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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r 28. 2020

남편 생일에 부부싸움


그런 여름날 속에서 경애를 집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은
맥주와 옥수수뿐이었다. 


 김금희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은 나를 한 없이 우울 속으로 끌고 간다. 오래 사귀어 온 산주의 결혼에 무섭게 침잠하는 경애와 함께 나도 무겁게 무겁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무기력 속으로 빠져든다. 흥! 누가 이기나 해봐. 난 꼼짝도 안 할 거야. 


 그는 휙 나가버렸다. 부부싸움을 하면 내가 휑하니 나가버리는데 오늘은 그가 나갔다. 하긴 나는 가봐야 도서관 또는 교보문고인데 요즘 코로나 19로 꽝 막혀 난 가출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가 갈 곳은 있을까? 어디를 가는 걸까? 가봐야 앞산이겠지. 흥. 그런데 난 지금 이러면 안 된다. 왜냐하면 오늘은 그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그 부부싸움이라는 것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상황이 되건 안되건 아주 사소한 것으로 생기곤 한다. 오늘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띠 디디디 띠디디디딩~ 보이스톡이 오는 소리. 아마도 외국에 있는 아들에게서 생신축하 전화일 게다. 아침 시간이니 밴쿠버의 큰아들 이리라. 난 마침 샤워실에서 양치질 중이었다. 벨이 울리는가 싶더니 조용하다. 그렇다고 남편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다. 


"애들 전화 왔어?"


 세수를 뒤로 미루고 나와 본다. 


"응. 같이 받으려고 안 받았다."


"그래? 그럼 해야지."


 후다닥 거실로 가 쏘파에 앉는다. 그는 거기서 좀 떨어진 자기만의 리클라이너 의자에 앉아있다. 그런데 당장 걸 줄 알았던 전화를 걸지 않고 이것저것 밤 새 온 톡이나 메시지를 확인하는 느낌이다. 


"어서 해."


"그래."


 그런데 또 무언가 뒤지고 있다. 우쒸. 세수도 하다 말고 뛰쳐나왔는데. 슬슬 무언가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어젯밤 새벽 두 시까지 힘차게 김치를 담느라 피로에 지쳤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도 나도 지금 너무 피곤하다. 그래도 안돼. 화내면 안 돼. 오늘은 그의 생일이니 참자. 


"내가 따뜻한 물 해올께~"


 부엌에 가서 아침마다 따뜻한 물로 시작하는 우리 동선 따라 포트에 물을 올린다. 그리고 그 물을 떠 오는 것은 또 내가 까맣게 잊었는가 보다. 나중에 그의 말에 의하면 내가 따뜻한 물 가져온다 하니 물 떠 오기를 기다렸단다. 어쨌든! 나는 물 올린 건 잊은 채 쏘파에 가서 그가 아들에게 전화하기를 기다린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짜증을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 거는 가 싶더니 음악소리. 아. 이건 또 뭐야. 아직도 전화를 안 하고 있단 말인가. 우쒸. 


"전화 안 해? 전화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도대체 뭐해?"


"왜 신경질이야?"


 헉. 뭐지? 이건 또 뭐지? 도리어 화를 내다니? 그렇게 마음이 정리 안 된 상태로 그는 애들에게 전화를 건다. 큰아들과 며느리가 즉각 받아 


"아버님 생일 축하드려요~"


 명랑하게 생일 인사를 한다. 그런데 난 그게 아니다. 뭐라고? 왜 나에게 도리어 화를 내? 흥! 애들 전화에도 난 아무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미 심통으로 마음이 달려가고 있으니까. 그 혼자 어색하게 전화 속 대화를 이어간다. 내가 들어가야 할 타임이지만 흥! 난 이미 마음이 떠났다. 어떻게 내게 화를 내? 세수하다 말고 달려온 나를 그렇게 한참 기다리게 해 놓고 도리어 화를 내? 흥. 정말 별거 아니지만 여기서 화가 났던 것은 나중에 추측컨대 전날 밤 너무 늦게까지 김치를 담가 피곤해서였던 것 같다. 본래 화 잘 안내는 내가 말이다. 그도 여간해선 화를 안내는 사람인데 말이다.


