별해졌다. 에잇. 한밤중 수제비가 분명 건강에는 안 좋겠지만 코로나 19를 빵! 한 방에 때려눕힐 기세라도 얻은 듯싶다. 음하하하 그래. 이 또한 지나가리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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