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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pr 03. 2020

독후감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정주영 

제목만 봐서는 절대 나의 시선을 끌지 못할 책. 그러나 얼마 전 이 책에 관한 기사를 신문에서 보았다. 그래서인지 교보문고 e-book 센터에서 어느 걸 읽을까 고르는데 이 책을 보는 순간 절로 손이 간다. 작가의 10년간의 정성과 노력을 알기 때문에 꼭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시 시작부터 나를 확 사로잡는다. 절대 눈을 뗄 수 없는 마돈나 무명시절 이야기. 모두가 그녀를 무시해도 포기 않고 끝없이 도전하다 겨우 큰 무대에 오르게 되었을 때 자신의 키보다 몇 배 더 큰 대형 케이크 위에 등장한 마돈나는 꽉 끼는 하얀 옷에 실크 베일, 진주 목걸이의 신부 복장을 하고 케이크에서 내려와 <라이크 어 버진>을 부른다. 그런데 노래와 함께 야하게 온 몸을 비틀며 성행위 비슷한 춤을 추는 게 아닌가. 헉. 성스러워야 할 신부복을 입고 저런 춤을? 모두들 '대형 참사'라며 충격에 빠진다. 그러나 바로 그 화면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두고두고 명장면으로 남으며 마돈나를 세계적 가수로 만들 줄이야. 하하 너무 재밌다. 


마돈나는 미국 이민자 후손들의 가슴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아메리칸드림을 상징하고 있다. 평범한 중서부 지방의 한 여자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일개 고등학교 치어리더에서 국제적인 슈퍼스타로 발돋움하는 10억 분의 1의 확률을 현실로 이뤄냈기 때문이다. 


마돈나는 여성도 남성처럼 자유롭게 성적 매력을 표현하며 진취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부 복장을 하고 성적인 퍼포먼스를 하는 마돈나를 보고 업계 관계자들은 난리가 난다. 마돈나는 이제 끝이라고 비난에 비난을 한다. 그러나 마돈나는 그들의 비난의 시선을 무시하고 차단한다. 오직 자신이 사회에 던지려 했던 메시지에만 더욱 깊이 몰입한다. 이러한 비난의 시선에 대한 놀라운 차단과 자기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결국 그녀를 성공으로 이끈다. 


잡음을 차단하면 완전하게 전념할 수 있다. 그 전념은 모두가 재능 없다고 단정 지은 것에 돌을 던질 수 있다. 중요한 점은 페드로이아가 전문가들의 가혹했던 평가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차단이 새로운 성공 곡선을 만든다. 1억 달러를 거머쥔 다음 날에도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모두가 잠든 새벽 다섯 시에 혼자서 연습용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넌 정말 별 볼 일 없어." 하는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공과 배트에만 집중. 어마어마한 연습 끝에 결국 보스턴 레드 싹스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가 되는 페드로이아. 주변의 부정적 신호에 위축되었다면 절대 이룰 수 없는 성공이다. 이런 부정적 신호를 차단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이 책에서는 강조한다.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남들의 비난이 조금만 있어도 얼마나 위축되었던가. 자신감은 멀리 사라지고 한없이 초라해지던 나. 아, 바보 같은 삶. 그렇다. 변함없이 자신감을 갖고 끝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주변의 비난 따위엔 눈도 까딱 않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오케이!


로즌솔의 손가락? 하버드 대학의 로즌솔 교수는 고등학교 어느 반에서 아무나 몇 명을 손가락으로 지적한다. 너, 너, 너.... 그렇게 선택한 아이들을 매우 뛰어난 애들이라고 담임 선생님께 말한다. 그때부터 이 선생님은 그 아이들을 특별히 생각한다. 아이들도 자기들이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을까? 8개월 후 모두 상위권 아주 좋은 성적을 낸다. 어떤 분석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그냥 손가락 가는 대로 아무나 로즌솔이 지적했음에도 결과는 그렇게 다르게 나왔다는 것이 포인트다. 주변의 시선 따라 주변의 판단 따라 우리는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주변에서 "너는 못났어. 넌 실패할 거야. 넌 왜 그 모양이냐. 넌 공부를 못해. 넌 쓸모없어." 이렇게 신호를 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 쓸데없는 부정적 신호에서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부정적 신호를 딱! 끊어버릴 때 진정으로 성공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오호 요건 골프와도 같다. '연습 하나도 안 해서 이번엔 잘 못할 텐데'하는 불안이 생기면 영락없이 공은 코앞에서 그냥 폭 고꾸라지고 만다. 그러면 곧이어 '아, 창피해. 나를 얼마나 공 못 치는 여자로 알까?' 하는 생각으로 위축되어 공은 더욱 엉망이 된다. 모든 불안을 딱! 끊고 자신감으로 휘두를 때 공은 멋지게 쭉 뻗어 나간다. 환경의 신호를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의 낮은 위치와 무너진 열등감은 상대방에게는 조용한 우월감과 성취감을 주어 더 잘하게 만든다. 우등생에게서 우등하다는 신호를 빼고 시험을 보게 하면 도리어 고난도 문제에서 헤매고 성적이 안 나온다. 그러나 못하는 애들을 껴놓으면 다시 우월감이 작동해 잘하게 된다. 캬~ 그러니 환경의 신호란 얼마나 중요한가. 파괴적인 신호들을 차단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은 상당 부분 타인의 판단에서 온다. 그 잘못된 판단을 차단시키는 게 중요하다. 


