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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un 02. 2020

속 좁은 남자

이건 정말이지 싸움할 건도 안된다. 어떻게 이런 걸 가지고 싸움을 할까? 그런데 우리는 오늘 싸웠다. 아니, 대놓고 싸웠다기보다는 찬바람 쌩쌩 부는 냉전이랄까. 그것 좀 양보하면 안 되나? 남자가 뭐 그래? 속 좁은 남자. 흥!


요즘 대청소를 하고 있는 나는 한꺼번에 몰아서 하지 않고 하루 한 코너씩 하고 있다. 우리 집 거실 한 구퉁이에는 두꺼운 유리의 귀엽고 예쁜 탁자가 있는 데 남편은 항상 그 아래 신문을 가득 쌓아놓는다. 요즘 신문을 돈 내고 보는 집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서비스로 많은 신문을 함께 준다. 그래서 아침마다 현관문 열고 들여오는 신문은 그야말로 한 묶음이다. 즉 신문이 금방금방 쌓여간다는 것이다. 그의 역할은 그 신문이 탁자 아래 가득 차 더 이상 넣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모두 꺼내 노끈으로 묶어 분리수거 날 1층에 내려다 놓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그 예쁜 탁자 아래 가득 쌓여있는 신문더미가 눈에 들어온다. 지저분하다. 그렇지. 저기를 깔끔하게.


그곳에 쌓여있는 신문들을 다 꺼내 뒷베란다 재활용품 모아 두는 곳으로 간다. 오늘 신문만 빼고. 코스트코 커다란 쇼핑백을 분리수거통들 사이에 놓고 신문을 넣는다. 그렇지. 이대로 모아가다가 분리수거 날 쇼핑백 그대로 들고나가면 되겠군. 더 이상 남편이 그 모든 걸 노끈으로 묶느라 낑낑대지 않아도 되겠어. 캬~ 얼마나 기막힌 아이디어냐. 거실로 와보니 오늘 신문만 남겨진 탁자는 얼마나 깨끗한지. 뒤적일 필요도 없이 탁 꺼내면 오늘 신문. 흠흠흠. 아무리 봐도 너무 괜찮다. 역시 난 정리의 달인. 하하 안 해서 그렇지 일단 발동 걸리면 요렇게 잘한답니다. 엣 헴.


짜잔. 그런데 그가 일어났다. 그걸 보더니 아니 신문들이 어디로? 저기 뒷베란다에. 그리고 여긴 깔끔하게 오늘 꺼만. 감탄할 줄 알았던 그가 헉. 감탄은커녕! 세상에 타박을 한다. 이럴 수가! 왜 그리 불편하게 하느냐고. 여기 쌓아가다 분리수거하는 날 노끈으로 묶어 나가면 되는데 왜 굳이 뒷 베란다로 가져다 놓느냐고. 그게 더 불편하다고. 세상에. 아니 저 깔끔한 게 안 보인단 말인가? 무엇이 불편하지? 아, 수북이 쌓인 신문더미는 얼마나 지저분했는데. 아. 이거 아니잖아. 


그 후 뒷베란다만 나갔다 오면 투덜댄다. 괜히 신문을 놓아 지저분하다. 무얼 꺼내려도 불편하고 이것도 저것도 불편하다. 내참 불편할 거 하나 없는데. 내가 볼 때는 쇼핑백에 모아놓았다가 분리수거 날 노끈으로 묶는 수고도 없이 그대로 들고나가니 얼마나 편한가? 코스트코 백이 아무리 튼튼하다 해도 신문 무게를 견딜 수 없다. 이건 아니다. 잔소리가 이어진다. 아니 무어 그렇게 오래 가나? 일주일마다 돌아오는 분리수거 날 그때마다 그대로 들고나가면 되잖아. 그럼 너무 무거울 것도 없지. 내가 볼 때는 지극히 합당한 거 같은데 그는 영 못마땅해한다. 왜? 왜 그럴까? 저 깔끔한 게 안 보이는가? 하이고 참.


아니 거실에 그 무거운 신문을 가득 찰 때까지 쟁여놓아야만 하느냐 말이다. 구문을 읽고 싶어서? 그땐 베란다에 가서 가져오면 된다. 신문이 많아 오늘치 읽기도 바쁜데 옛날 꺼까지 읽게 될까? 그래도 그는 불편한가보다. 도대체 뭐가? 우쒸. 이것저것 투덜댈 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나의 합당한 이유를 들어 그를 설득하려 하지만 그는 영 그런 상태가 싫은가 보다. 아. 저렇게 맘이 좁을 수가? 그게 무어 큰 일이라고. 그 사소한 것에 저렇게 볼 때마다 투덜대느냐 말이다. 뒷베란다는 안 보이는 곳이고 자주 가는 곳도 아니니 좀 불편하면 어떤가. 아니 또 불편할 건 무어 있는가. 왜 꼭 거실에 신문을 가득 쌓아 그것도 직접 노끈으로 묶어 나가려 할까? 우쒸.


하, 그러나 그 별거 아닌 걸로 우리는 지금 냉전 중이다. 그도 나도 마음 상태가 불편하니 온갖 것에 막 짜증이 난다. 우울한 마음은 주변의 우울을 몰아오고 짜증 나는 마음은 주변의 온갖 짜증 기운을 몰아온다더니 맞는가 보다. 그냥 모든 게 틀어지려 한다. 마음이란 참 묘하다. 음. 어떻게 할까? 내가 풀어야 할까? 그냥 맘을 훽 돌려? 종이 뒤집듯? 


 그게 그렇게 싫어? 난 이게 정말 편해 보이는데 싫어?


그렇게 다정하게 물어볼까? 이게 낫지 않아? 그렇게 싫어? 그냥 신문 이 곳에 쌓아두는 게 좋겠어? 그렇게 물어볼까? 그리고 다시 다정 화합의 무드로 돌아서게 할까? 아. 그가 너무 속이 좁은 거 아냐? 나만 이렇게 매번 바다같이 너른 마음이어야 해? 그래도 이 냉전 같은 이상한 분위기는 싫다. 빨리 끝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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