 엄마가 도통 말을 않으니 아빠와의 대화도 어색해진다. 형식적인 인사말이 오가고 이상한 낌새를 차린 아이들은 대충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는다. 흥! 난 아무 말 안 해. 아, 그런데 오늘은 그의 생일. 한우 양지머리와 기장미역으로 맛있게 미역국을 끓여 아침을 먹을 판이었는데. 화를 계속 낼 수도 없고. 음. 그래도 생일 상은 차려야지. 그래. 인내심을 갖고. 상차림을 위한 쌀을 담가놓고 미역국 기초도 해놓고. 이쯤에서 보통날이라면 나는 여보를 불러야만 했다. 모든 국의 마지막 맛 내기는 은퇴 후 24시간 함께 하는 남편의 몫이고 그리고 밥도 안치는 것은 남편 몫이다. 공학도 답게 모든 걸 과학적으로 철저히 계량하는 그의 정확성을 따라갈 수 없어 그 예민한 부분은 모두 남편 몫으로 해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밥 한 끼 차리려면 우당탕탕 둘 다 부엌에서 바쁘다. 각자 맡은 역할이 있기 때문에. 


여보~ 밥 안쳐주고, 미역국 마지막 맛 내주어~ 


 이쯤에서 나는 요렇게 말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난 그러지 않았다. 난 그걸 할까 말까 할까 말까 에라 말자. 그 잠깐의 순간에 그냥 입을 일 미터 쑥 내밀고 화내는 것으로 가닥을 잡는다. 그릇들을 쾅쾅 내려놓으며 화났음을 적극 표현한다. 흥! 감히 부엌에 내 허락 없이 남편이 들어설 수 있을까? 


"아무나 이렇게 부엌에 올 수 있는 거 아닐 걸? 내가 말이야 워낙 바다 같은 너른 마음이라 여보를 이렇게 요리에 가담시키는 거라고."


 남편이 요리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건 나의 넓고도 넓은 마음 덕임을 과시하며 그동안 항상 밥상은 같이 차렸기 때문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그가 와서 하던 대로 밥도 안치고 국도 마지막 맛 내는 작업을 할 수 있겠건만, 그럼 나도 그냥 못 이기는 척 풀어지겠건만, 그는 끝내 국냄비 앞으로 오지 않는다. 내가 찬바람 쌩쌩 일으키며 단단히 화난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흥! 부엌에서의 아침 차리기가 둘이 할 때는 바쁘면서도 각자 역할이 있으니 착착 진행되었는데 밥 푸는 것까지 모든 걸 혼자 하려니 시간도 걸리고 무언가 효과적이지 않다. 어쨌든 아침 상을 다 차린다. 이제는 그에게 가서 말해야 한다. 밥상 들자고. 둘이 함께 상을 들고 거실 커다란 TV 앞으로 가야 하니까. 우리의 루틴이 밥 먹으면서만은 아주 재밌는 드라마를 보는 거니까.  


정성이 안 들어간 밥은 먹지 않아! 


 헉. 이게 뭔 일? 먼저 말 걸기 정말 싫지만 그래도 오늘은 그의 생일이니까 힘들게 가서 상 들고 가자고 말한 건데 돌아오는 대답이 예상 밖이다. 헉. 뭬라! 흥!!! 자기 방에서 꼼짝 않고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던 그가 할 말이 아니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밥도 차리고 그리고 일종의 화해의 제스처로 밥상 같이 들자고 했건만 뭬라! 흥! 흥체 피! 그래 나도 안 해! 쿵쾅쿵쾅 유난히 덜그럭거리는 나의 밥 짓는 소리가 그에게는 정성이 안 들어간 하기 싫은 밥 짓기로 보였나 보다. 흥! 그래도 그렇지!


