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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pr 19. 2020

남편 생일에 부부 싸움했던
아내 생일

그랬다. 난 바로 얼마 전 남편 생일에 부부싸움을 했다. 그리고 오늘 내 생일이다. "그날은 너무 했지?" 하하 그가 웃으며 말한다. 머쓱한 나는 그냥 웃을 뿐. 그때 그 잠깐의 삐걱임으로 하루를 온전히 망쳤던 그때 그날. 미안해 썼던 글은 와우 메인에 등극하며 조회 수가 5만 근처까지 가는 기염을 토했다. 멋없이 흘러가버린 하루가 아깝지만 어마어마한 조회 수의 글을 남겼다. 푸하하하


https://brunch.co.kr/@heayoungchoi/1357


그런 전적이 있는 그러니까 바로바로 '남편 생일에 부부 싸움했던 아내 생일'이다. 미안하기도 하고 하루를 엉망으로 만든 전적이 있으니 그저 아무 기대 없이 가만히 있을 밖에. 그가 자꾸 웃으며 놀린다. "그 날은 너무 했지?" 난 계속 웃을 뿐이다. "오늘 뭐 하고 싶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묻는다. 음.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말. "아무것도 안 하기." 하하 어떻게 그런 말이 생각났을까? 남편보다 항상 일찍 일어나는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며칠 전 벗겨놓은 침대 시트. 바닥 깔개 하며 이불 하며. 해님이 쨍쨍 맑은 날에 해야 바짝 마르기에 우중충한 날을 피하다 보니 오늘까지 왔다. 잊을까 봐 다용도실 앞 부엌 바닥에 뭉쳐놓은 그 빨래 더미가 눈에 들어왔지만 '아이, 오늘은 특별한 날인데. 빨래 안 해.' 그런 심뽀로 눈을 돌렸던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물으니 빨래 안 하는 지극히 합당한 이유를 만들고 싶어 생일 선물로 '아무것도 안 하기'가 절로 튀어나온 것 같다. 그러면서 나의 마음도 굳혀진다. 그래. 오늘 아무것도 안 하기. 게으름 맘껏 피우기. 오케이. 


문득 옛날 아주 옛날 우리들의 기막혔던 휴가가 생각난다.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닌 휴가가 많았건만 그러나 지금까지도 휴가 하면 가장 멋지게 생각나는 건 바로바로 '아무것도 안 하기' 휴가다. 그때 유행했던 책방에 가서 시리즈물을 잔뜩 빌려다 놓고 본격적 '아무것도 안 하기'가 시작되었으니 오로지 재밌는 소설책에 코를 박고 배가 고파지면 참고 참다 도저히 못 견디겠는 사람이 하기. 청소도 지저분한 게 도저히 못 견디겠는 사람이 하기. 하하 뭐 그렇게 정해놓고 집을 개판으로 만들며 그저 소설책에만 코 박고 있던 그 휴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하튼 난 '아무것도 안 하기'에 돌입하였으니 푸하하하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빨랫감이 널려 있어도 눈앞에 먼지가 퐁퐁 날아다녀도 난 오늘 꿈쩍도 안 해. 그럴수록 다가오는 해야 할 많은 일들, 옷장 정리 집 정리 화장실 청소 등등등. 에잇 모르겠다. 난 오늘 아무 일도 안 해. 


그래도 생일인데 미역국은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남편이 기초만 해달라 미역국 맛있게 끓여주겠노라 큰소리 빵빵 친다. 시금치 된장국이며 김치찌개며 된장찌개며 그 기초를 해서 불 위에 얹어놓으면 대단한 요리사 인양 남편의 손길이 가는데 얼려놓은 땡고추에 파에 새우젓 등으로 그 특유의 감칠맛 내는 마무리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부엌일을 하고 있다. 어차피 은퇴하여 24시간 함께 있는데 나 혼자만 헐떡이며 밥을 차려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영악한 내가 살살 살살 유도하여 그를 부엌으로 끌어들인 결과이다. 밥시간이 되면 부엌에서 함께 바쁘다. "내가 아무래도 전생에 요리사였나 봐."라는 말을 즐겨하며 그는 마지막 자기의 손길로 맛있게 변하는 음식 맛에 도취되어 있다. 아직 미역국까지는 진도가 안 나갔는데 그가 기초만 해달라 마무리를 하겠노라 큰소리치는 것이다. 오케이.


어젯밤 담가놓은 미역을 바락바락 씻어 채반에 건져 놓고 냉동실에서 꺼내놓아 알맞게 녹은 소고기를 냉장고에서 꺼내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볶기 시작한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잘 볶아지면 그때 물기 쏙 빠진 미역을 투하 달달달달 더 볶는다. 한쪽에서는 물을 끓인다. 잘 볶아졌을 때 팔팔 끓는 물을 붓는다. 그리고 불을 줄인다. 하하 요기까지가 나의 기초. 이때 남편이 등장해 마지막 맛을 내는 것이다. "여보, 그렇게 새우젓을 아무 데나 쓰는 건 아니야." 아무리 말해도 새우젓과 땡고추와 대파가 내는 독특한 맛에 빠진 남편은 "어허 보조가 지금 주방장에게 무어라 하는고?" 하면서 아무 말 못 하게 한다. 여하튼 그는 요리를 아니 밥하기를 즐기고 있다. 요란뻑쩍 요리는 또 즐기지 않는다. 그저 된장찌개에 매일 먹는 밥. 그 소박한 밥상을 최고 밥상이라 여기는 그. 그가 마지막 맛을 낸 미역국이 완성된다. 


그렇게 밥만 배가 고프면 해 먹을 뿐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컴퓨터를 즐기고 책을 읽고 나도 컴퓨터와 소설책을 즐긴다. 빈둥빈둥 하루가 간다. 그래도 된다. '아무것도 안 하기' 마음 편한 그거가 하루를 사로잡는다. 그렇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게으름을 즐기고 있는데 딩동 벨소리. 택배기사다. 오마 낫. 우아아아아아 번쩍번쩍 반짝이는 3번 우드가 배달된다. 오홋? 아니 아무것도 신경 안 쓰는 듯하던 그가 오늘 날짜에 딱 맞추어? 나의 3번 우드는 많이 낡았다. "아무래도 채가 낡아서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안 나가는 것 같아."라고 종종 투덜댔는데 전혀 신경 안 쓰는 듯하던 그가 조용히 나의 생일에 맞추어 준비한 자상 함이라니. 정말 비교되는 남편 생일과 아내 생일이다. 그런 특별한 날에는 이제 정말 조심조심해서 절대 하루를 망치지 않도록 해야겠다. 남편 생일 그날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럼 난 그 사소한 것으로 입을 일 미터나 쑥 내미는 그런 어리석은 씸통을 부리지는 않을 텐데. 그러나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 지나간 건 할 수 없고 이제부터다. 그래. 지금 이 순간 망치지 말고 귀하게 하루하루 살아가자. 파이팅!!! 



남편 생일에  


아내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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