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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pr 04. 2020

시카고에서 온 글


나에게는 그 옛날 1960년대에 함께 광화문 덕수 국민학교에서 뛰놀던 동창 네 명이 있다. 시애틀의 사진 잘 찍는 아이, 아르헨티나의 사업 잘하는 아이, 서울의 산 잘 타는 아이, 시카고의 글 잘 쓰는 아이다. 시카고의 글 잘 쓰는 아이가 오랜만에 글을 보내왔다. 우리가 빨리 글 좀 쓰라고 마구 다그쳤기 때문이다. 하하 


<서글퍼지는 것들>


언젠가 T.V를 보던 중 맛집이나 특이한 식당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타이틀이 욕쟁이 할머니 집이었다. 고기구이집이었는데 다듬어지지 않은 다소 오래되고 누추한 식당이었다. 남녀 리포터 2명이 방문해 방송을 위한 취재와 식사를 하는 거였다..


콘셉트 자체가 욕쟁이 할머니 집이라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쭉 보았지만 재미있다기보다는 왠지 씁쓸하고 개운치 않았다... 주인공인 욕쟁이 할머니의 차림 자체가 막자다가 나왔는지 머리. 옷매무새가 부스스했고 욕을 섞은 고성부터 질러대며 주문한 고기나 반찬도 딱 보기에도 신선하지 않고 무성의했다.. 


콘셉트를 살리려고 두 리포터는 억지로 재미있다는 듯 할머니를 치켜세우며 진행하였지만 잘 어울리지도 않고 보는 내내 불편하였다... 결국 채널을 돌리면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저 70 초반으로 보이는 할머니도 분명 순수하고 여렸던 소녀시절이 있었을 텐데.... 어릴 때부터 저리 욕이 입에 배어 있었을까?. 아니면 소녀. 처녀. 아줌마. 할머니를 거치며 험난한 세상을 살다 보니 거칠어진 걸까?... 알 수는 없지만 아마 후자였을 거라 믿고 싶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주변의 나이가 든 아줌마나 할머니들을 떠올려보니 그 욕쟁이 할머니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닮은 거 같다. 목소리의 볼륨부터가 커지고 조금만 대화가 어긋나면 상대 방말을 잘라버리거나 말꼬리를 잡고 흔든다. 절대로 밀리지 않겠다는 전투 모드로 몰입해 표정과 말투가 바뀐다... 다들 한때는 꿈 많고 청순하고 지는 낙엽을 밟으며 서정적인 감정을 느꼈을 터인데... 학자들은 여자들은 중년에  들어감에 따라 남성호르몬이 증가하여 씩씩해지고 남자는 남성호르몬이 줄어들어 감성적이 된다고 설명한다...


상당 부분 인정하나 여기에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자기 자신만을 보며 다스리기보다는 남과의 비교를 쉽게 하게 되어 외모. 말투. 경제적 환경 등에서 지지 않으려는 경쟁심이 일어나 조금이라도 쳐지면 패배자가 된다는 인식이 축적되어 항상 긴장하며 살게 되는 듯하다. 따라서 상대에 대한 배려라든지 희생은 점점 선의가 아닌 무능으로 양보 지심은 손해 막심이란 말까지 나온다...


풋풋 한대화에 싱그런 웃음소리가 퍼지는 대화는 점점 사라져 가고 욕설과 험담이 난무하는 대화가 대세를 이루는 걸 보면서 내가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건지 혼란스럽고 참 서글퍼진다. 요즘 내가 나가는 곳은 중년 이상의 노인들의 출입이 잦은 한인 복지회관인데 주로 할아버지들은 한구석에서 모여 앉아 바둑. 장기. 를 두거나 뻥이 조금 가미된 옛 잘 나가던 얘기를 하며 소일하는데 비해 할머니들은 주로 남 험담이나 자기 가족자랑.(남편 제외)을 큰소리로 떠들며 즐긴다..


간혹 너무 시끄러워 좀 자제해달라고 하면 바로 할머니 모두가 전투 모드로 변해서 눈초리가 매서워지고 말투가 속사포가 되어 불을 뿜는다... 더 이상 다치기 싫은 할아버지들은 바로 깨갱이다.... 이런 광경을 여러 차례 목도하며 50이 넘은 여자는 그냥 나이 들어가는 사람으로 보인다. 여자를 폄훼하는 게 아니라 서글플 뿐이다... 어쩌겠나... 가끔 아주 드물게 곱게 단장하고 푸근한 말씨와 상냥한 미소를 띠는 할머니를 보면 점심 배식 때 동그랑땡 한 개. 사과한 개 더 얹어주고 싶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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