 화해의 마음이 싸늘하게 식은 나는 그의 방 책꽂이에서 전날 드라이브 북 쓰루에서 빌려놓은 김금희의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을 빼들고 침대로 가버린다. 흥! 생일이고 뭐고 없다. 아, 저 맛있는 미역국 뜨거울 때 먹어야 하는데. 하는 맘도 잠시. 흥! 그래 좋아! 침대에 누워 꼼짝 않고 책만 읽으리. 누워서 읽으려니 자세가 안 나와 눈도 아프고 하지만 흥! 그래 난 오늘 꼼짝도 않는다. 정성껏 차린 밥은 부엌에서 식거나 말거나 흥흥! 내 알바 아냐! 꽁해져 침대에 누워 책에 코를 박고 있는데 헉.


"내가 성질부릴 줄 몰라서 이러는 줄 알아? 그렇게만 해!"


 화를 내며 옷을 주섬주섬 입더니 마스크까지 챙겨 휙 나가는 게 아닌가. 헉. 저 미역국은? 생일상은? 가출? 흥. 생일이고 뭐고 없어. 난 꼼짝 않을 거야. 그렇게 김금희 소설에 코를 박고 있는데 소설 속 주인공 경애도 자꾸자꾸 끝없는 바닥으로 기어들고 있다. 나도 따라 한없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지옥이 따로 없구나. 


  한 시간? 두 시간쯤 되었으려나. 두두두두 현관문 여는 소리가 난다. 흠. 오는구나. 이제부터 잘해야 해. 아까 있던 자세 그대로. 시체놀이가 이런 걸까. 정말 난 꼼짝 않고 침대 위에서 소설책에 시선 고정이다. 그가 들어와 옷을 갈아입는가 싶더니 그 역시 내게는 아무 말 없이 차려진 밥을 혼자 들고 거실로 가서 먹는 느낌이다. 난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안방 침대에 콕 박혀있으니까. 우쒸. 나도 배가 고픈데. 딸그락딸그락 먹는 소리가 난다. 내게는 아무 말 없이. 흥! 그래 난 시체다. 움직이지 않는다. 흥. 그렇다고 어떻게 혼자 먹냐. 우쒸.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간다. 홀로 밥을 다 먹고 그리고 커피까지 마시는 소리다. 흥. 난 꼼짝 않고 침대에 누워있다. 하루가 이렇게 흘러갈 수도 있는 거구나. 흥. 다시 그의 방으로 가는 소리. 난 꼼짝 않고 아침 모습 고대로 위치 변경도 없이 누워있다. 그의 생일이고 뭐고 흥. 난 이대로 밤 12시까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면 그의 생일이 다 지나가는데. 이따 밤에는 케이크 사놓고 촛불 끄는 행사 하기로 했는데. 그때 파리에 있는 작은 아들이 함께 생일 노래 불러주기로 했는데. 아, 그 행사는 어떡하지? 에잇. 내가 지금 그거 걱정할 때야? 흥. 아는 척도 안 한단 말이지. 그래. 난 이대로 여기서 그대로 칵 죽어버릴 수도 있다. 흥. 내가 꼼짝이나 하나 봐. 


 계속 누워서 책을 읽으려니 눈도 삐뚤빼뚤 책을 올렸다 내렸다 옆으로 했다 머리는 지끈지끈 아 싫어. 내가 나가나 봐라. 흥! 혼자만 먹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시간은 꽤 흘러간 것 같다. 그 두꺼운 책이 끝을 향해 가니까. 그런데 하루 종일 누워서 책 읽기란 절대 쉬운 일 아니다. 그의 생일이니까 풀기는 풀어야 하는데 그런데 그 어떤 계기가 있어야 풀지 않겠느냐 말이다. 흥. 누가 이기나 봐. 난 여기 이대로 꼼짝 않을 거야. 무기력증.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 없던 병도 생기겠다. 책 속의 경애는 자꾸자꾸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나도 덩달아 그 우울함 속으로 빠져들고. 


