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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pr 17. 2020

쑥이 떡이 될 때

말을 할까 말까. 아, 어떻게 말하지? 단골인데 행여 그럴까. 그래도 그 많은 쑥들 중 내 쑥이 내 떡에 들어간다는 보장이 없잖아. 아, 그래도 어떻게 말하지?


나는 갈등 속에 휩싸였다. 무슨 말이냐 청정지역 우리 밭에서 힘들게 따온 쑥. 그걸 방앗간에 가져다주고 떡을 만들어야 하는데 주위에서 말하기를 꼭 지켜봐야만 내 쑥이 내 떡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걸 믿어야지 어떻게 내 쑥이 내 떡에 들어가나 봐야겠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13일 나는 쑥을 한가득 캐왔다. 눈으로 보기에도 상큼하고 싱싱하고 맑고 깨끗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 이렇게 많이 캐보기는 내 생애 처음인데 이 귀한 쑥이 다른 아무 떡에나 섞여 들어가게 할 수는 절대 없다. 그러나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어쨌든 쑥을 캐서 오던 날 낑낑 난 먼저 떡집에 갔다. 몇 되가 되는지 알기 위하여. 저울에 재보며 세 되는 나올 거라 한다. 봉지 안을 들여다보시며 정말 쑥이 좋다고 감탄하신다. 아 여기서 어떻게 '당신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는 것 같은 '떡 하는 걸 지켜볼 수 있을까요?'라는 말을 하느냐 말이다. 그 말은 못 하고 "이걸 일부는 서울에 부칠 건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고 물으니 에고 택배는 이미 끝났다며 아쉬워하신다. "오마 낫 요기서 택배로 다 보내주어요? 제가 우체국 안가도요?" 깜짝 놀라 묻는 내게 웃으며 그렇단다. 오후에 떡을 해서 그대로 택배로 부쳐준단다. 바로 다음날 서울에서 받아 아주 맛있게 드시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맡기고 가란다. 아 어떡하나. "아니 제가 씻어올게요. 떡을 언제 하시는지요? 언제까지 씻어오면 되죠?" 차마 지켜보겠다는 말은 못 하고 떡 만드는 시간에 맞추어 쑥을 씻어오겠다고만 한다. "힘들 텐데..." 하며 요령을 가르쳐주신다. 일단 이 쑥 이대로 봉지 안에 있으면 열이 올라 금방 시커멓게 변하니 어서 냉장고에 넣어라. 선거 때문에 오늘로 모든 택배는 끝이고 16일에야 떡을 할 수 있으니 그때 씻어오라. 훌훌 털어서 물에 잠깐 담갔다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흙이 안 나올 때까지 깨끗이 씻어 건져 와라. 오후에 택배로 보내는 많은 떡을 한꺼번에 하니 아침 열 시까지 가져오라. 네~ 네네 다시 낑낑 쑥 봉지를 들고 집으로 온다.


엄마에게 전화하니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지켜서 있어야만 한다. 특히 그런 귀한 쑥은 그냥 맡기면 절대 안 된다. 아주 강력히 말씀하신다. 당신이 힘들게 캐다 주고 영 이상한 떡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아 그러나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선거 때문에 13일 캐 온 나의 쑥은 지금 냉장고 속에 있다. 오후에 떡을 한다며 10시까지  가져오라 했으니 금방 떡을 하는 건 아닐 테고 열 시까지 가서 오후까지 지킬 수도 없고 아 어떡하지? 그리고 지켜봐야겠다는 말을 감히 어떻게 하지? 아 그래도 귀한 저 쑥이 내 떡 속으로 꼭 들어가야 할 텐데. 떡 주문이 많다던데 어떻게 일일이 어디 들어갈 쑥이라고 나눌 수 있을까? 아 어떻게 하나. 14일 15일 갈등하다 16일 난 드디어 전화를 한다. 그래 할머니를 팔자.


"저... 할머니가 떡 하는 걸 꼭 곁에서 지켜보라 하시는데 죄송하지만 제가 볼 수 있을까요?"