키신저는 히틀러 시대에 태어 난 유태인이고 학교에선 평균 이하로 엉망인 아이였다. 독일에서의 유태인 학살을 피해 온 가족이 뉴욕에 간다. 뉴욕 조지 워싱턴 고등학교에서 영어 제일 못하는 독일서 온 학생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집안이 어려워져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하버드에 가야겠다 결심한다. 홀로 낮에 공장에서 짬 나는 대로 책 보고 야간 학교에 다닌다. 결국 모두와 단절된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그에게 필요했던 하버드 입학증. 오로지 그것만이 목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아주 못하는 아이'라는 신호가 자동 빵으로 차단된 것이다. 주위 판단에서 자유로워진 키신저는 맘껏 공부해 결국 하버드 입학증을 딴다. 모든 변화는 내부에서 일어난다. 


어릴 때 수학 신동으로 태어나 온 세계 관심을 받았던 콘웨이. 그러나 케임브리지 대학 갔을 때까지가 끝. 뛰어나면서도 노력하는 친구들을 따라갈 수 없게 되고 더 이상 아무도 그를 천재라고 치켜세워주지 않고 본인 스스로도 비참함에 빠진다. 수학 하나도 풀어낼 수가 없게 되고 게임이나 즐기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으로 추락한다. 그러다 접하게 된 '리치 격자'에 대한 반짝임. '저건 내가 잘할 수 있겠다.'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 그 즉시 작업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연구에 몰두해 결국 '리치 격자의 대칭군 크기'를 발견해낸다. 반짝 드는 '내가 이건 잘할 수 있어.' 하는 느낌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 긍정 신호로 문을 걸어 잠그고 골방에 처박혀 연구함으로써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주변 신호를 딱! 끊게 만든 결과인 것이다. 이걸 계기로 그의 자신감은 다시 거대하게 올라갔고 그 뒤로 초현실 숫자의 발견 등 어마어마한 수학의 업적들을 쏟아낸다. 


마리 퀴리는 찢어지게 가난하게 태어난다. 너무 가난해 대학은 갈 수 없고 부잣집 가정교사로 일하며 돈을 모아 파리로 가서 대학에 들어간다.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고 난리를 침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꿋꿋이 도전하여 9천여 명의 남학생들을 제치고 1등을 한다. 아주 좁고 초라한 자신의 실험실에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라듐을 분리해내 세계 최초 노벨상을 수상한 여성 과학자가 된다. 


남들과의 비교는 순수성을 잃게 만든다. 두려움을 만드는 신호를 차단하고 우리가 꿈꾸는 것의 가장 본질에 다가갈 때 우리는 그 힘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키신저와 신동이었던 콘웨이, 그리고 퀴리의 삶이 남긴 교훈이다. 


자폐증인 벅스턴은 수학에 밝다. 유명한 오페라를 보면서도 극 내용은 전혀 모르고 그가 몇 마디를 부르고 몇 스텝을 밟았는가를 숫자로 정확히 계산해낸다. 오로지 수학에만 관심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신경 쓸 게 너무 많다. 오홋. 정말 재밌게 봤던 영화 '쥐라기 공원'

이 지독한 난독증으로 대학에 7번이나 떨어진 바보 학생과 엘리트의 학문 경쟁 이야기라니. 하하 공룡을 연구하겠다는 열정 하나로 미친 듯 고생물에 집중한 존 호너가 바로 그 바보 학생이다. 그는 결국 유명한 고생물학자가 된다. 대학에 떨어지거나 말거나 "저 사람 뭐래?" 하는 주변의 싸늘한 시선을 차단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만 집중한 결과이다. 


