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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y 24. 2020

상추씨가 상추 되어



상추씨 쑥갓 씨 시금치 씨를 흙 위에 솔솔 뿌렸는데 와우 그 씨가 바로바로 진짜 우리가 먹는 상추, 쑥갓, 시금치가 되어있다. 오홋. 신기해라. 그러나 수확해서 먹기엔 아직 너무 작다. 좀 더 자라게 한 후에 먹어야겠다. 물을 많이 주어야 무럭무럭 자랄 텐데 그러지 못해서인가 상추가 너무 작다. 그래도 예쁘게 잘 자라고 있다. 그뿐인가 쑥갓도 시금치도 얼마나 예쁘게 자라고 있는지. 코딱지만 한 씨가 이렇게 변하다니! 





이런 채소를 기르는데 가장 난이도가 심한 일은 잡초 제거란다. 오늘 그걸 해야 한다. 궁둥이에 졸졸 붙어 다니는 둥근 의자를 달고 이동해 가며 풀을 뽑아주는데 아 이거 장난 아니다. 세상에 아직 너무 여린 상추와 쑥갓. 시금치. 그 사이 나와 있는 풀들을 조심조심 풀만 정확히 골라내 뽑아내야 하는 것이다. 여차하면 상추가 뜯기고 쑥갓이 뜯긴다. 게다가 쑥갓인지 쑥인지의 분간도 어렵다. 모두 쑥 모양으로 너무 똑같이 생겼는데 이제 쑥은 잡초, 쑥갓만 남겨야 하는 것이다. 나름 골라낸 해결책은 쑥갓은 앞뒤가 다 파랗고 쑥은 뒤집으면 약간 흰색이라는 것이다. 엣 헴. 




물을 듬뿍 자주 와서 주지 않았기 때문일까. 머위잎도 그때 그대로다. 별로 크지 않았다. 좀 더 자라도록 내버려 두고 한참 후에 아니면 내년부터 따 먹도록 해야겠다. 거름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새하얗게 죽어버린 호박 모종을 파내고 새로 산 모종을 심었다. 처음 살 땐 딱 두 잎 정도의 아주 어린 모습이었는데 그 안에서 무럭무럭 자랐는가 보다. 모종 자체가 이렇게 크다. 그래도 값은 똑같이 500원. 8개를 사서 두 개씩 네 구덩이에 심는다. 처음엔 맘 좋은 아저씨가 1개 덤을 주어 9개 심었는데 이번엔 그 아저씨의 딸인가 본데 덤은 하나도 없다. '전엔 덤을 주었는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꿀꺽 삼키고 도리어 "아니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이리 좋은 날 데이트 안 하고 여기 계세요?"라는 말을 한다. 푸하하하 그만큼 그녀는 참 예쁘다. 할메할베 득시글인 시장 한구석 종묘상 가게 안에만 있기에는 그녀가 너무 젊고 예쁘고 봄날은 너무 화창하다. 


신나게 잡초를 제거하고 있는데 헉. 이게 뭐야? 뱀? 아니다. 뱀이기엔 작고 지렁이이기엔 굵고. 흐익. 꿈틀꿈틀 이 땅에서 저 땅으로 꼬챙이 같은 앞인지 뒤인지로 쑤시고 들어간다. 하이고 오오오 하마터면 나의 호미질에 끊어질 뻔했다. 꿈틀꿈틀 아이 징그러. 무슨 지렁이가 이렇게 굵을까? 그렇게 커다란 지렁이는 수시로 등장하여 나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흐익. 무서워. 



사과일까 복숭아일까 대추일까? 모르겠다. 우리가 심은 나무들 중 하나겠지. 감은 아닌 것 같고. 이런데 관심 없는 나는 백번 천 번 남편이 가르쳐줘도 이게 사과인지 복숭아인지 왕대추인지 헷갈린다. 그냥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과일나무! 그 정도면 된다. 할머니와 산책 나온 이웃집 강아지가 멍멍 멍멍 우리를 보고 반갑다고 인사한다. 아, 경치도 좋고, 공기도 맑고, 밭일도 할만하다. 초등학생 시절 일기 마무리처럼 '보람찬 하루를 보냈습니다.'가 된다.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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