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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un 18. 2020

88세 엄마랑 고스톱

고스톱 멤버가 다 떠났어

친구들이 다 떠났어


그 바람에 화투 만진 지가 하도 오래되어 과연 칠 수 있을까? 하시면서도 내심 치고 싶어 하심을 알 수 있다. 몇 년 전 서유럽 다녀온 영상 볼까 고스톱 칠까? 하는 나의 질문에 옛날 사진은 이젠 그리 보고 싶지 않다 하신다. 모처럼 우리 집에 오신 엄마에게 해드리고픈 게 너무 많아 스케줄이 빡빡하다. 그래서 밤이 늦었지만 고스톱을 꼭 1년만 해보기로 한다. 점당 백 원으로 시작된 고스톱. 1월 2월 3월 4월 횟수가 거듭될수록 엄마의 빵빵했던 과거 실력이 펄펄 살아나 우리들 돈을 싹쓸이하신다. 점당 백 원씩인데 몇천 원씩 나가다 보니 만원 사라지는 게 순식간이다. 


아니 어떻게 뒷장이 그렇게 잘 맞아요? 
보고 하시는 거 아니에요? 


우리들의 감탄에 하하 엄마는 신이 나셨다. 남편 역시 옛날 회사 다닐 때 실력을 발휘해 어떻게든 막아보려 하지만 엄마의 불붙은 기세를 잡을 수가 없다. 결국 엄마가 다 따고 나중에 개평으로 나누어 주기까지 하시니 하하 울 엄마 아직 짱짱해! 그러면서 줄줄줄 흘러나오는 엄마의 전성시대 고스톱 이야기. 


밥은 누가 해? 집주인이 하지. 식탁이 다 모야. 그냥 판 깔아놓은데 밥상 놓고 먹지. 된장찌개를 뽀골뽀골 정말 맛있게 끓여줬는데. 이젠 모두 떠나고 없다. 


그렇게 엄마는 점당 십원짜리 고스톱을 친구들과 즐기셨단다. 하나 둘 아프기 시작하더니 고스톱 멤버가 다 떠났다며 보고 싶어 하신다. 계산이 어눌해지셨나 걱정했는데 천만에 만만에 말씀이다. 일이삼사오륙칠... 칠 점에 4월 약을 했으니 십 점. 흔들었으니 두배 이십 점. 허서방 자네는 피박이야. 사천 원. 곱셈 뺄셈 덧셈이 휙휙 나보다 더 빠르시다. 아. 울 엄마 살아있네. 연세가 많으셔서 혹시 치매가 오는 것은 아닐까 은근히 걱정되던 마음이 싹 사라진다. 깔깔 푸하하하 엄마의 웃음소리가 집안 가득 찬다. 그 옛날 친구들과의 스릴과 긴장이 다시 살아나는 가 보다. 울 엄마 이대로 오래오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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