실패한 화가였던 폴 세잔. 실패해서 자살까지 하게 되는 소설 속 화가가 바로 자기를 말하는 것 아니냐며 소설을 써서 선물한 에밀 졸라와 의절한다. "이번에도 망쳤어. 병신 같은 놈, 난 절대로 아무것도 그릴 수 없을 거야." 주변의 시선 따라 자신을 한없이 비하하는 폴 세잔. 그러던 그가 번쩍, 이 신호를 과감히 차단하고 그림에 집중한다.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그림의 변화에서 우리는 세잔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불필요한 모습이 점점 삭제되어 본질만 남게 된다. 점점 카드놀이에 집중하는 모습이 잘 표현된다. 이것은 바로 세잔의 그림에 집중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본질은 가장 중요한 것만을 남기고 모두 차단해야 한다. 2,900억 원짜리 그림. 하하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싸게 팔린 그림이 바로 이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이다. 카드에 몰입된 두 사람의 강한 긴장감은 폴 세잔이 자신의 작품에 몰입된 화가인 자신을 거울처럼 투사한 것이다. 현실에서 불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제거해버리고, 가장 본질만을 남긴 것이다. 제한된 집중이다. 


그러나 6살에 이미 뛰어난 미술적 재능을 보인 나디아는 일반 학교 생활하면서 너무 잘 적응해 더 이상 미술을 못하는 아이가 되어버린다. 사회적 단절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녀만의 세계에 접근할 수 없어서이다. 아하. 일반인은 신경 쓸 게 너무 많으니까 하하.


카라얀에 비하면 매우 가벼운 공격이었음에 크라우스는 당황하며 예전처럼 자신감 있게 지휘봉을 잡지 못했다. 자신을 향한 부정 신호는 차단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큰 당혹감과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그리고 경험해보지 못한 약점은 거대하게 굴러다닌다. 반대로 젊은 카라얀에게는 일찌감치 불행한 시기가 달라붙었다. 어릴 때부터 그 신호들을 차단하고 혼자서 블랙 다이아몬드를 빛내며 하루에 18시간이나 매달렸던 것은 '초인적인 지휘자'로 불리기 위한 조건들이 되었다. '내 시대가 올 거야. 기다릴 수 있어.'는 그의 좌우명이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문득 생각난다. 고난 속에 성공의 길로 간 카라얀은 불행을 많이 경험해 웬만한 주변의 비난에도 까딱도 없다. 그러나 워낙 좋은 집안에서 잘 자란 크라우스는 작은 비난에도 견디지 못하고 지휘봉을 잡지 못한다. 부정 신호에 잘 적응된 카라얀은 비난의 신호를 완벽하게 차단한 채 자신의 연습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인간을 춤추게 하는 것은 영혼과 정신이지 기술적인 능력이 아니다. 카라얀이 실수하는 신입대원에게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무언으로 최고의 연주를 이끌어내는 장면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래. 나도 기다릴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상대방 신호를 끄고 오래 노력하다 보면 될 수 있다. 무엇이 안되어도 좋다. 하하 주변의 나를 우습게 보는 신호를 차단하고 빛을 볼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능력. 그래. 


인류 최초의 문자를 제일 먼저 판독해낸 사람은 그로테 펜트라는 무명의 학교 교사다. 학자처럼 집요하게 생각하고 깊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인재는 시대의 신호 속에 갇혀있지 않고 새로운 신호를 만들어낸다. 노력의 시간보다 얼마나 한 분야를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는가가 더 중요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은 상당 부분 타인에게서 온다. 사람들이 나를 평범하다고 생각하면 그 신호에 맞춰서 나는 평범해진다. 못한다고 생각하면 더 못해지고,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특별해지려고 본능적으로 노력한다. 그것은 잠재의식 차원에서 움직인다. 그 신호들을 의식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그리고 차단된 공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향해 뛰어들 때 반짝이는 최고의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  


로즌솔의 손가락은 정말 존재한다. 그것은 내가 똑똑하다고 누군가 진지하게 말해줬다는 것이다. 그 신호는 낙제점의 학생을 하버드까지 올라가게 만든다. 그렇다. 이런 신호는 정말 중요하다. 파괴적인 주변 신호는 무시하고 나의 잠재력을 지키고 지지해줄 신호들로 무장하라. 나의 한계를 긋는 신호를 차단하라.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의 몸. 형편없는 삶을 살았다고 평가하는 십 년간의 성적표 뭉치와 불합격 서류들.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외부의 평가대로 자신을 하찮은 패배자로 여겨 자살까지 감행했던 저자. 죽음 앞에서 주변의 많은 신호들이 사라지면서 사회가 그를 정의하려 들었던 것들은 본질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그래. 내가 왜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따라 나를 결정하는가? 비켜랏! 물러가랏. 외부 판단을 모두 내던져 버린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 본인만의 능력을 꽃피운다. 내던져진 아이들에게 새로운 신호를 주어 최고 대학에 합격시킨다. 나를 한계 짓는 외부 신호를 딱! 차단하고, 잠재력을 키워주는 새로운 신호를 만나라! 아,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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