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뜰 Mar 16. 2020

독후감 어떤 만남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중

대학에 막 들어가 교양과목 영어를 들을 때다. 교양과목이니만큼 수강생은 무척 많다. 전부 남학생들에 코딱지만큼의 여학생들. 열심히 듣지만 어렵다. 영어 원서를 읽어가는 수업이 익숙지 않다. 그래도 하는 데 까지 해야지. 단어 모르는 게 나오면 찾고 또 찾고. 이런 것도 몰랐어? 내가? 하면서 깨알같이 적어 공부하던 때. 그때 했던 책이 바로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중 어떤 만남이다.  An Encounter. 단어도 생소하고 내용도 어색하고 그래서 안타깝게 기억에 남아있다. 사십여 년 전 나를 추억하며 다시 읽어본다. 시험 스트레스 전혀 없이 순 재미로만. 음하하하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얼굴이 나온 사진을 보니 너무 멋지다. 아니 정말 예민한 까도남의 모습이랄까. 감수성의 혁명 모더니즘 문학을 이끈 20세기 가장 혁명적인 문학가. 1882년 태어나 1941년 59세로 사망. 나보다 일흔다섯 살 위. 더블린 사람들은 열다섯 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으로 조이스가 태어나고 자란 아일랜드 더블린이 배경이다.



 우리에게 서부 개척 시대를 소개해 준 것은 조 딜런이었다. 그의 작은 책장에는 유니언 잭, 플럭, 하프 페니 마블 같은 잡지의 지난 호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학교가 끝나면 저녁마다 그의 집 뒷마당에 가서 인디언 전쟁놀이를 했다. 딜런과 그의 뚱뚱한 동생인 게으름뱅이 리오가 헛간의 위층을 차지해 방어하면 우리는 그곳을 습격해 함락하려 애썼고 땅 위에서 막상막하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잘 싸워도 우리는 요새를 함락하거나 지상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했고, 결과는 언제나 승리를 자축하는 조 딜런의 춤으로 끝나 버렸다.


낡은 찻주전자 보온용 덮개를 머리에 쓰고 주먹으로는 양철 깡통을 두드리면서 <야! 야카, 야카, 야카!>하고 인디언처럼 소리를 지르며 거칠게 노는 조 딜런. 그를 이기기 위해 애들은 한 팀이 되어 뭉친다. 주인공은 공부만 한다거나 숫기가 부족해 보일까 봐 마지못해 참여한다. 그리고 이들은 진짜 모험을 계획한다. 하루만이라도 땡땡이를 쳐보자. 학교에 거짓 결석계를 내고 커다란 배가 정박해있는 항구로 가서 진짜 배를 타고 강을 건너기로 한다.


나는 아무도 안 오는 뒷마당 끝 석탄재 묻는 곳 근처 풀숲에 책을 숨겨두고 운하의 강둑을 따라 서둘러 걸어갔다. 6월 첫 주의 맑고 포근한 아침이었다. 밤새 열심히 윤을 낸 캔버스 천 신발을 자랑스러워하며 나는 다리의 갓돌 위에 올라앉아 유순한 말들이 언덕 위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을 태운 마차를 끌고 가는 것을 쳐다보았다. 산책로에 줄지어 선 큰 나무들의 가지들이 작고 밝은 연녹색 잎들을 자랑하고 나뭇잎들 사이로 햇빛이 비스듬히 물 위를 비추고 있었다. 다리의 화강암이 따뜻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머릿속의 멜로디에 맞추어 손으로 그것을 두드렸다. 나는 정말 행복했다.


겁쟁이 뚱보 리오 딜런은 끝내 오지 않아 마호니와 둘이 모험을 떠난다. 그러나 주인공은 새총을 가져와 휙휙 아무한테나 장난하는 마호니가 너무 실없어 보여 영 맘에 안 든다. 부두에서 큰 배들이 오가는 것과 짐 부리는 사람들을 보며 즐거워하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하루 종일의 땡땡이가 지쳐갈 즈음 들판에는 오로지 그 둘뿐. 말없이 강둑 위에 누워있는데 멀리 들판 끝에서 어떤 사람이 다가온다. 추레한 검은 옷에 중절모를 쓴 콧수염이 잿빛인 사람.


그는 우리에게 토머스 무어의 시나 월터 스콧 경, 리턴 경의 작품을 읽어 보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가 말한 책들을 다 읽어 본 척했다. 그랬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보니 너도 나처럼 책벌레로구나.' 그러고는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마호니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저 친구는 달라, 노는 것을 더 좋아하지.'


그 남자가 자기를 마호니처럼 바보라고 생각할까 봐 웬만한 건 다 아는 척한다. 그 남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한말 또 하고 또 하더니 입도 삐뚤어진 채 음침한 이야기도 하더니 갑자기 말 안 듣는 애들은 매질이 최고라며 엉덩이가 화끈거릴 정도로 때려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인공은 깜짝 놀라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한다. 조용히 비탈을 걸어 올라가며 그가 자기 발목을 잡을까 봐 두려워서 가슴이 쿵쿵 쾅쾅. 비탈 꼭대기에 다 올라가 들판을 향해 큰소리로 친구를 부른다. 구해주러 오는 듯 뛰어오는 마호니가  좋아 그를 무시했던게 미안하다.   


An Encounter. 어떤 만남. 바로 이 할아버지가 그 어떤 만남일까? 여하튼 이 꼬맹이들은 이제 다시는 학교를 땡땡이치고 밖으로 실제 모험을 떠나지는 않을 듯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자도서관 전자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