아. 아니나 다를까 말투가 확 바뀌는 느낌이다. 하하 어쩜 같은 말일지라도 참 기분 나쁠 거야. 하는 나의 생각 때문에 그렇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겐 갑자기 변한듯한 싸늘한 음성이 들린다. "많이 기다려야 해요." "괜찮아요. 기다릴 수 있어요.""너무 많아서 순서가 어찌 될지 몰라요. 기다릴래면 그러세요.""아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저 그래도 쑥은 아침 열 시까지 가져가야 할까요?"조심조심 아 정말 미안하게 묻는다."그럼 한시까지 오세요. 그런데 물기 쏙 빼와야 합니다.""네. 네네. 깨끗이 씻어서 물기 쏙 뺀 후 가져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해결되었다. 오늘 드디어 내가 캔 쑥이 떡이 된다. 한시까지 가려면 열한 시 반에 시작하면 되겠다. 잘 씻어 소쿠리에 담아 삼십 분 정도 말리면 되겠다. 아니 넉넉히 말리자. 열한 시에 시작하자. 두 시간에 걸쳐 정성껏 쑥을 씻고 물기를 완전히 빼 갖다주자꾸나. 파이팅!

  


"아이참 할머니들은 왜 그런지 몰라요. 꼭 지켜보라고 하셔서. 죄송합니다."


너무도 쑥스러운 나는 쑥을 가져다주며 이제부터 가지 않고 지켜볼 것임을 슬쩍 할머니 탓을 하며 자리 잡고 앉는다. 바쁘게 일하느라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분들 아랑곳 않는다. 정말 바쁜 모습이다. 내 쑥이 커다란 양은 함지박에 담긴다. 술술 손으로 섞은 후 방아 기계 위로 넣어 사장님께서 휙휙 손으로 저으며 기계가 드르르릉 돌아간다. 밑으로 대충 갈린 쑥과 쌀가루가 쏟아져 내린다. "아, 이런 건 사람들에게 어릴 때 방앗간을 추억하게 하여 매우들 좋아하는데 사진을 좀 찍어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묻는다. "블로그 하세요?" 앗, 사장님께서 세련되게 물어봐주시더니 맘대로 찍으라 신다. 곁에서 아내 되는 분은 "아, 이 지저분한 데를 무얼 찍으라 그래." 툴툴대지만 사장님 그냥 가만히 계신다. 음하하하. 감사합니다. 난 바야흐로 쑥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카메라와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옛날엔 방앗간이 어마어마하게 컸는데 제가 어려서 그렇게 크게 느껴졌나 봐요." 하하 하릴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바쁜 그분들 그저 웃기만 할 뿐이다. 난 핸드폰 카메라를 묵음으로 해두고 찍는 듯 안 찍는 듯 그들 거슬리지 않게 아주 조용히 나의 쑥을, 나의 떡을 찍는다. 오호호홋.



우리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있는, 우리가 입주하기 전부터 상주하고 있던 떡집. 언제고 우리는 이 집을 이용하니까 사장님도 그 아내분도 아주 잘 안다. 전화만 하면 동호수 말 안 해도 딱 알 정도로. 그런 단골분들에게 난 죄를 짓는 거다. 그걸 떨구기라도 할 듯 난 이분들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떡 하는데 동참한다. 아, 너무 열심히 일하는 부부. 십여년 단골로 우리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부부.


"커피 어떤 거 좋아하세요? 차가운 거? 뜨거운 거? 라테? 카푸치노? 제가 사 올게요."


난 진심으로 이분들 잠시 쉬면 좋겠다 싶어 그렇게 말을 하니 사장님은 카운터 아래 선반에 놓인 네스까페 커피통을 가리키며 커피는 여기 있다 하신다. 그래도 자꾸 내가 물으니 아내 되는 분이 "우리 정말 괜찮아요. 커피 마실 시간 없어요. 이 많은 쑥들 빨리 떡 만들어야 해요." "아, 네. 그렇군요. 그럼 빵이 낫겠군요. 떡 하셔도 빵은 드시지요?" 하하 혹시 떡집은 빵 안 드실까 난 별걸 다 묻는다. 나도 참! "아니 괜찮아요." 아내분이 괜찮다고 거듭 말한다. 아, 커피는 아니다. 그냥 사 올까 하다가 묻기를 잘했다. 커피는 당장 마셔야 하지만 빵은 좀 지나고 그들 편한 시간에 드셔도 다. 난 일단 떡집을 나온다. 옆에 있는 파리 바게트에 가니 이제 막 빵이 나오고 있다. 빵 냄새가 너무나 고소하다. 막 나온 따끈따끈한 빵을 사들고 간다. "이거 이따 휴식시간에 드세요~"하며 카운터 옆에 두고, 다시 나의 떡이 어디까지 되었나 구경한다. "할머니들은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옛날을 추억하며 주장하시니 들어드리려고요. 죄송해요."난 죄송해서 또 주절주절 말한다. "아니 할머니들은 본래 그래요. 우리가 이해해야지요." 앗. 도리어 사장님 아내분께서 이해하는 아량의 마음을 보여주신다. 감사 또 감사. 하하




