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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pr 08. 2020

나무 전문가

나무 전문가


우리는 그를 그렇게 부른다. 남편의 직장 동료로 남편과 같은 시기 퇴직해 OB라는 이름을 달고 함께 공 치는 멤버 중의 한 분이다. 왜 그를 나무 전문가라고 부르냐 하면 그는 굉장히 많은 나무를 가꾸고 길러 판매까지 하기 때문이다. 우리랑은 비교도 안되게 어마어마한 땅에 어마어마한 나무들을.



기왕 우리도 나무를 키우기로 한 것. 그에게 도움을 받기로 한다. 우리가 나무는 제대로 심은 건지. 앞으로 더 심는다면 어떤 나무를 어디에 어떻게 심어야 할지. 지금 있는 나무들을 잘 키워 과일까지 따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을 지도받기로 한다. 무척 바쁨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하루를 내어준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의 집에 오니 부직포와 비닐로 잘 단장된 밭이 나온다. 우리가 낑낑대며 부직포 덮은 것과는 게임도 안된다. 그만큼 능숙한 솜씨의 밭이다.



손주를 돌보러 아내가 외국 간 사이 홀로 지내고 있는데 사방이 깔끔하고 정리정돈이 아주 잘 되어있다. 들어가서 차나 한잔 하고 가자는 그의 말 따라 그의 집에 들어선 나도 남편도 깜짝 놀란다.


"아니, 남자 혼자 사는 집이 이렇게 깔끔할 수 있어요?"  

"아내가 매일 아침 전화 와요. '이불 햇빛에 널었느냐, 걸레질했느냐. 사진 찍어 보내라 믿을 수 없다.'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어요."


하하 그분의 아내분은 정말 살림 솜씨가 백 단이다. 남자 홀로 있어도 반짝반짝 유리알처럼 모든 곳이 빛나게 만들고 있으니 그 먼 곳에서도 말이다.


"집에 있을 때 잠시도 가만히 안 있어요. 먼지 조금만 보여도 걸레 들고 난리지요. 함께 오래 살다 보니 나도 닮았나 봅니다."


그렇다. 닮은 게 분명하다. 잔디밭도 집안도 얼마나 깔끔한지 남편과 나, 특히 내가 많이 감탄한다.



이렇게 식물이 자라는 걸 보면 너무 좋아요.


그는 집 마당에 심어놓은 요것조것을 보여주며 너무 행복해한다. 그가 기르는 거대한 나무들을 보러 가기 직전 그의 집 마당의 자그마한 밭을 둘러보는 것이다. 블루베리, 두릅, 포도, 대추, 없는 게 없다. 밭에선 감자, 상추, 쑥갓, 시금치, 온갖 먹거리 야채들이 고개를 삐죽이 내밀고들 있다.



할미꽃도 가져다 심어놓으니 이렇게 활짝 폈어요.


오마 낫 꼬부라진 할미꽃이 저렇게도 되어요? 와우~ 할미꽃은 항상 할머니처럼 꼬부라져 있는 줄만 알았는데 저렇게 허리를 꼿꼿이 펴고 활짝 필 줄이야. 세상에 저렇게 갈기갈기 갈라져 머리카락처럼 되다니. 꼬부랑 깽깽 할미는 어디로 가고? 하, 신기하다.



부지런해야 나무 키울 수 있어요.


아, 요 거이 무슨 나무라고 했더라. 그가 능수화며 무엇이며 아, 이팝나무라고 하였던가. 온갖 것을 설명해주었는데 너무 많아서 기억이 가물가물 이름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그의 집 주변으로 택배회사며 많은 회사들이 들어선다. 그냥 내버려 둔 땅에 간단하게 패널로 집을 짓고 농작물도 기르고 하니 너무 좋단다. 그는 계속 강조한다. 부지런해야 나무 키울 수 있다고. 아, 난 자신 없다.



우린 그 산속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 아직 코로나 19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니까. 인사도 주먹 인사를 했다. 그는 자식처럼 사랑으로 돌보는 많은 나무들을 보여 준다. 나무는 두께 따라서 가격이 결정되는 데 나무 밑동의 크기를 보는 R 방식과 가슴 높이의 크기를 보는 B 방식이 있다 한다. 벚나무는 B방식으로 크기를 계산한단다. 오호~



와~ 벚꽃놀이 이리 오면 되었네요.


