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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y 18. 2020

시카고에서 온 글


1960년대 서울 광화문 한 복판 경기여고 교문과 딱 마주하고 있던 서울 덕수 국민학교를 함께 다녔던 나의 친구들. 시애틀의 사진 잘 찍는 아이, 시카고의 글 잘 쓰는 아이, 아르헨티나의 사업 잘하는 아이, 서울의 산을 잘 타는 아이 하하 그리고 나. 그중의 시카고의 글 잘 쓰는 아이가 우리의 단톡 방에 글을 올리면 나는 시카고에서 온 글이라고 하여 이 곳에 올리고 이렇게 댓글이 올라왔어. 이렇게 네 글을 좋아들 한다. 반응을 알려준다. 나의 거의 모든 글 제목에 쓰이는 꽃 사진을 찍어 보내주는 시애틀의 사진 잘 찍는 아이가 보내준 사진으로 이 글 제목도 장식한다. 나의 글에 반응해주며 내가 계속 글을 쓰게끔 해주는 고마운 친구들. 내가 '슬쩍 두 개!'라는 기차 이야기를 올리자 시카고의 글 잘 쓰는 아이 역시 기차를 추억하며 글을 보내주었다. 




아주 오래전 덕수 시절에 방학 때면 할아버지와 함께 논산에 사시던 고모집으로 가서 일주일 정도 놀다 오곤 했었는데 그때 기억을 해보면 기차는 급행과 완행 두 종류였고 급행은 디젤 기관차였지만 완행은 생긴 것도 험악한 증기기관차였어..


난 주로 완행을 이용했는데 논산은 호남선을 타야만 했고 내 기억으론 대전까지 4시간 정도 걸린듯해. 경부선과 호남선이 대전에서 갈라지는데 경부선은 그대로 갔지만 호남선은 서대전역까지 간 다음 기관차가 뒤로 연결되어 그때부터 역방향으로 갔어.. 한 시간 반 정도 더 가면 논산역에 도착하는데 토털 5시간 반 정도 걸렸어.. 따라서 대전역은 경부선과 호남선이 갈라지는 교통의 요지였고 각종 화물차등이 함께 이용하는 바람에 대전역 정차시간이 좀 오래 걸렸어.. 더욱이나 호남선 완행열차는 거의 삼십 분 정도는 연착했던 거 같아. 아마 그래서 그때도 가락국수 부스가 있었던 거 같아..


올 때는 대전역 오촌 아저씨네 집에서 하루 묵고 새벽 네시에 출발하는 대전발 서울행 열차를 이용하곤 했지... 그 이유는 논산에서 타면 목포에서 올라오는 호남선이라 자리가 항상 만석이라 서서 와야하기때문(5시간을 넘게 서서와야하는 게 장난 아님.. 운 좋게 중간에 내리는 사람이 옆자리에 앉아있으면 중간에 앉을 수도 있지만 확률이 적기 때문) 새벽에 출발하는 대전발 기차는 빈자리로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발 빠른 나는 앉아갈 확률이 높아 오촌 아저씨네 들러서 왔었어..


왜 대전까지 아무리 완행이지만 네 시간이나 걸렸냐 하면 조그만 역전마다 다 서고 속도가 빠른 급행열차가 뒤에서 따라오면 역에서 정차하다가 급행열차 지나가야 다시 출발하곤 해서 시간이 많이 걸렸던 거 같아.. 덕분에 지루한 시간을 이정표 보고 외워서 지금도 그 당시 역전 이름을  순서대로 다 외워.. 서울역-남영. 용산. 노량진. 영등포. 군포. 부곡. 안양. 서정리. 오산. 평택. 소정리. 천안. 내판. 매포. 조치원. 전의. 전공 부강. 회덕. 대전...ㅎㅎ


영등포를 지나면서부터 초가집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다 안양을 지나면서부터는 논밭과 초가집 파란 하늘 뭉게구름만이... 증기기관차에서 뿜어내는 칙칙폭폭 소리와 검회색 연기.. 터널 들어갈 때의 매캐한 내음.. 작은 역에 정차할 때는 까까머리 내 또래애들이 창밖에서 빈 맥주캔에 생수를 담아 1원에 팔던 생각이 나네.. 기차 안에선 가끔 지나가는 김밥 아저씨. 삶은 계란. 사과. 과자. 목장우유. 카스텔라빵. 미루꾸캬라멜. 칠성사이다. 스페시콜라. 약과.. 를 담은 작은 수레를 끌고 가는 아저씨.. 그때는 홍익회 복장도 아니고 그냥 감청색 작업복 입었던 거 같아..


또 꼭 한 번은 나타나는 구슬픈 트롯을 뽑고 돈 걷으러 다니는 어린 내 또래의 소녀.. 공포 분위기 조성하는 칼쿠리 손 상이군인... 참 아련한 추억이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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