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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r 12. 2020

코로나 19로 완벽한 폐인이

그렇다. 코로나 19로 모든 모임이 취소되고 집에만 있는 요즘 완벽한 폐인이 되어가고 있는 듯싶다. 특히 오늘 남편과 나는 오로지 낮에 잠깐 우리 집 앞 수변공원을 돌고 온 것 빼고는 주구장창 TV 앞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바로 '이태원 클라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어젯밤 멀리 파리에서 근무 중인 작은 아들과의 통화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 재택근무는 아니지만 조만간에 무슨 조치가 나올 것 같다는 둥 서서히 마스크 쓴 사람이 보인다는 둥 중국사람들이 도리를 해가서 마스크는 없다는 둥 그래도 엄마 아빠 코로나 속에 있으면서 파리의 나를 걱정할 타임은 아닌 것 같다는 둥 안부가 이어지다가 결정적인 것. 그거 정말 재밌던데요 엄마 아빠가 보라고 한 '이태원 클라쓰' 단숨에 십이 회인가까지 봤어요. 아, 그래? 우리는 돈 내라 해서 못 보고 있어. 그거 넷플릭스로 보면 볼 수 있는데. 그래? 거기서 드라마도? 옛날에 넷플릭스 가입했다며 우리에게도 같이 볼 수 있게 해 주어 한동안 셜록홈스를 신나게 봤었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그 또한 완전 우리에게서 잊혔던 것이다. TV 다시 보기에서 채널 더 보는 데 따른 비용을 내지 않고 공짜로 될 때를 기다려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 말 대로 노트북으로 해서 넷플릭스 들어가니 와우 돈을 내야만 볼 수 있었던 것이 앗, 그대로 다 볼 수 있네. 와우. 엄마 그거 TV로 연결해서 보세요. 오홋. 맞다. 그런 기기를 잘 만지는 남편이 뚝딱 TV로 연결한다. 그래서 몽땅 볼 수 있게 된 '이태원 클라쓰'. 하하 우리는 오늘 작정하고 TV 앞에 눈을 고정. 못 본 그동안의 프로를 깡그리 본다. 다 보고 나니 지금 밤 12시다. 하이고 목도 뻐근하고 눈도 침침하고 허리도 쿡쿡 온몸이 난리다. 점점 쏘파 속으로 파고들어가 리모컨으로만 까딱까딱. 가위바위보! 진 사람이 커피 타 오기. 사과 가져오기. 누룽지 가져오기. 게으름에 게으름. 그렇게 마지막 방송된 것까지 다 보고 나니 정말 정신이 얼얼이다. 


문제는 이럴 수도 있는데 이렇게 TV에 고정하고 나면 난 무언가 폐인이 된 것 같은 자신에 화가 나고 낭비한 시간이 아깝고 그렇게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아무렇지 않다. 이렇게 비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도 괜찮아? 무엇이 생산적인 건데? 무언가 글을 쓴다든가 책을 본다든가 청소를 한다든가 집안 정리를 한다든가 요리를 한다든가 그런 거 라야지. 이건 영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복잡해. 그럴 때도 있고 그런 거야. 꼭 무언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이런 시간도 그냥 보낼 줄 알아야지. 왜 꼭 책을 읽고 무언가를 해야만 생산적인 거냐. 그럴까? 그런데 난 그렇게 재미있게 봤으면서도 한참을 TV 앞에서 꼼짝 않은 내가 영 보잘것없고 초라해 보인다. 남편은 그렇게 생각할 필요 전혀 없다고 하지만 나의 마음은 무언가 그럴듯한 일을 해야만 기분이 좋아지고 뿌듯하다. 이젠 이런 시간들도 참아낼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런데 '이태원 클라쓰' 정말 재밌다. 어쩜 그렇게 연기들도 잘하고 스토리는 그렇게 재미있을까? 함께 신나고 그가 빨리 성공하면 좋겠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절대 포기 않는 그 패기가 멋지고 사람을 하나하나 보듬는 그 따뜻함이 좋고 사람들이 어울려 잘 살아가는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 아, 재밌다. 하하 재밌으면 됐다. 그렇게 또 세월은 가는 거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고. 그 어떤 날이 되었건 나를 자책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순간 난 최고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를 별 볼 일 없이 생각하는 그 순간 나는 진짜 별 볼 일 없는 인간으로 전락한다. 그래. 괜찮아. 가끔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TV에 멍 때릴 수도 있는 거야. 그럴 수 있지. 암. 난 여전히 괜찮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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