벚꽃놀이를 따로 갈 필요도 없다. 조경수를 파는 그의 땅엔 아름다운 벚꽃이 활짝 피었다. 하하 나는 맘껏 벚꽃을 감상한다. 아, 봄이다. 이렇게 화창하게 꽃이 피었는데 매일 방콕이라니. 코로나여 어서 물러가랏!



지금은 나무들이 커서 따로 나무를 사지는 않는다고 한다. 벚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 소나무를 기르는데 나무들에서 씨가 떨어져 주변에서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단다. 굳이 돈 들일 필요 없이 그 나무들을 잘 관리하면 또 세월이 지나며 듬직한 나무가 된단다.



자식 똑같이 키워도 모두 다르잖아요. 나무도 그래요.
꼭 같이 심었는데 어떤 놈은 보기 좋게 자라고 어떤 놈은 비실비실합니다.
별 볼일 없는 놈들은 가차 없이 베어버립니다.


그의 말 대로 나무는 같이 심은 거라는데 모양은 정말 천차만별이다. 이게 정말 다 같이 심은 거냐고 너무 다른 나무들 모습에 도저히 믿기지 않아 나는 자꾸 물어본다. 나무도 사람도 자라는 걸 보면 많이 같다는 그의 나무 철학을 한참 듣는다. 재밌다.



농부는 재주꾼이어야 합니다. 모든 걸 할 줄 알아야 해요.
요즘은 이런 게 땅을 다 갈아줍니다. 이런저런 거 다 할 줄 알아야 해요.


포클레인 자격증에 중장비 자격증에 많은 자격증까지도 가지고 있는 그가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는 제법 큰 창고 같은 곳을 열며 해주는 말이다. 안에 들어가니 온갖 기계와 장비가 즐비하다. 그리고 일하다 쉴 수 있게끔 안쪽으로 방이 있고 그 방안에는 싱크대가 있고 물이 나온다. 그리고 깔끔하다. 정말 정리를 잘하는 분이다. 이런 시골의 창고까지도 저렇게 효율적으로 깔끔하게 유지하다니. 대단하신 분.




나무는 줄을 똑바로 세워 촘촘하게 심어야 합니다.
그래야 똑바로 자라요. 널찍하게 드문드문 심으면 한쪽으로 기웁니다.
빽빽하게 붙여 놓으면 모두 하늘을 향해 아주 똑바로 자라요.


캬~ 신기하다. 빽빽하게 붙여 놓으면 나무도 옆으로 쳐지면안된다는 걸 아는지 위로만 열중차렷! 곧게 자란단다. 기울어질 여지가 없으니까. 하하 예쁘게 줄 맞춰 심어놓은 그의 나무들을 구경하며 그가 들려주는 많은 나무이야기를 듣는다.



풀! 그놈들 대단해요!


벚꽃이 정말 만발이다. 단풍나무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나무를 팔면 사가는 사람이 와서 흙까지 파서 다 알아서 가져간단다. 아무리 큰 나무도 포클레인으로 다 작업해 간단다. 하하 우리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일 뿐. 그러나 그의 나무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직접 만져보는 나무들과 함께 즐겁다. 그런데 나무를 키우려면 할 일이 이만저만 많은 게 아니란다. 특히 풀과의 전쟁이 제일 어려운 과제란다. 그래서 제초기도 쓸 줄 알아야한단다. 가끔 성묘가서 남편과 그의 형제들이 뿌아아앙 제초기 쓸 때를 보았는데 아, 얼마나 무섭던가. 윙윙 돌아가는 그 무시무시한 칼 날에 손가락이라도 행여 닿는다면. 악 무서워.  



아, 그의 농장은 지금 화사한 꽃들로 너무 아름답다. 넓고 넓은 땅에 꽃나무가 한창이다. 작년엔 나무를 많이 팔았는데 금년엔 코로나 탓인지 작년만큼 못하단다. 저 아름다운 벚나무들이 여기서 이렇게 뽐내고 있을 때가 아니란다. 어디 공원이고 어디로 다 팔려갔어야 할 나무들인데 금년엔 저러고 있다며 코로나를 탓한다. 에잇, 코로나! 어서 물러가랏! 나도 속상하다.



아, 할아버지들이 부채질 하며 한가히 쉬고 있는 그 커다란 나무요?


그렇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바로 그 커다란 느티나무란다. 공원 같은 곳에 많이 팔려간단다. 그런 나무들도 이렇게 나무 농장에서 키워져 심기는 것이라니 와우 뜻밖이다. 애초부터 그렇게 동네 한가운데 떡하니 서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며 쉬어가게 만드는 붙박이 나무들로만 생각했는데. 공원 조성하는 이야기며, 나무 입찰하는 이야기며 그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흥미진진이다. 푸하하하 아, 재밌어.  