쑥과 쌀이 다 갈아지자 이번엔 찌는 과정이다. 사장님께서 이제 우리 떡을 찌니 여기 미끄러운데 조심해서 안으로 들어오라 하신다. 하하 "넵.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 떡 제대로 배웁니다." 하고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민다. 사장님 잠깐 손을 멈추며 포즈까지 취해주신다. 드르르륵 방아 기계로 갈아진 쑥과 쌀은 이렇게 나무 찜기로 옮겨진다. 그리고 팍팍 한 통에 한 되씩 쪄지는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방앗간 한쪽이 정말 뿌옇게 김이 서린다. 그런 중간중간 사람들은 쑥을 가져다 놓고 동호수를 적어놓고 그대로 나간다. 하하 이렇게 떡 앞에 지키고 있는 자 오로지 나 하나뿐. 하이고 나두 참참참!!! 요즘 같은 쑥 계절엔 사람들이 저마다 쑥을 캐오고 그대로 놓고 나간단다. 그걸로 온갖 종류의 떡을 한단다. 쑥절편, 쑥 카스텔라, 쑥 찰떡, 쑥 인절미... 나는 쑥 찰떡이다. 찌는 작업이 끝나니 아내 되는 분께서 손수 나를 이끌며 이리 와보란다. 이게 아주 중요한 작업이라고.


"아하. 절구통요?" 인절미 만들 때 쾅쾅 오래오래 찧는 그 역할을 해주는 전기 절구통이란다. 드드드드 돌아가며 찹쌀 쑥 덩이를 찰지게 만든다. 커다란 나무절구로 팡팡 찧는 효과를 준단다. 그렇게 빵빵 돌려진 뜨거운 찹쌀 쑥 덩이는 이제 사장님 손에 의해 떡판 위로 확 들어 올려진다. 이것은 남자만이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힘든 작업이란다. 사장님이 낑낑 그러나 힘차게 전기 절구통에서 찹쌀 쑥 덩이를 끌어내어 떡판 위에 척척 올린다.




아, 이제 두 분의 마치 장인 같은 손놀림을 보았으니, 그렇게 떡판 위에 놓인 거대한 찹쌀 쑥 덩이는 아내분의 손놀림으로 사사사삭 한 조각씩 잘라내어 지고 그것은 곁에 계신 사장님 손으로 넘겨지며 유니랩으로 착착 싸이는데 그렇게 조금 후에 세 통의 유니랩으로 싸인 쑥찰떡이 완성된다. 여기에 콩가루를 따로 사서 버무려 먹으면 바로바로 쑥 인절미가 되는 것이다. 그냥 이 찰떡만 먹어도 아주 맛있다.


집으로 가져갈 것 한 되는 종이박스에 담기고 서울로 보내질 것은 아이스박스에 담겨 그대로 택배로 보내져 바로 다음 날 말랑한 떡을 받아 드시게 되는 것이다. 시어머님 친정엄마 모두 모두 나의 손으로 캔 쑥으로 만든 쑥떡을 드시게 된다.


참으로 열심히 일하는 떡집 사장님 부부. 그래도 다행이다. 기분 나쁘지 않게 떡 만드는 과정을 함께 했다. 감사하다. 할머니 걱정과 달리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이분들 떡 하느라 너무 바쁘다. 그런 어떤 꼼수를 부릴 여지가 없다. 괜히 의심한 것이 너무나 부끄럽다. 쑥은 오는 대로 착착 정신없이 떡으로 만들어져 박스에 또 아이스 박스에 차곡차곡 담기고 있었다. 하하 그래도 즐겁게 함께 했다.


"이제 큰일 난 거예요. 떡 만드셔야죠. "


하하 아내분께서 나를 보고 웃으며 말한다. 이제 대단한 걸 배웠으니 와서 떡 만들라고. 기분 좋게 내게 농담하시는 거다. 무엇보다 이분들 기분 나빠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할머니의 의심도 확실하게 풀어드릴 수 있어 더욱 기쁘다. 사람은 일단 믿으면 되는 것인데. 괜한 의심으로 갈등하고 고생했다. 푸하하하. 그래도 가길 잘했다. 그럴걸~ 그럴걸~ 계속 그러기만 했다면 아직도 의심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젠 무조건 믿자.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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