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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Dec 28. 2018

57년생 취업 전 떨어지고 떨어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다


1979년 10월 4일 목요일


이화여고에서 중앙일보 기자 시험을 치렀다. 빨리빨리 눈치껏 해치웠어야 하는데 그렇게 민첩하게는 못한 것 같다. 상식. 그 책은 참 재미없다. 그래서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1979년 10월 28일 일요일


Somewhere my love~ 상쾌한 일요일 아침, 싹 청소한 깨끗한 내 방에 흐르는 예쁜 노래다. 놀라운 일의 연속 나라님, 그래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 어제, 그제 10월 26일. Y와 내가 종로서적에서 광교 32번 차 타는 곳에서 다투고 말 안 하고 화내고 할 때, 돌아가신 것이다. 국민이 하나 됨을 느끼며 정치의 비리, 그런 역겨움을 모두 떠나 우선 인간적으로 눈물이 흐르며 우리, 역경 많은 대한 국민, 그러나 하나임을 개인적으로나마 절실히 느껴보게 된다. 아옹다옹 다퉈보았자, 결국 우리 국민이라는 데에야. 집집마다 조기들을 달고, 그리고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 진심으로. 대한 국민이여, '나' '나의 가족' '나의 애인' 이전에 그렇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1979년10월26일저녁7시40분경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탕탕탕~대통령박정희를 살해해 18년 장기집권의 막이 내린다


1979년 11월 1일 목요일


나 자신도 나를 사랑할 수 없다면 어떻게 다른 자가 나를 사랑하게 할 수 있겠는가. 어제는 KBS 시험이 있었다.  영등포에서 KBS까지 한강 다리를 뛰어서 건너갔다.  KBS 앞에 쫘악 줄 서서들 기다리는데 내 앞에 앞에 어딘가 낯이 익은 아이. 덕수 국교 동창 은미다. 아나운서를 응시한다는 그녀는 얌전하고 예쁘다. P.D. 지원자들도 리포터가 될 수 있으므로 아나운서처럼 카메라 테스트를 한다며 뉴스가 적힌 작은 쪽지를 나누어준다. 모두들 그 종이를 들고 달달달달 외우다시피 읽기를 연습한다. 카메라 앞에서 주어진 뉴스를 읽는데 떨리기는커녕 그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다. 차라리 아나운서를 지원할 걸 그랬나 보다. 


1983년6월 이산가족찾기가 열리던 KBS방송국모습. 저보다도 더 이전 1979년에 우리 응시자들은 저 계단에 쭈욱 줄 서서 기다렸다. 


1979년 11월 20일 화요일


이제 곧 KBS 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떨리는 마음. 합격이냐 불합격이냐. 이번엔 꼭 합격하면 좋겠다. 카메라 테스트도 꽤 잘한 것 같은데 PD에게는 그건 그리 높은 배점이 아닐 것 같다. 다시 삐죽이 고개를 쳐드는 '아나운서 지원할 걸!' 


1979년 11월 22일 목요일


영어를 좋아하니까 감히 코리아헤럴드도 지원했다. 영어로 가득한 시험문제들. 재빨리 읽고 시간 안에 다 답해야 한다. wet blanket 그래 그거였어. 시험 보고 나오자마자 사전을 찾아본다. 분위기 확 깨는 자.  분명 아는 거였는데 아깝다. 그리고도 놓친 게 많다. 코리아헤럴드도 물 건너가나 보다. 아, 난 모냐.  떨어지기 위해 시험을 보는 걸까.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창피하다. 시험 본다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1979년 12월 4일 화요일


동창 아이가 이미 취직해 있다. 외국 회사 리셉셔니스트 자리. Resume 란다. Personal History라고만 써왔는데. 아, 난 이 Resume라는 것을 얼마나 쓰고 또 써야 할까. 정성껏 써서 제출하고 인터뷰했다. 제대로 영어를 알아듣고 잘 말한 것 같은데. 이미 취직해서 면접 오는 우리들에게 회의실에서 차를 대접하는 그 애가 얼마나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1980년 1월 7일 월요일


AFKN 얼마나 들을 수 있습니까?  네, 거의 다 들을 수 있습니다.

퍼센트로 말해보면? 한 90퍼센트 듣습니다.


큰 해운회사인데 나와 인터뷰하는 분은 오래 외국생활 한 당신도 제대로 듣기가 힘든데  90프로를 정말 들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응접실 같은 곳인데 둥근 테이블 위에 TV가 있고  AFKN 방송이 계속 나오고 있다. 혹시나 그걸 듣고 즉시 한국어로 말해보라 할까 봐 식은땀이 난다. 다 들을 수 있다고 했는데 막상 거기서 들으려니 영 안 들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대충 뉴스를 들으면 들리는 것 같았는데 아닌가 보다. 또 떨어지는 것 같다. 


1980년 1월 15일 화요일


명동 엘칸토 예술극장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서...  물어물어 겨우 찾아간 곳. 지저분한 빌딩 낡은 빌딩 조그만 빌딩 이런 곳에? 그래도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사장님 같은 남자 한 명과 여직원 몇 명이 문 열고 들어서는 나를 바라보는데 나는 무조건 인사하고 아, 죄송합니다 하고는 도로 문을 닫고 황급히 빠져나온다. 아, 난 이런 곳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다. 이런 데 아니다. 엉엉. 내가 어쩌다 이런 곳까지 오게 되었단 말인가. 버젓한 무역회사라고 해서 영어가 필요하다 해서 왔는데 아 이건 아니다. 서둘러 도망간다.


1979년도 명동에 있던 엘칸토예술극장의 입구 모습. 사진출처:보물섬블로그  


1980년 1월 25일 금요일


두렵다. 정말 많이 두렵다. 이대로 모든 곳에서 떨어지면 나는 어떡하나? 보는 족족 언론사는 떨어지고 있다. 어떡하지? 정말 어떡하지? 졸업은 다가오는데 아 정말 어떡하지? 인원 씨는 대학원에 간다. 희선이는 튀니지로 유학 간다. 정임 씨는 항공사에 취직했다. 문정이도 한국화약 그룹 번역부에 취직해서 이미 다니고 있다. 졸업은 다가오는데 아, 난 어떡하나. 그렇다고 그런 작은 무역회사엔 가고 싶지 않다. 다시 도전해보는 거야!


1980년 2월 11일 월요일


연희동에 있는 외국인학교. 면접시험을 보았다. 영어로 인터뷰를 했는데 막힘없이 제대로 한 것 같다. 모두 끝나고 시험 친 몇 명을 모아놓고 교장선생님께서 차를 대접해주신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지 몰랐다며 정말 실력들이 좋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무언가 무언가 할 말이 있으신 듯. 뭐랄까 우리는 꽤 실력들이 좋지만 그러나 무언가 마지막인듯한 그런 느낌의 차 대접은 무엇일까? 영어로 면접하는 그 순간도 좋았고 끝나고 차 마시는 시간도 좋았다. 교장선생님과의 대화도 좋았다. 그런데 이 묘한 기분은 무얼까. 무언가 내정자가 이미 있는데 우리는 들러리로 시험을 본 듯한 느낌이랄까. 나오면서 함께 시험 친 사람들끼리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떨어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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