 아. 세탁물. 겨울 옷들을 생일에 하면 20프로 깎아주니까 어제 그제 맡기려다가 오늘 생일로 미뤘다. 나중에 보니 생일 앞뒤 총 2주간 할인해주는데 우린 꼭 생일에만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오늘이 가기 전에 그것도 해야 하는데. 그런데 벌써 환한 대낮은 다 지나가는 느낌이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 꼼짝 않는 나도 대단하지만 그걸 아는 척 한번 않는 그도 대단하다. 예전 같으면 몇 시간 못 가 달래러 오는 게 그의 정석인데 오늘은 왜 이리 길까? 모지? 왜 안 오지? 올 때가 되었는데. 흥! 그래도 내가 절대 먼저 안 풀어. 


 그렇게 침대에 딱 붙은 고정된 자세로 책을 읽다 졸다 자다 또 책을 읽다 잠깐 화장실만 후다닥 다녀와서는 또 그 자세. 그래 난 시체. 시체놀이 중. 그렇게 어느새 시간은 흘러 흘러 하루 해가 꼴딱. 아. 이게 뭐야. 정말 시시한 사건으로 귀한 하루, 그것도 그의 생일이 휘잉~ 날아가버리기 일보직전. 무엇으로 냉전이 시작되었는지 그 모든 걸 떠나 침대에 콕 박혀 이렇게 힘든데 달래러 오지 않는 그가 야속할 뿐이다. 흥! 빨리 안 와? 도리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왜 달래러 안 와. 엉엉. 


걸으러 가자. 


 베란다 쪽을 향해 모로 누워있는 내게 불쑥 나타난 그가 말한다. 우리 집 안방 침대는 베란다 쪽에 길이로 딱 붙어있다. 그러니까 내가 베란다로 향해 누웠을 때 베란다로 와 안방을 향하면 나의 눈과 딱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흥흥흥. 그럼 그렇지. 일단 내가 승!이다. 그러나 섣불리 풀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오래 화난 채로 있다가 걷자는 말 한마디에 헤헤 오케이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일단 안전선을 확보했으니 조금 더 버틸 수 있다. 오호호홋. 이미 해는 꼴딱 서산을 넘어가려 한다. 난 도대체 얼마나 이 침대 위를 지킨 것인가. 


"안가. 머리 아파. 나 머리 아파. 혼자가."


 그런 나의 엄살에 그는 이미 다녀왔단다. 나를 위해 다시 걷겠다는 거다. 내가 운동을 해야 하니까. 흥. 그러니까 아까 가출. 앞 산에 간 게 맞는구나. 그럼 그렇지. 그도 나도 가출해봤자 갈 곳은 뻔하지. 어쨌든 저녁때가 되어서야 화해의 손짓을 보내오다니 그도 대단하다. 나도 대단하지만. 흥. 당장 풀 수는 없다. 


"머리 아파. 안가. 나 안가."


 달래러 오는 그에게 그렇게 두세 번은 더 튕긴다. 몇 번을 더 버티려는데 그가 이번엔 딸기를 가져와 포크에 찍어 내 입에 들이민다. 흠. 오늘 아무것도 못 먹은 상태. 배는 고파 죽겠고. 그래도 이걸로 끝내? 쫌 더 진행? 아니 케이크 파티도 해야 하고 세탁물도 맡겨야 하고. 시계를 보니 6시. 그래 이 정도면 되었다. 끝내자. 딸기를 받아먹는다. 상황 종료. 


 겨울 옷 한 보따리를 양 손에 나누어 들고 세탁소에 맡긴다. 이미 어둑하다. 그가 내게 손을 내민다. 내가 그 손을 잡는다. 집 앞 수변공원으로 간다. 벚꽃이 그야말로 만발이다. 너무 먹은 게 없어 내가 힘들다. 반 바퀴만 돌고 집 앞 파리바게뜨에서 우유 듬뿍 생크림 케이크를 산다. 초를 그렇게 많이? 우리 나이가 꽤 많이 들기도 했구나. 집에 와 제대로 생일 상을 차려서 TV 앞으로 와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는 뉴스를 보며 밥을 먹는다. 꼭꼭 씹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리고 애들에게는 아무 일 없었던 듯 전화를 건다. 케이크에 촛불 밝히고 조명도 끄고 파리의 아들과 함께 '사랑하는 우리 아빠~ 생일 축하합니다~'를 목청껏 부른다. 그는 소원을 빌고 촛불을 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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