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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pr 14. 2020

봄나물 캐는 처녀~

는 아니고 아지메 또는 할매


S는 서울 결혼식을 갔다 하동에서 오는 길이고 우리는 언양 장에서 조선호박 모종을 사서 밭으로 가고 있다. 4월 중순인데 날씨는 아예 겨울 느낌이다. 찬바람이 쌩쌩 얼마나 심하게 불어대는지 바닥에 깔린 부직포가 들썩들썩. 잘 박아둔 핀이 위로 뽕긋 솟아 나 있다. 발로 꽉꽉 눌러 다시 땅 속으로 밀어 넣는다. 아무래도 잡초가 검은 부직포 밑에서 살아나려 용트림을 하는가 보다. 과연 저 든든한 부직포를 뚫고 올라올까? 무서운 잡초의 생명력. 꼼짝 마랏. 발로 쿵쿵 쾅쾅 심하게 밟는다. 




나무들은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연두색 새로 나오는 잎들이 싱그럽다. 짙은 초록 아닌 연한 연둣빛. 이때의 나무 색깔이 참 좋다. 알뜰살뜰 나무를 보살피는 나의 서방님. 밭에서 그는 어릴 때로 돌아가는가 보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 이미 국민학교 때부터 과외공부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남편은 산골동네 냇가에서 멱감고 있었다니 모든 게 극과 극인 남편과 나는 자란 환경도 많이 다르다. 그래도 시골에서 공부를 잘해 단 세명이 중학교 입시를 위해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과외를 받고 보자기 가방을 등에 메고 횃불을 들고 걸어 집에 가려면 갑자기 앞에서 번쩍 뒤에서 번쩍 짐승들의 눈과 마주쳐 오싹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해준다. 나는 그때 이미 크로바 또는 쓰리쎄븐 책가방을 들고 다녔는데 보자기 가방이라니 서울과 시골 그리고 네 살이라는 나이 차이는 꽤 크다.



무성하게 자란 음나무 잎. 오늘 그 첫 수확이다. 잔뜩 따서 팔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먹을 예정이다. 너무 어린잎은 까시 때문에 자를 수가 없고 좀 큰 것들은 손으로 똑! 하면 그대로 떨어진다. 많이 기다렸노라 음나무 너! 오늘은 수확하리. 음하하하. 오면서 시장에서 보니 작은 팩 하나에 무려 8,000원씩이나 받고 있었다. 와우. 돈 버는 느낌이다. 푸하하하



하하 무성한 음나무 잎이 신기해 이렇게 저렇게 여러 방향에서 찍어본다.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진작부터 따오려 했지만 농사일을 잘 아는 후배 S는 아니, 아직 아니어요. 하면서 미루고 또 미루다 드디어 오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 것이다. 




우리가 오면서 사 온 조선호박 모종은 호박잎을 따먹을 수 있는 것으로 하나에 500원씩 아홉 개다. 이런 걸 잘 아는 S의 지시를 따른 것이다. 구덩이를 파고 거름을 넣고 까만 플라스틱 통 안에서 모종을 살살 꺼내 조심조심 심어준다. 그리고 흙을 덮고 거름도 살짝 더 넣고 물을 흠뻑 준다. 호박이 자라면서 잎이 무성해지면 따서 호박잎 쌈을 해 먹어야지. 그러다 보면 호박도 주렁주렁 열릴 것이다. 호박도 먹고 호박잎 쌈도 먹고 꿩 먹고 알 먹고 헤헤 신난다. 이대로 농부가 되려는가. 





그리고 또 하는 김에 호미로 밭을 잘 일구어 거름도 쏟아붓고 먹고 싶은 야채들을 심는다. 요건 시금치 씨앗. 분홍색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요걸 고랑 낸 밭에 살살 살살 뿌려주고 거름도 주고 다시 살살 흙을 덮어준다. 정말 요렇게 작고 예쁜 씨가 시금치가 되어 나올까? 상추씨도 쑥갓 씨도 얼마나 작은지 바람에 훅 날아갈 듯 그걸 한 줌씩 손에 쥐고 살살 살살 흙 위에 뿌려주었다. 작은 봉투 안에 들어있어 한 봉지에 2,000원 밖에 안 하는 수많은 씨가 정말 상추 되어 쑥갓 되어 시금치 되어 올라올까? 기대 만만이다. 




나무 심은 한쪽에 그렇게 야채들을 심기 위해 이렇게 밭을 일구었다. 맨 위에서부터 머위, 부추, 상추, 쑥갓, 시금치를 차례로 심었다. 이제 본격적 농부가 될 판이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다. 배꼽시계는 정확하고 밤이면 피로가 몰려와 절로 잠에 곯아떨어진다.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라고 했던가. 푸하하하 모든 게 맑아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매우 단순해진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피곤하면 쉬고.




호박은 예쁘게 잘 심어졌다. 주렁주렁 열릴 호박을 꿈꿔 본다. 호박잎 쌈은 또 얼마나 맛있는가. 강된장을 뽀골뽀골 끓여 곁들여야지. 오홋. 어서어서 무럭무럭 자라거라. 




지난주에 와서 심은 머위 잎이 지저분하다. 예쁜 새 잎이 돋아나라고 낡은 잎은 가차 없이 처분한다. 난 이런 걸 잘 모르는데 S는 아주 잘 안다. 이 잎들을 모두 잘라버리란다. 그러면 다음에 올 때 아주 깨끗한 새 잎이 돋아나 있을 것이란다. 그때 따서 이것 역시 살짝 데쳐 쌈 싸 먹으면 너무 맛있단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다오. 외치며 가차 없이 잘라버린다. 





와우 파릇파릇 쑥이 너무 탐스럽다. 이 청정 지역의 쑥을 캐어 쑥떡을 만들어 우리도 먹고  시어머니께도 부치고 엄마에게도 부치자고 S가 꼬드긴다. 부직 포위에 퍼더 지고 앉아 쑥을 캐기 시작한다.  시어머니 꺼 한 되, 엄마 꺼 한 되, 우리 꺼 한 되. 





농약을 하나도 안 친 우리의 나무 아래  부직포 잘린 곳에 군락을 이루고 멋지게 자라나는 깨끗한 쑥. 사 삭사 삭 베어 맛난 쑥떡을 기대하며 거대한 비닐봉지에 착착 집어넣는다. 어리숙한 나의 쑥 캐는 솜씨도 늘어가는 느낌이다. 엣 헴. 





부직포 위에 살짝 누워본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 두둥실. 언제나 아름다운 하늘, 파란 하늘. 난 하늘을 바라보는 게 참 좋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 가아 안다. 하하. 왜 여기서 그 노래가 생각날까? 




아, 바야흐로 봄인데 어서 코로나 19가 사라지면 좋겠다. 모두가 이 예쁜 봄을 만끽하면 좋겠다. 봄나물 캐는 처녀~ 는 아니고 하하 아지메 또는 할매되어 맑은 쑥을 신나게 캔다. 가끔은 파란 하늘도 바라보며. 마음은 봄나물 캐는 처녀다. 몸이 안 따라주어 그렇지.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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