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뜰 May 03. 2020

호박 모종이 얼어 죽었다

은퇴한 남편과 어설픈 밭농사


한 개에 오백 원씩 아홉 개의 호박 모종을 사다 정성껏 심었는데 오늘 가보니 몽땅 죽었다. 아주 처참하게. 종묘상 사장님은 말했었다. 봄날인데 너무 추우니 집에 두었다가 따뜻해지면 심으라고. 아니면 위에 부직포를 덮어주라고. 날씨가 너무 춥다고. 그 말을 전했지만 이런 걸 잘 아는 S는 괜찮다고 했고 그래서 그냥 심었다. 봄인데 날씨는 곧 풀릴 테니까 하면서. 그래도 위에 덮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 오늘만 추운 거지 내일이면 곧 따뜻해질 텐데 그러면 또 그걸 걷으러 어떻게 오겠느냐며 괜찮을 거라 하여 그래 언제 또 오겠어. 우린 그냥 왔다. 그리고 4월도 한참 지나 오월로 다가가는데 그럼 따뜻하면 그 덮어놓은 걸 어쩌겠어. 그렇게 그냥 왔더니 아흑. 다 죽어버렸다. 따뜻한 부직포를 위에 덮어줄걸 후회가 막심하다.  





얼어 죽은 걸까. 심으면서 거름을 함께 주어 타버린 걸까. 남편은 후자를 의심한다. 심을 때 거름을 주어도 되는 걸까? 어쨌든 호박은 몽땅 죽어버렸다. 에고 미안하고 불쌍하고. 저 새파랗던 잎이 까맣게 타들어간 모습이라니. 우리는 밭농사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너무나 많이 하고 있다. 다행히 머위 잎은 살아있지만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물만 살짝 준다. 





부직포 밑에서도 끈질긴 생명력 잡초는 살고 있나 보다. 밑에서 안간힘을 쓰는 듯 위에서 보는 부직포는 빵빵하게 부풀어 있다. 콱콱 박아놓은 핀은 위로 솟아있기도 하고  바람에 날아갔는지 주변에 널브러져 있기도 하다. 주워서 다시 망치로 콱콱 박아놓고 삐죽이 솟은 놈들도 망치로 쾅쾅 두들겨 박아준다. 땅 속에 오래오래 콱 박혀있으라. 그깟 잡초의 안간힘에 맥없이 뽑혀버린단 말이냐. 힘을 내!




남편은 나무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보기 좋게 가지치기한다. 나무 아래 잡초들도 제거한다. 그이나 나나 어설픈 농부의 손길은 바쁘다. 어색하다. 그래도 무럭무럭 나무들은 잘 자라고 있다. 햇빛은 쨍쨍 바람은 쌩쌩이다. 




씨를 뿌린 것들은 무언가 조금씩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볼수록 호박 모종 모두 죽은 게 안타깝다. 그날 부직포를 덮어주기만 했어도 추위에서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을. 아, 무슨 봄 날씨가 이렇단 말인가. 아쉽고 미안하고. 에구. 





음나무에는 다시 초록 잎이 났지만 그때 막 올라오는 새순을 땄을 때와는 많이 다르다. 이것도 먹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조금 따 본다. 똑똑 기분 좋게 떨어지던 그때와 많이 다르다. 때를 맞추어 많이 따주어야 하나 보다. 이젠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것 같다. 너무 억세다. 



우리 옆에서 탕탕탕탕 듣기 좋은 소리가 들린다. 목조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온통 나무라서였을까? 망치를 두들기는 소리가 쨍쨍 앙칼지지 않고 부드럽다. 목조건물은 못을 쓰지 않고 나무끼리 짜 맞춘다더니 혹시 그런 식으로 짓는 걸까? 분명 쇠못 박는 소리는 아니다. 퉁퉁 퉁퉁 나무 두들기는 소리일까. 하하 아, 참 듣기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리타분하게 학보사가 뭐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