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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y 19. 2020

골프 은퇴한 남편과 함께

버디 두 개면 잘했다 해야지. 그럼. 


남편과 함께 직장 동료면서 여러 가지로 잘 통해 우리 부부와 함께 자주 공을 치는 K가 말한다. 멋진 샷을 자랑하며 씽글을 갈동 말똥 80대 초반을 달리던 그들. 두 번째 버디 기록에 우리 모두가 환호하자 K가 자조 섞인 말로 응대한다. 까짓 두 개. 밥 먹듯 하던 버디인데. 그러다가 잠깐 날아갈 듯한 기세를 팍 꺾으며 수긍한다. 버디 두 개면 잘했다 해야지. 그럼.


그렇다.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는 은퇴한 나의 남편도 그녀의 남편도 툭하면 기가 꺾인다. 인정해야 해. 인정해야지. 나이가 들면 실력이 준다는 걸. 해가면서. 지금은 부부가 공을 치지만 우리의 남편들이 펄펄 날아다닐 땐 부부동반 라운딩? 천만에 만만에 말씀이다. 부부 서클에서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일부러 부부가 팀을 이뤄 친다는 것은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다. 재미없다! 가 그 이유였다. 쭉쭉 빵빵 잘 나가는 남자들끼리 돈내기를 하면서 빵빵 샷을 날려야 신이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뻐근하다는 허리 하며 지쳐가는 모습 하며 하하  나이 드는 모습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래서일까? 이젠 부부 함께 아주 편안하게 공을 친다. 


자기네 부부랑 칠 때가 가장 편해. 
그럼 그럼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얼마인데? 


그렇게 그녀와 나는 속삭인다. 그녀도 나도 나이가 들어간다. 그녀의 남편도 나의 남편도 나이가 들어간다. 직장동료들이 회사명 앞에 OB를 달고 부부 함께 하는 서클은 한 달에 한 번뿐. 그 나머지 기간엔 이렇게 맘 잘 통하는 부부가 따로 연락해 공을 친다. 그녀와 나는 커피, 떡, 빵, 토마토, 남편들이 지치지 않도록 라운딩 중 먹을 맛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그렇게 지난 세월을 추억하며 룰루랄라 공을 친다. 느릿느릿 여유롭게. 


그래도 우리 서방님들 아직 팔팔하다. 빵빵~ 샷이 멋지다. 파란 하늘을 가르고 쌩 날아가는 공. 와우 나이스 샷. 그녀와 나는 무지막지 크게 나이스 샷을 외쳐댄다. 하하 이제 남편들이 우리와 함께 공을 친다. 그게 편하고 좋은 가보다. 우리는 물어본다. 괜찮아요? 우리랑 치는 거? 재미는 없지. 하하 재미는 없단다. 그래도 그렇게 못 칠 건 또 아닌가 보다. 


"자 오늘 공부한 거 말해보세요."

"공을 끝까지 본다."


하하 푸하하하 요청하는 남편들도 크게 답하는 아내들도 유치하기 그지없다. 나이는 들어도 코치는 계속된다. 남편들에게 아내들은 그저 가르침의 대상인가 보다. 샷을 하려고 어드레스를 하고 있는데 방향이 어딜 향하고 있어? 공이 왜 그렇게 오른쪽으로 가 있어? 왼쪽으로 좀 더! 하. 상대방 샷을 망치게 하려면 공을 막 치려고 할 때 훈수를 두라던데 남편들은 그것도 모르나. 그래도 빵~ 공이라도 잘 나가면 웃음으로 마무리되지만 공이 코 앞에 팍 고꾸라진다? 잔소리는 그야말로 고공을 난다. 하. 언제까지 그녀와 나는 이렇게 남편들의 밥으로만 있을까? 우쒸. 틈만 나면 속닥속닥. 아이. 저렇게 잔소리가 심하냐. 요즘 느는 게 잔소리야. 그래도 참자. 좋잖아 남편과 함께 하니까. 여러 가지가 편해. 돈도 안내. 운전도 안 해. 하하 그래그래 참읍시다. 넵 파이팅. 착한 그녀와 나. 넵. 알겠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크게 빵빵 외쳐댄다. 푸하하하 남편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헤헤. 


동코스 2번 홀이 끝나고 디디디 디 편백 나무가 양 옆에 가득한 오르막 길을 카트에 앉아 올라가는데 옆에 불쑥 등장하는 말쑥한 개. 앗. 그 나이 많은 개는 어디로 가고? 언제부턴가 그 힘없고 늙은 개가 보이지 않더니 이렇게 힘이 팡팡 넘치는 듯한 잘생긴 젊은 개가 등장했다. 어디로 갔을까? 그 힘없는 모습으로 느릿느릿하면서도 항상 우리 곁에 있던 그 나이 많은 개는? 


세월은 그렇게 흘러간다.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신나게 공을 치러 왔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공을 칠 수 있을 때 맘껏 치자고 한다. 언제 어떻게 될지 누가 알꼬. 잔소리해도 괜찮아 여보들아. 잔소리 맘대로 해. 아프지만 말고 이렇게 오래오래 우리랑 함께 공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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