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뗑깡 쟁이 남동생과~

울산 C.C. 울산 컨트리클럽

by 꽃뜰
누나 쉬하러 간다~


누나 누나 누나 그야말로 쫄쫄쫄쫄 누나만 따라다니는 남동생을 떨구어내는 게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겐 가장 큰 과제였다. 친구들은 개구쟁이 남동생을 꼭 달고 나타나는 나를 못마땅해했다. 그래 이번엔 내가 꼭 떨궈놓고 갈게. 우리 집 대문 앞에는 본래 커다란 마당 말고도 현관문으로 들어가는 곳에 아주 작고 긴 화단이 있었다. 여기서 동생과 나는 종종 쉬를 했다. 누나 쉬하러 간다~ 하고 그 화단에서 쉬를 보는 척하다가 동생이 와서 확인하고 안심하며 돌아갈 즈음 살그머니 대문을 열고 줄행랑치는 것이다. 하하 그렇게 나보다 두 살 아래인 뗑깡 쟁이 막내 남동생. 나랑 유난히 친하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그가 사업차 왔다 발이 묶여 엄마 집에 있게 되었고 그 참에 동해바다가 보고 싶다는 엄마를 모시고 우리 집에 왔다. 세월이 많이 흘러 그도 나도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나에게 그는 여전히 어릴 때 누나 누나 하면서 끝까지 따라붙던 그 개구쟁이 뗑깡 쟁이일 뿐이다. 하하


공 잘 맞추고들 와~


하하 엄마는 공 치러 가는 우리들을 배웅하며 말씀하신다. 새벽에 나가는 우리는 엄마가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아주 조심했는데 그래도 시끄러웠는가 보다. 조금 더 주무시고 계세요. 점심은 같이 먹을 거니까요. 떡이랑 과일이랑 좀 드시고 계세요~ 공만 치고 후다닥 오기로 한다.


두 살 위 오빠, 두 살 아래 남동생. 난 유난히 남동생과 친했다. 뗑깡 쟁이 그가 나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않아서도 였지만 나에겐 그러니까 누나에겐 남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그 어떤 사명감이 있는 것 같다. 부모님 모두 그 옛날을 추억할 때면 너는 누나가 다 키웠어. 하시며 꼭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다. 1969년인가? 내가 초등학교 6학년쯤으로 기억하는데 서울에 큰 홍수가 났다. 학교에 있는데 갑자기 그렇게 비가 많이 내린 것이다. 우리 집은 응암동인데 학교는 광화문에 있는 덕수 국민학교를 다녔으니 집이 아주 멀었다. 물난리가 나 학교도 문을 닫고 모두 집으로 가게 했다.


동생 반에 달려 가 그 애 손을 잡고 나온 나는 어찌어찌 만원 버스를 탔다. 비가 너무 쏟아져 천천히 운행하던 그야말로 사람들로 꽉꽉 찬 그 버스는 그러나 응암동 우리 집까지 못 가고 물바다가 된 도로 때문에 홍제동에서 멈추었다. 사람들 모두 내리라고 했다. 동생 손을 꼭 잡고 내린 나는 거기서 응암동 우리 집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특히 산골고개라고 굉장한 언덕이 있는데 물이 콸콸 쏟아져내리는 그곳을 동생 손을 꽉 잡고 걸어서 걸어서 집으로 갔다. 모든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물바다 도로를 걸어갔다.


광화문에서 녹번리까지 차비 2원을 아껴 맛있는 것 사 먹으려고 많이 걸어 다녔기에 길은 익숙했지만 그러나 물이 무시무시하게 콸콸 길거리 구멍마다에서 솟아나고 있어 무서웠다. 그러면서 이미 하늘은 어둑어둑 녹번리 삼거리에 왔을 때는 완전히 깜깜해졌다. 그렇게 남동생 손을 꼭 잡고 가는데 앗, 무슨 구덩이 같은 곳에 물이 콸콸 무시무시하게 소용돌이치고 있는데 발이 쑥! 헉 어떡해. 전봇대를 꽉 붙들고 겨우 헤쳐 나온다. 흐유. 콸콸 콸콸 무시무시하게 물이 도랑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다.


아슬아슬 겨우겨우 그런 물구덩이를 피해 조심조심 천천히 걷다 보니 아주 깜깜한 한밤중이 되어버렸다. 드디어 집에 도착하니. 하. 집에서는 난리도 난리도 아주 큰 난리가 났던 것이다. 연락도 안되고 훙수에 꼼짝 못 하고 밤은 깊어가고 애 둘이 안 오는데 엄마 아빠가 사시나무처럼 떨며 어쩌나 하고 있는데 비에 홀딱 젖은 내가 동생 손을 꽉 잡고 집에 들어섰다며 그때의 감동을 두고두고 말씀하셨다. 아, 그 무시무시했던 홍수, 특히 다 와서 물구덩이에 빨려 들어갈 뻔했던 그 순간은 지금도 아찔하게 기억이 난다. 그랬던 그 남동생이다.


누나는 퍼팅을 온몸으로 해? 움직이지 말아야지.


뭐야. 오랜만에 함께 공을 치니 남편보다도 더 잔소리가 심하다. 우쒸. 누나 전에 보다 잘 치지? 거기에 우와. 많이 발전했는데. 누나 정말 잘 쳐. 그런 말만 들으면 좋겠건만 사사건건 지적이다. 내참.