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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pr 15. 2020

어떤 모습에 결혼하게 되었나요?

래미 님의 댓글에 대한 답글


나의 글 '은퇴한 남편이 문득 멋있을 때'는 메인에 오르며 순식간에 조회 수 7만을 넘는 기록을 세운다. 그런데 거기 래미 님께서 길고도 긴 댓글을 달았다. 나에게 묻고 있다. 결혼에 대한 여러 가지를. 도움이 되고 싶어 정성껏 답글을 작성하다 보니 너무 길다. 이렇게 긴 글이 답글로 올라갈 수 있을까? 그래. 아예 뚝 떼어 단독으로 올리자. 래미 님께 많은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나의 이야기를 들려드린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20대 초반입니다. 어린 남자 친구랑 연애도 잘 풀리지 않고 티브이에서는 '부부의 세계'라고 불륜하는 장면만 나오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해서 "부부가 의지하며 서로 사랑하며 평생 살 수 있을까"라는 건 제게 마치 꿈같은 상상에 불과했어요. 선생님의 모습을 보자마자 "이렇게 살고 싶다"라는 소원이 더 짙어졌습니다. 주위에 조언을 구할 어른이 계시지 않아 이렇게 여쭙겠습니다. 하핫. 선생님은 얼마나 연애를 하시다가 몇 살 때에 결혼하셨나요? 지금 제 남자 친구는 무뚝뚝하고 절 사랑하는지도 모르겠고 노력도 안 하는 거 같고 헤어지자고도 안 하고 남자 친구가 무슨 생각인지 통 모르겠습니다. (대전 서울 장거리인데도요) 외롭고 답답합니다. ㅠㅠ 남편분은 연애시절 어떤 분이셨나요? 어떤 모습에 결혼을 하게 되셨나요? 남자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초면에 너무 많은 질문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


오호 20대 초반. 그야말로 인생 최고 멋진 때군요. 하하 어린 남자 친구라... 20대 초반인데 그보다 더 어린 남자 친구라고요~ 하하 부부가 의지하며 서로 사랑하며 평생 살 수 있을까. 이렇게 살고 싶다. 아, 그거면 충분한 것 같은데요. 그 마음이면 말입니다. 넵. 최선을 다해 대답해보겠습니다. 연애를 얼마나 했느냐. 몇 살 때 결혼했느냐. 


음. 그 이야기를 하자면, 남편과는 4개월 만에 결혼했답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궈먹듯이지요. 결혼은 그렇게 누군가가 콩깍지가 씌어 정신없이 서두를 때 그때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이성적으로 이것저것 생각하다가는 아마 결혼이란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제 생각이지만요. 


자, 기왕 이야기 나온 것 한 번 해봅시다. 저는 대학 때 심하게 연애를 했어요. 그를 A라고 합시다. A도 나도 어렸지요. 학생 때니까. 그때가 아마 이십 대 초반이겠네요. 학창 시절 연애 인 거죠. 사랑이라 생각했고요. 사랑했고요. 그러나 그도 나도 어렸으니까 결혼... 그건 아직. 그리고 그와 결혼을 생각하면 같은 학년이니 혹시 여자인 내가 늙으면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도 컸지요. 그때는 대개 네다섯 살 정도 많은 남자랑 결혼했거든요. 그리고 사랑이라 생각했지만 언제나 그 앞에서는 긴장해야만 했고 결혼을 생각할 땐 무언가 그 무언가 불편함이 있었어요. 어쨌든 그렇게 그는 ROTC 라 군대로 갔고 그리고 나는 대기업에 취업했답니다. 첫 사회생활이 재밌기도 하고 대기업 종합기획실에 있다 보니 하하 매력적인 남자들도 많고요. 푸하하하 어쨌든 그래도 나의 마음은 항상 A에게 향해있었지요. 


이쯔음에 이제 혼기라고 엄마는 선을 보라고 다그치시지요. 뭐 그렇게 엄마에게 반항하는 딸이 아니니 꼭 봐야 한다는 사람과 선을 봤지요. A는 군에 있고, 나는 대기업에서 아주 잘 나가고 있고, 그리고 선을 본 남자는 다섯 살 위로 사업가였죠. 그를 B라고 합시다. 그는 그야말로 맘 좋은 아저씨 같았어요. 그리고 사업을 하다 보니 돈도 많았지요. 내가 회사에서 끝날 때면 의례 호텔에서 고급 음식을 사주고는 했답니다. 나랑 무언가 말도 잘 통하고 아는 것도 정말 많고 마냥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참 편한 남자였죠. 그래서 한쪽에선 그런 생각이 들었죠. 결혼은 이런 사람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고민 많이 했어요. 하하 사랑이라면 그러지 말아야 할 텐데 그게 결혼이 되려니 여러 가지 걸리는 것들이 많았죠. 어느 책인가 보니 그렇게 갈등일 땐 한번 적어보라는 거예요. 그랑 결혼했을 경우 걸리는 점. 좋은 점. 즉 장점 단점을 생각나는 대로 일기장에 꼼꼼히 적어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적은 걸 보고 결정하라는 거지요. 그런 걸 하면서 나 자신 너무 웃겼어요. 사랑이라는 것에 이렇게 계산이 끼어들다니. 그래도 결혼이니까요. 