하늘로 향해있는 나무들이 정말 멋지다.  그가 사랑으로 키운 나무들이다. 자식 돌보듯 이 애는 어떤 역사를 지니고 있고 하하 나무마다에 얽힌 그의 이야기가 있다.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하하 절로 애국가의 가사를 생각나게 하는 나무다. 한 번 크게 불러봐? 푸하하하



태풍에 쓰러져버린 나무이야기를 할 때는 그의 얼굴마저 일그러진다. 덩달아 우리도 너무 안타깝다. 나무가 파괴되고 땅이 푹 파이고. '아하 나무를 심어 놓으면 태풍 그런 것에서 자유롭지 않구나.' 항상 자연재해를 신경써야할테니 그건 걱정으로 다가온다. 음.



네네 알겠습니다. 줄을 쫙 맞춰서.


그는 몇 번이고 이렇게 쫙 줄을 맞춰 나무를 심어야 함을 강조한다. 하하 나무를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어떻게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지, 귀가 아프도록 듣고 또 듣는다. 그는 말만 해주면 우리가 듣고 나무 전문가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푸하하하



어무이 아부이요 저 왔심더.


그는 어머니 아버지를 농장 위에 모셔놓고 마치 살아계신 부모님 대하듯 그렇게 올라가 인사하고 내려온다. 정말 효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곁에 계신 듯 부모님께 이야기를 하고 내려오다니. 그의 일상인 듯 자연스럽다.



그의 나무들엔 새순이 돋고 있다. 한쪽에선 활짝 꽃이 피고 있다. 한 쪽에선 이미 꽃이 지고 있다. 그야말로 변화무쌍이다.



그리고 한쪽에선 그의 가족들이 먹을 과일나무가 자라고 있다. 감나무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포도나무 왕대추나무 대봉 나무... 하하 바로 우리처럼! 그도 먹고 싶은 과일은 많았나 보다. 푸하하하


우리 점심 먹어요~


아, 어느새 시간은 한 시가 훌쩍 넘고 있다. 배가 고프다. 햇빛 따스한 바깥에서 먹을까 하다가 따가운 햇살에 기미 낄까 봐 하하 나는 안으로 들어가자 한다. 어느 농장에고 그의 막사가 있으므로 그 간이 막사에 들어가 먹기로 한다.



여전히 깔끔한 그의 막사 안에는 농기구가 가득하고 그리고 뒤로 난 방에는 커튼도 있고 오디오 시설도 있고 침대도 있고 주방 싱크대도 있고 물도 나오고 밥상도 있고 완벽하다. 하하 그래서! 코로나 19 때문에 외식은 안되니까 준비해 간 나의 먹거리를 펼쳐놓는다. 아주 작은 앉은뱅이 밥상 위에 음식을 놓고 바닥에 철퍼덕 앉는다. 차갑다.



내가 준비해 간 점심, 베이글 빵을 구워 치즈를 바르고 꿀을 바르고 그리고 사과와 토마토를 넣은 샌드위치. 사과, 참외, 딸기. 반숙으로 잘 삶아진 달걀, 그 이전에 융프라우에서 만원 주고 사 먹던 신라면 컵라면. 팔팔 끓는 물을 보온병에 준비해왔으므로 우선 그 컵라면에 뜨거운 물 붓는 작업을 하고, 그리고 아이스팩 가방에 시원하게 준비해 간 요플레를 먹으며 라면이 익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과일을 먹으며 그 옛날 옛날 우리가 한창일 때의 이야기를 한다.



차남인 그가 인생에 가장 후회스러웠던 때를 이야기하고, 우리 역시 비슷한 시기 그 옛날을 추억한다. 조그만 창으로 바라보이는 파란 하늘엔 흰구름 두둥실. 조그마한 그의 방에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옛날이야기가 모락모락. 깔깔 푸하하하 함께 하는 추억은 언제나 즐겁다.



이쑤시개도 있어요~


하하 난 거의 완벽하게 준비했다. 마지막 따끈한 커피까지. 그의 농장의 나무들을 보며 많은 공부를 했다. 부지런해야 하고 재주가 많아야 하고. 아, 나랑은 꽤 먼 이야기 같지만 그래도 나무 하나로 이토록 통하는 이야기가 많아진다는 것은 꽤 멋진 일이다. 하는 데까지 해볼 일이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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