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뜰 Mar 07. 2020

서울 덕수국민학교 동창

1960년대 광화문을 주름잡던


나에게는 카톡으로 안부를 나누는 네 명의 서울 덕수국민학교 동창이 있다. 시애틀에 살며 사진을 잘 찍는 H, 아르헨티나에 살며 사업을 잘하는 B, 시카고에 살며 글을 잘 쓰는 S, 서울에 살며 산을 잘 타는 J 그리고 나 Y. 이렇게 다섯 명이 있는 카톡방으로 가끔 서로 안부 묻는 게 전부다. 아르헨티나의 B가 동영상을 올리며 한가하던 방에 모처럼 수다가 쏟아진다. 입석표를 산 할아버지가 버스를 탔는데 젊은 여자도 남학생도 모두 외면하는데 어느 아가씨가 자리를 양보한다. 할아버지가 사양하니 5시간만 가면 된다며 괜찮다 한다. 자기도 입석표니 미안해하지 말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아가씨 입석표 아니었고 감동한 티켓 점표원이 뒤의 빈자리를 안내하자 헉 선반 위에서 목발을 꺼내는 게 아닌가. 결국 멀쩡한 모두가 외면할 때 장애인 아가씨가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감동의 짧은 만화였다. 그러면서 시작된 대화.



B야 자는척하던 젊은 친구 40년 전 너 닮은 거 같다. S야 잘 지내니? 오해 말아라. 나는 예부터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도 나보다 약한 사람들에게는 자리 양보 서슴지 않는다. 머리 벗어진 영감은 요즘 내 모습. 난 머리숱이 많이 줄었지만 아직 벗겨지진 않았다. 벗겨진 것은 너와 H만. 그럼 내가 차장 아저씨 할게. 자는척하던 노랑머리는 Y가 맡아라. 우리 중학교 땐 노인 비슷한 사람만 타도 용수철처럼 튕기듯 일어났는데. 싫다는 여학생 가방도 반강제적으로 받아주고. 나도 노인들이나 아이업은 아줌마한테 자리 양보 잘했었다.


H는 나랑 중학교 같이 다녀서 잘 알 거야. 버스 두 번 타고 연신내까지 가는데 선일여중 예일여중애들도 탔지.  152, 153, 185번 버스들. 연신내 시장도 있었고 영화관도 있어 단체관람도 가끔 갔다. 75번 신진운수 버스가 비교적 새 버스. 158번이 젤 후져서 일부러 보내고 75번 올 때까지 기다리다 탄 적도. 재수 더럽게 없는 H와 나. 추첨 운 요맹큼도 없이 최악의 2번 대성중. 신생학교라 우리가 2회 졸업생. 입학 당시는 교문도 없고 기둥 두 개만 있었어. 광화문에서 그 먼데까지 배정받았어? 정말 최악이었구나. 난 배화여중.


배화여중이라고? 사직공원 옆이 등굣길이지? 쌍용제지 다닐 때 생리대 샘플 나눠주러 갔었어. 우리 중학교 때 그런 게 나오기 시작한 거 같은데 이상해서 많이들 안 썼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헝겊으로 된 것을 매번 빨아서 썼지. 아마 제대로 된 건 고등학교 때부터나 나왔을 거야. 유한 킴벌리에서 나오던 코텍스 뉴푸리덤. 영진약품에서 나오던 소피아 푸리. 하하 어떻게 남자가 그런 일을 했을까. 푸하하하


예전에 코로나 택시 있었는데 요즘 같으면 아무도 안 탈것 같다. 하하 그렇지 코로나 바이러스로 난리인데 누가 코로나에 타겠냐. 시발택시도 기억나. 코로나 택시는 좀 큰 거였던 기억. 맞지? 시발택시 다음에 새나라 택시 다음이 코로나 택시. 쓸데없는 기억력. 시발은 지프차였나? 코로나는 소형 세단. 시발택시는 미군찦에 뚜껑만 씌운 거. 기본요금 20원. S는 기억력 대단하다. 새나라 때부터 30원. 졌다. 500미터마다 5원씩 올라. 점점. 정말 쓸데없는걸 많이 기억하고 있네. 하하 중학교 3학년 때 짜장면값 50원. 중3 때 고교입시 앞두고 학원 다니며 짜장면 많이 먹었다. 우리가 고등학교 시험 쳐 들어가는 마지막 세대가 될 줄이야. 회사 다닐 때 짜장면값 500원. 이젠 S가 무서워진다. 하하


중1 때 염천교 구둣방들 많았는데 그사이에 20원짜리 짜장면과 가락국수만 파는 곳이 있었다. 양이 얼마나 많은지 푸짐하게 퍼주는 그 국숫집에 자주 갔다. 서울역 지하도 옆엔 양푼에 떡 파는 아줌마들 많았는데 인절미 개피떡이 5개 10원. 쪼그려 앉아 설탕가루 찍어먹으면 진짜 꿀맛. 먹다 보면 학생은 나 혼자고 대개 서울역 지게꾼 아저씨들. 혼잡한 틈을 타서 6개 먹고 다섯 개 먹은 척 10원 내고 토끼 곤했지.



하하 그렇게 한바탕 수다를 떨고 한밤중인 애는 잠을 자러, 아침인 애는 일하러, 대낮인 애는 하던 일 속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1960년대 광화문 덕수 국민학교를 함께 다녔기에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를 그래. 맞아. 그랬지. 맞장구치며 생생하게 추억할 수 있다. 오늘도 잠시 타임머신 타고 뿅~ 그 옛날 어릴 때로 갔다 온다. 그러고 나면 왠지 모를 힘이 팡팡 솟는다. 자. 오늘 하루도 멋지게~ 파이팅!


1969년 졸업앨범 찍던 날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한 반에 백명씩 10반까지 있던 6학년 때. 저학년 땐 학생이 너무 많아 3부제 수업까지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밤중 수제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