책에서 하라는 대로 잘 적어보았지요. 선 본 남자를 B라고 합시다. B는 내가 좋다며 빨리 결혼하자고 했죠. 그러나 내겐 A가 있는데 덜렁 결혼할 수는 없었지요. 엄마 아빠도 좋아하셨지만 나의 결정이 우선이라고 하셨죠. 잘 생각하라고요. 네. 잘 생각해보았어요.


A는 학년은 같지만 재수를 했기에 나보다 한살이 많아요. 나중에 나이 들어서 내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건 아닐까 가 그렇게 걱정될 수가 없었어요. 그땐 연상의 여자나 동갑의 여자가 그리 흔치 않을 때니까요. 그리고 사랑이라 생각하지만 편하지는 않았어요. 항상 무언가 긴장해야만 하고, 예쁜 모습만 보여줘야 하고 그런 거요. 그리고 너무 그런 쪽만 밝혔죠. 하하 그때는 결혼 때까지는 무엇보다도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그는 사랑한다면서 왜 몸을 안 주느냐. 그렇게 나를 다그쳤고 나는 사랑한다면 결혼 때까지 아껴주어야지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할까? 그게 항상 큰 고민이었지요. 그 애는 항상 어떻게든 그런 쪽으로 유도하려고 했고요. 


B는 나보다 나이가 다섯 살 위고 푸근하고 편하고 무엇이고 해결사 같고 모르는 게 없고 결혼은 바로 이런 남자와 해야 하지 않을까 했어요. 그런데 그는 또 너무 그런 쪽으로 밝히 지를 않는 거예요. 그런 건 결혼 후에 하는 거라고. 나를 아끼기 때문이라고. 나중에 자기 뜻을 알게 될 거라고. 그런데 하도 그런 쪽에 시달림을 받았던 나는 그게 또 이상한 거 있죠. 그랬어요.


그래서 어쨌든 결혼은 생각 못한 채 은근히 양다리로 연애만 하며 회사를 열심히 다니고 있었죠. 그냥 심각하지 않게 A가 어차피 군대에 있으니까 난 그냥 B와 데이트를 종종 했지요. 그러던 차에 잘 아는 분이 C를 소개했답니다. 선이랄 수도 있고 소개랄 수도 있고. 어쨌든 첫 만남이 생각나는 데요. 호텔에서 만나는데 손에 책이 들려있는 거예요. 그게 참 인상적이었답니다. 


그렇게 소개팅에서 만난 C. 나보다 네 살 위인 그는 모든 게 A와 B의 딱 중간이었습니다. 그를 만나고 있었지만 아, 그래선 안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만나다 아무래도 나의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 그만 만나자고 했지요. 별로 여자들에게 NO! 를 당해본 적이 없던 그로서는 꽤 충격이었나 봐요. 그대로 나에게 올인하게 된 거지요. 그가 작정하고 정신없이 결혼으로 몰아붙였답니다. A와 B 사이에서 갈등하던 나는 에잇 모르겠다. 그가 끄는 대로 내버려 두었지요. 그렇게 결혼하게 되었답니다. 이때 제가 스물다섯 남편이 스물아홉이었지요.


결혼 바로 전날까지도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그랬지요. 몇 년씩 연애한 사람들 놓아두고 몇 개월 만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이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그렇게 결혼을 했고 정말 잘못 만났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세월이 흘러 흘러 서로 정이 들어 이렇게 함께 토닥이며 노후를 보내고 있답니다. 


내가 C를 결정했던 순간은 아주 단순해요. 그의 하숙집에 놀러 갔는데 그가 책상 위에 있는 조그마한 꽃나무에 정성껏 분무기로 물을 주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다정하게 보이던지. 몰라요 그때 제 마음을 정했던 것 같아요. 자상하고 나를 무척 좋아하고. 그랬어요. 남자 보는 방법은 나도 잘 몰라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것보다는 남자가 나를 더욱더 좋아할 때. 그때 나의 마음도 많이 편해지고 그리고 생활이 편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기본적으로 착하고 따뜻하고 자상하고. 하하 결혼하면 그때부턴 생활이기 때문에 함께 생활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연애 때랑은 많이 달라요. 편하고 따뜻한 남자가 좋을 텐데. 그 남자 친구를 잘 느껴보세요. 과연 따뜻한가. 나랑 함께 많은 이야기가 통할까. 잘 모르겠으면 저처럼 한번 공책에 깨알같이 적어보세요. 아주 상세하게 아주 사소한 것까지 좋은 점, 걸리는 점 등을요. 그래서 좋은 점이 무언가 걸리는 점 보다 많으면 결정하세요. 하하 


그 어떤 남자가 되었건 일단 결혼하고 나면 그때부턴 여자의 마음자세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삶은 꼭 쉬운 것만은 아니니까요. 저는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최고로 꼽고 싶어요. 나머지는 둘이 힘을 합쳐 열심히 살아가면 되니까요. 아, 답이 되었을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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